사람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 편견과 오해
2016. 09. 02 흐리고 가을바람 선선함
나에게 있어 일기는 주로 어리석음을 토로하는 일인 거 같다. 그만큼 내가 아둔한 인간이며,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몸서리 쳐질 때가 많다는 것이리라.
우리아들은 놀이터에 갈 때, 집에 있는 장난감 여러 개를 들고나가는 버릇이 있다. 외동아이라 집에서 혼자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가지고 노는 맛에 재미가 들린 듯싶다. 놀이터에 장난감을 여럿 들고 나가면 일단 짐이 많아져 번거롭고, 장난감이 상하기 쉬우며, 또한 잃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도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동생이 없어 그 많은 장난감을 가지고도 혼자 놀아야하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그날도 아들은 장난감 여럿을 가지고 나와, 동네 형아와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놀고 있었다. 해님도 집에 가고, 날이 어둑어둑해져 우리도 집에 돌아가는데, 아들이 말하기를 희동이 형아가 장난감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그 형아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네 여자아이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희동이 못 봤니?"
"아, 박희동이요? 놀이터에 없는데, 왜요?"
"태헌이 장난감 하나가 희동이 한테 있다고 해서."
"걔 다른 애들 장난감 가지고 가서 안돌려줘요. 없다고 한대요."
동네 여자아이의 진술로 인해, 나의 머릿속에 희동이라는 아이는 '뻔뻔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아들의 장난감을 갖고 가지 않았다고 발뺌하고 돌려주지 않을 거라 미리 예상하고는, 어떻게 돌려받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이틀 후, 희동이를 만났다.
"희동아, 혹시 태헌이 장난감 못봤니?"
"아, 그거 집에 있는데요. 다음에 가지고 나올게요."
나의 추측과 오해가 완전히 빗나간 대답이었다. 당사자의 말은 들어보기도 전에, 결과를 미리 속단했고, 제 3자의 평판만 믿고 그 아이의 인격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단, 희동이 뿐만 아니라 살아오면서 직접 겪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사건을 오해하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리석음의 '어림'은 '눈에 눈물이 괸 상태', 즉 눈앞의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나의 이런 성급함은 편견을 만들었고, 편견은 오해와 어리석음을 만들었다. 나의 뿌리 깊은 어리석음은 '성급함'에서 비롯됨이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증명된 셈이다. 이번 일을 경계삼아 마음속에 신중함을 되새김질 해야겠다.
희동아! 이모가 경솔했다. 널 오해해서 진심으로 미안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