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롱박 Jul 22. 2021

늦 여름을 기다릴 너에게

보내지 않을 편지 묶음 1

DEAR. N


해가 지는 여름. 한강 공원에 앉아서 너에게 편지를 써. 

우리는 그렇게 오랜시간 함께 하면서도 한강에 한번 와 보지 못했네.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 예쁘고. 

날이 조금 더 지나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딱 너가 좋아할 그 순간이 오겠지. 


넌 여전히 늦여름을 정말 좋아하니? 늦여름 해질녁의 그 빛과 공기가 언제나 설레이게 한다고 참 좋아했었어. 그래서 한동안 늦여름은 우리의 계절이고 말할 필요도 없는 약속이었어. 달뜬 낮의 공기가 좀 차분해 지고 난 온통 푸른빛의 여름 저녁이 오면 늘 너와 걷던, 수다 떨던, 노래하던 그 길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했어.


눈 감기 전까지 하루를 공유하고 눈 뜨자 마자 연락하기 바빴던 우리가, 어느새 여기에 와 있어. 서로가 다른 일상을 보내고 접점이 없는 삶을 사는 동안 마음을 공유 할 시간은 부족했고 서로를 대신할 존재가 생겼던 거지. 사실 많이 속상했어. 너와 나는 1+1=1이 되는 사이라고 십년동안 셀프 세뇌를 해 왔었나봐. 놀랍게도 우리는 1로 충분한 사람들이었어.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어.


너의 20살 생일날 기억해? 나는 그날을 잊을 수 없어. 내가 니 얼굴을 캐릭터로 만들어서 포스터를 만들고 너가 내리는 지하철 역에서 너네 학교 교문까지 그 포스터를 쭉 붙여뒀었잖아.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겠어. 나는 일주일 전부터 잊을 수 없는 너의 생일을 만들어 주겠다는 일념으로 포스터를 만들고 선물을 준비하고 생일 전날 밤을 꼬박 지새운 다음 아무도 없는 새벽에 그 포스터를 길에 붙이고 너의 등교를 기달렸었어. 아마도 내가 누군가의 생일을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을 썼던 게 그 때 였을꺼야. 몰라, 너는 조금 쪽팔렸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나도 20살 이었잖아. 뭐든 열심히였던 때였으니까. 나는 좋았어 즐겁고 행복했어. 너도 그랬을까?


내가 아는 너는 누구보다 용기 있는 사람이었어. 먼저 말 걸어 주고 먼저 맘을 열고 더 많이 보여주고 그걸 두려워 하지 않았지. 모든 걸 내어 놓고도 당당한 네 모습에 나는 늘 놀라웠어. 나는 어디서나 진짜 나를 감추기 바빴고 남들이 내 속의 별로인 나를 찾을까봐 늘 나를 만드느라 버거웠거든. 누구에게나 솔직하고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으면서 또 극복하고 다음을 시작하는 너를 보며 나도 참 많이 배웠던 것 같아. 나를 세상에 내어놓는 방법을 말이야. 


그런데 그게 나에게는 너무 버거웠을 수도 있겠다. 너는 끝도 없이 너를 나에게 던지는데 나는 그럴 수 없었어. 너에게 나를 던져낼 수도 없고 너를 받아주기만 한 기분이야. 받고 또 받고. 정작 나는 쩌 구석에 밀리기만 하는데 그게 힘들었던 건 아닐까? 이제 와서 멍- 하니 그때를 생각하면 이딴 생각만 하게 되네. 인간은 원래 다 자기 중심으로 기억을 바꿔대는 이기적인 존재니까. 뭐 아닐 수도 있지만. 야 아무튼 그래. 그렇다구. 


너는 나를 너무 믿었고 나는 너를 너무 방치했었나봐. 너는 늘 사랑받고 싶어했는데 나는 우리 사이가 조금 더 편해지길 바랬나봐. 그렇게 서로가 달라지는 것도 모르고 시간이 흘렀고. 오랜만에 만나면 웃고 안고 좋았지만. 헤어지면 또 그렇게 각자의 삶을 단단히 만드느라 바빴지. 결국 한참 후 돌아보니 나는 여기에, 너는 거기에, 있다. 


잘 지내는 것 같아. 요즘엔. 너 말이야. 한 동안 너가 불안해 보여서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런 믿음도 있었어. 언제나 처럼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널 안아 줄테고 너는 또 그 사랑으로 견뎌내고 살아낼 거라고. 그래서 덤덤하게 나는 나 답게 지낼 수 있었어. 


그래도 여전히 나의 20대는 너와 함께야. 나의 20대 곳곳에 니가 있어. 그 모든 그림속에 니가 있고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의 낮과 밤이 함께해.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것에 너의 시간이 너의 마음이 많이 들었겠지. 고마워. 늘 그렇게 생각해. 


오늘은 뭘 했니. 너를 아껴주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니. 밥은 먹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요즘엔 어떤 노래를 좋아하고 어떤 술을 즐겨 마시는지. 그리고 행복한지. 궁금하긴 하지만 묻진 않을거야. 우리는 더이상 그런 것들을 궁금해 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사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아. 그냥 딱 거기까지야. 


시간이 더 흐르고 우리가 또 변하면 만나서 손을 맞대고 웃으며 지금을 비웃을 그런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겠지. 우리는 어떤 상황이든 잘 살 사람들이니까. 

일단 오늘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하루를 보냈길 바라는 마음 뿐이야. 

조금은 보고싶기도 하지만 더이상 청승은 꼴뵈기 싫겠지. 

너는 너 답게. 나는 나답게. 그러자 우리. 

안녕. 잘 지내자. 


FROM. 일기를 나눠 쓰던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