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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Jun 05. 2020

냐- 하면 그래그래 하는 사이

에세이 - 언어, 의사소통에 대한

나의 17살 된 고양이는 나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그 고양이는 늘 나에게 말을 걸어 주었기 때문이다.


눈만 마주쳐도 "냐-" 밥이 없으면 "야아!" 화장실이 더러우면 "야아아!!" 졸리면 "냐아아" 춥거나 더우면 "야아아" 특히 늦게 들어오는 밤이면, 시간이 부족하니 빨리 진행해 달라는 지령을 받은 시상식의 MC처럼 폭풍 잔소리를 해 대는데 "야아아아 오야아아아 냐아아 냐아 와아 와아앙 우어우어우어웅" 하며 스스로 진정이 될 때까지 화를 낸다. 그것은 화를 내는 것이 틀림없다!라는 느낌의 소리고. 응. 확실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꾸를 한다.

"냐-" 하면 뭐- 하고 "야아!" 하면 알았어! 한다. "냐아아-" 하면 응응- 하며 다리를 비껴서 누울 자리를 만들어 주고 "야아아-" 하면 그래그래 하곤 에어컨을 켜거나 전기장판에 불을 켜주곤 했다. 늦은 밤 휘적이며 들어온 내게 "야아오아오어앙-" 하며 화를 내면, 늦어서 미안하다고 혼자 심심했겠다며 신발을 신은채 현관에 앉아 연신 사과를 하곤 했다.



고양이는 사실 잘 울지 않는 동물이다. 야생의 고양이들끼리는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귀나 꼬리의 모양, 몸의 움직임 등으로 서로 충분히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아기 고양이가 엄마를 찾는 울음소리나 싸울 때나 발정기에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것이 고양이가 내는 소리의 전부라고 봐도 좋다. 일상의 의사소통을 위해 울음소리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집 고양이는 계속 말을 한다. '저 길쭉하고 사냥에는 소질이 없으며 내 화장실을 치워주고 밥과 물을 제공하는 두 발로 서 있는 꼭대기에만 털이난 짐승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내가 울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한 걸까? 인간과 함께 사는 고양이는 오직 인간을 위해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래서 집고양이의 울음소리는 함께 사는 인간과 닮아있다. 우리 집 고양이는 말도 많고 소리도 다양하다. 그런 17세 고양이가 참 고맙다.


덕분에 나도 열심히 본다. 내 발치에 볼을 부비고 바닥에 꼬리를 탕탕 내리치고 눈을 마주하고 끔뻑하고 배를 보이며 발라당 눕고 앞발로 주변을 삭삭 긁고 꼬리를 세우고 천천히 걷는 등의 모습들을. 자신에게 익숙한 몸의 언어로 이 생명체가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놓치지 않기 위해 꼼꼼히 살피려 한다. 물론 매번 다 이해하지 못해서 결국 "야아아아-" 소리를 듣곤 하지만.



사람 간의 관계에서 흔히들 그런 표현을 쓴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 이제 우리는 그런 사이는 없다는 걸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없지. 그저 표현에 게으른 사람들을 변호하는 말이라는 걸 이제 다들 안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있다. '척! 하면 딱!' 하는, '아! 하면 어!' 하는 그런 사이. 나와 언어의 결이 같은 사람은 분명히 있다. 언어는 곧 사고하는 방식이기에 결국 그런 사람들은 어딘가가 서로 닮아 있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맺을수록 언어의 결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기적 같은지 생각하게 된다. 오랜 시간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며 닮아간 관계뿐 아니라 사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나와 어딘가가 닮은 사람들.


침대를 올려다보며 "냐아우-" 하고 우는 고양이를 보고 이불을 살짝 들어 올려줬다. 들춰진 이불속으로 쏙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잠이 드는 고양이를 보며 생각한다. 나와 닮은 사람들, 나와 같은 결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움직임을 살펴 이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 수 있기를.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는 요즘이지만 아주 작은 기적은 내 곁에 분명히 있다. 고작 고양이 울음소리에서 너무 거창한 결론을 내리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 관계의 기적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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