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응답하는 일
어떤 대화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피곤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불편한 주제'를 서랍 깊숙이 밀어 넣곤 하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피하고 싶은 주제를 안전하게 꺼내어 다룰 수 있을 때 관계는 비로소 깊어집니다. 그저 피상적이고 안전한 이야기만 나누고 있다면, 실은 아직 서로의 가장 깊은 유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든 말을 꺼낼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아직 충분히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서글픈 징표이기도 합니다. 관계가 깊어지길 원한다면, 어려운 대화가 튀어나왔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저 사람은 지금 어떤 의도로 저런 말을 했을까.' 그의 날 선 행동과 말의 이면에 숨겨진 본심을 보려는 안목, 아프고 힘든 대화 뒤에 숨겨진 그 마음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나에게 후회를 남긴 서툰 대화, 말실수, 잘못된 단어 선택으로 누군가 나를 판단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그 단편적인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누군가 "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니?"라고 그 이면을 알아봐 주었다면, 그날의 대화는 후회가 아닌 구원이 되었을 겁니다.
슬픔으로 가득한 시를 써 내려갔던 시인 김소연은 그의 시 <미래가 쏟아진다면>에서, 날 아프게 한 사람이 실은 자신의 아픈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음을 이렇게 일러줍니다.
울지 마, 울지 마 라며 찰싹찰싹 때리던 엄마가 실은 자기가 울고 싶어 그랬다는 걸 알아버린 아이가 될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던진 모질고 거친 말은, 실은 내 마음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비명과도 같습니다. 마음이 여유롭고 평온하다면 말은 자연스레 예쁘게 흘러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상대가 아픈 말을 던져도 넉넉히 받아줄 공간이 내 안에 있었을 겁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와 유난히 거친 대화가 오가고 있다면, 그것은 그 역시 마음이 몹시 힘들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 고통의 신호를 알아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방어적인 태도를 버리고 이해의 말을 건넬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이란 어쩌면 상대의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연약함과 고통에 기꺼이 응답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내 고통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해 준다면, 그 영혼은 이미 구원받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물론 타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해하려는 과정' 그 자체가 이미 위로가 됩니다. 내 아픔을 가라앉혀주려는 그의 마음이 이미 나에게 닿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화가 힘들어지고 있다면, 독한 말에 맞서기보다 그의 마음을 먼저 물어봐 주면 좋겠습니다. 그날 그의 마음을 물어봐 준 사람은, 아마도 당신이 첫 번째 사람일 테니까요. 내 마음에 관심을 드러내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도 물어봐 줘야 합니다. 내가 내 마음을 물어봐 주지 않으면, 내 속이 어떤지도 모른 채 하루가 허망하게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그때그때 만나서 풀어내야 할 감정들을 돌보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쌓여 자꾸만 봐달라고 아우성을 칠 것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물어보세요.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지루할 정도로 조용한 공간에서 호흡에 집중하며 내면과 마주한다면, 마음은 분명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이제 힘든 대화는 더 이상 피하고 싶은 장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과 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표현입니다. 대화 속에 담겨 건네지는 그 숨은 마음들을 읽어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마음을 주고받는 깊은 유대의 바다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