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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Mar 23. 2020

글을 싸는 것. 똥을 쓰는 것.

에세이 - 글에 대한

N번 방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건 지난 1월이었다. SNS에서 최초로 내용을 알게 된 후 TV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Y'를 통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분노했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는 꾸준히 관심을 가졌고 공유했고 함께 분노했다. 세상에 이 이야기가 점점 알려지기 시작했고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난 주 '박사'라 불리는 범죄자가 검거되었다. (박사는 사실 N번방의 주인은 아니다. N번방을 만든 이는 '갓갓'이라는 가해자로 2019년 돌연 자취를 감추었고, 그가 운영하던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아 새로운 '박사방'을 만들고 운영해온 자가 이번에 잡힌 것이다. 그러니 N번방을 최초로 만든 이는 여전히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일이다.)


수사망이 좁혀지며 박사는 자신의 검거를 직감했을 것이고 그는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인터넷 상에 남긴다. 그것이 "악마는 갑니다"로 시작하고 "인간 김윤기는 이만 갑니다"로 끝나는 박사의 유서이다. (그의 글 전문은 이곳에 언급하지 않겠다. 그 이유는 검색을 통해 쉽게 찾아 볼 수 있기도 하지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글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 달 가까이 이 사건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고 분노하고 있었고 마음 깊이 공포에 질려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까지 잔인할 수 있구나, 사람들이 이렇게 까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할 수 있구나 아니 그것을 넘어서 타인의 고통을 즐기고 방관 할 수 있구나! 그래서 나는 그의 유서를 읽기가 두려웠다. 공포에 질린채 그가 쓴 글을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후 나는 조금 울었고 많이 화가 났다. 


글 속의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이었다. 내가 두려워하고 공포스러워 했던 어떤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사회성이 떨어지고 자기연민만을 반복하는 도태된 인간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자신이 번 돈을 성범죄자 조두순을 응징하는 일에 쓸 것이라 했다. 성범죄로 번 돈으로 성범죄자를 심판하겠다며 자신이 마치 대단한 심판자가 된 양 써 두었다. 그 이야기 속에 조두순이 만든, 그리고 자신이 만든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는 "도태된 사람들에겐 성욕을 해결할 샛길"이 필요하다며 포로노와 성매매가 합법화 되어야 한다고 써 두었다. 자신이 그 '도태된 사람'이라며 연민 하면서 '성욕'이라는 것이 대단한 권리인양 써 두었다. 그리고 물론 거기엔 다른 성별에 대한 이해는 조금도 없었다. 부족하지만 배우고 알았기에 지금이 스스로 갈 때임을 안다고 하며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불우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끝끝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그러고도 그는 마지막 까지 스스로를 '인간'이라 칭하며 글을 마무리 했다. 


나는 그의 글을 읽고 한 동안 머리가 멍- 했다. 분해서 울었고 화가 난 머리가 쉽게 식지 않았다. 내가 고작 이런 인간을 두려워 했던가. 고작 이딴 인간에게 74명이나 되는 10대 20대 여성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농락당했단 말인가. 고작 이딴 인간의 자아를 비대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몇 만명의 사람들이 돈을 써가며 여성들을 착취했단 말인가. 고작 이딴 인간에게. 고작 이딴 인간에게!


그 후 밝혀진 것들은 '김윤기'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는 조씨 성을 가진 20대 남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서를 쓴 후 그는 펜을 삼켜 자해했다고 한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그는 검거되었다. 사람들은 함께 분노하고 있다. 그의 신원을 밝히고 포토라인에 세우자는 국민 청원이 역대 최고 청원수를 기록했고 그 방에 있었던 모두의 신원을 밝히고 처벌하라는 청원도 140만이 넘었다. 나는 이 분노가 오래가기를 바란다. 지치고 힘들겠지만 오랫동안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세상을 살아가고 싶을 것 같다. 타인의 고통이 자신이 쾌락이 되는 세상은 망해버리는 게 나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자꾸만 그가 쓴 글을 곱씹게 된다. 나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사고하는 것이었다. 머리 속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글로 쓰며 정리해 낼 수 있었다. 복잡한 감정들을 차분하게 물러서 볼 수 있게 하는 일이었고 나와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해 왔다. 그도 그랬을까? 그도 그 글을 쓰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했을까. 그도 그 글을 쓰며 불안한 자신을 달래는 대화라 느꼈을까. 그가 쓴 그깟 것이 글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내가 쓰는 글은 그것과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한창 논문을 쓰던 시절, 한 선배가 그랬다. "일단 써, 아니 일단 싸! 똥 싸듯이 매일 조금씩 싸버려. 그러다 보면 뭔가가 될 거야." 글을 쓰는 것은 배설과 같다는 이야기는 너무 흔한 이야기 이지만 매번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그래도 생산적인 배설이잖아!' 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래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의 글은 정말 배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글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속에 꼭꼭 눌러쓰게 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좋은 인간이 되어야겠다. 좋은 글을 위해 바른 생각을 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나는 더 많이 배우고 보고 경험해서 배설이 아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라고. 


N번방 사건의 최초 가해자인 '갓갓'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그는 2019년 당시 고3이었고 대학진학을 위해 종적을 감추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진학에 성공했을까. 이 상황을 지켜보며 새로운 시작에 설레하고 있을까. N번 방에는 74명의 10대 20대 여성이 노예로 갇혀 있었다. (놀랍지만 미취학 아동도 여럿 있었다) 그들의 피해를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그들이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서 나는,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N번 방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5만원, 많게는 150만원 까지 입장료를 내야만 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실수로 들어갈 수도 있지' 라는 글들을 봤는데 그럴 리가 없다. 사람들은 실수로 가상화폐를 결제하는 등의 그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그 방들에 참여한 인원 수가 어림잡아 26만명이라 한다. 넷플릭스 계정도 친구 4명이서 함께 쓰는데, 아이디를 공유 했을 경우를 생각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박사가 잡히고 난 후 수 많은 파생방이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방에는 N번방 관련자 처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신상을 털어서 얻은 사진들이 올라오고 그들을 모욕함과 동시에 N번방에서 볼 수 있었던 영상과 사진을 구걸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에게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군가는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나는 N번방 운영진, 관리자 뿐만 아니라 그 방에 참여했던, 그래서 그 모든 범죄행위를 목격하고도 침묵했던 사람들 전원의 신원공개와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 그 방에 있던 모두가 살인자다. 나는 며칠째 네이버 검색어 목록에 '텔레그램 탈퇴'가 뜨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짧게 슬퍼하고 오랫동안 분노할 것이다. 나만의 분노의 방식을 찾아 아주 오랫동안 분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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