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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티서 Mar 25. 2020

<첫 번째 춤은 당신과 함께>

3월의 창작 주제(2) <글>

등장인물 

        대길, 갓 스무 살, 자신의 통통한 몸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능을 잘 봤다.    

        은주, 갓 스무 살, 강압적인 집에서 자랐지만 씩씩하다, 재수가 결정됐다. 

때    새해 첫 날 새벽 3시.  

곳    홍대의 어느 상가 8층 화장실.              




  

  조명이 켜진다. 스산한 분위기의 화장실이다. 저 아래에선 어렴풋이 EDM 소리가 들려온다. 대길은 거울을 보며 마스카라를 바른다. 머리에는 가발 망을 쓰고, 몸에는 조금 끼는 테니스 스커트에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자기 모습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거울 앞에는 화장품들이 어질러져 있고, 핸드폰도 기대져 있다. 대길은 핸드폰의 볼륨을 조금 높인다. 마스카라는 이러저러하게 바르라는 식의 유튜버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온다. 다시 화장에 집중하는 대길. 대길이 모르는 사이 대변기 칸을 열고 은주가 나온다. 은주는 롱패딩을 입고 한 손엔 짐 가방을 들고 있다.      


은주    (낮게) 학생. 거기서 뭐해. 

대길    (핸드폰 볼륨을 줄이고 화장품을 몸으로 가리며) 아니,      


  대길 은주를 발견한다. 인상을 찡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대길.       


은주    푸하하하하. 이제 학생도 아니면서. 

대길    (작게) 그러다 들키겠어.

은주    (들어오며) 이 시간에 이런 상가 건물을 8층까지 올라올 사람이 또 누가 있다고. 

            (핸드폰 확인하며) 다 했어? 벌써 세 시야.  

대길    어때 보여?      


  대길을 골똘히 바라보는 은주.           


은주    다 했, 입술 안 발랐나? 아, 가발 안 썼네, 가발.      


  은주를 살짝 흘기는 대길.      


대길    은주야, 우리 그냥,

은주    우리 지금 홍대야. 너 여기까지 와서,

대길    그건 아는데,

은주    원래는 호텔, 최소한 모텔이라야 했어.

대길    알지, 아는데, 

은주    아니, 원래 정동진이었다. 너랑 서울 오느라 내가 거짓말까지 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은주와 대길. 곧 대길이 한숨을 내쉬며 끄덕인다.      


대길    거짓말도 예산은 맞춰서 쳤어야지. 

은주    관광지 게하보다 홍대 클럽가 모텔비가 더 비쌀지 누가 알았어. 주말은 숙박이 비싼데, 

           주말은 숙박만 되고, 또 1월 1일은 주말은 아니지만 주말 요금이 적용된다고?

대길    우리가 충주 촌놈이었지 뭐. 

은주    서울역에서 어묵 먹지 말 걸 그랬어. 

대길    (헛웃음 지으며) 근데 너희 부모님이 어떻게 믿으신 거야? 

은주    신년 해돋이로 정기 받고 와서 올해엔 꼭 합격한다고. 얘랑!      


  웃으며 핸드폰을 뒤지는 은주. 은주 핸드폰 액정을 대길에게 내민다. 

 액정을 보더니 표정이 환해지는 대길.     

 

대길    예뻤네.

은주    2년 전에 같이 찍은 사진까지 들이미는데 어떻게 안 믿겠어. 

대길    의심 안 하셨어?

은주    얘는 왜 이렇게 화장을 진하게 하냐고는 하시더라. 

대길    (미소 지으며) 그거야 한심한 여장 대회니까.

은주    별로 진하지도 않아. (사이) 완전 패싱 잘 됐어. 

대길    (고개 저으며) 1학년 때잖아. 이땐 15킬로나 덜 나갔어. 

은주    너 지금도 안 뚱뚱해. 

대길    은주야, 나 사실 오늘 클럽 가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 

은주    얼렐레? 너 이거 반쯤은 의무야. 

대길    정 가고 싶으면, 

은주    이거 그거네. 너는 앞으로 대학생활 하면서 클럽 갈 일 많다 이거지? 

           이 친구는 재수가 확정돼서 오늘 아니면 제대로 놀 수 있는 날이 전혀 없을 텐데도?

대길    아닌 거 알잖아. 

은주    아니, 모르겠어. 너한텐 베프랑 처음으로 같이 클럽 가보는 게 안 중요해?      


  사이.     


대길    누가 이겨 진짜. 

은주    (핸드폰 확인하며) 벌써 세 시 십 분이다. 

대길    입술만 바르면 돼. 가발이랑.

은주    (주머니 뒤지며) 나 립스틱은 있어. 엄마 꺼 몰래. 

대길    (파우치 뒤지며) 안 들켰어? 

은주    (립스틱 내밀며) 갖다 놓기만 하면 돼. 우리 엄마 중요한 날 아니면 거의 화장 안 하거든. 

대길    나 틴트 있어.      


  파우치에서 틴트를 꺼내는 대길. 어플리케이터를 꺼내 입술에 데려다 조심스레 코로 가져간다.      


대길    어우.

은주    왜?

대길    쉬었나봐.

은주    너 그거 설마, 

대길    맞아. 1학년 때 그거. 

은주    침 닿는 거는 당연히 상하지. 

대길    나야 당연히 이거밖에 없,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나 못하겠어. 

은주    또 왜 그래. 립스틱 내꺼 쓰라니까.

대길    립스틱만 문제가 아니라, 다 이상하잖아. 요새 누가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클럽엘 가. 

은주    그거 좋아하는 사람은 입어. 

대길    살도 너무 쪄서 옷이 다 낑긴단 말이야. 

은주    너 여장 대회 때 옷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맞기는 맞잖아. 

대길    그냥 너 혼자라도 다녀와. 나는 여기서 기다릴게. 

은주    뭐라고?

대길    그냥 내가 다 미안해.

은주    이젠 미안하다고? 

대길    애초에 몰래 화장해야 되는 나만 아니었으면 넌 그냥 홍대 게하로 갔으면 됐잖아.

은주    게하도 2만원 보단 비싸거든? 

대길    아예 클럽에서만 놀다가 다시 첫차타고 갈 수도 있고. 

은주    첫차는 공짜고? 여기 오고 먹는 거 나 다 너한테 빚졌잖아. 

           우리 부모님이 하도 의심이 많으셔서 정동진행 차표부터 게하까지 미리 다 끊어놨고,

           현금이라곤 꼴랑, (한숨 쉬고) 꼭 너 꾸미느라 우리가 고생하는 거 아니야. 

대길    그럼 그냥 돈만 빌려 줄걸 그랬어.      


  사이.     


은주    우리 엄마 어린 애들이 화장하고 놀러 다니는 거 천박하다고 수시로 말했어. 

           너 없었으면 나도 이런 결정 못 했어. 이제 그만 튕기고,

대길    난 클럽에서 받아줄지 자신이 없단 말야. 꼭 이런 말까지 해야겠니.     


  은주 대길에게 다가가 손에 든 틴트를 낚아챈다. 곧장 대변기 칸으로 간다.

  쓰레기통에 틴트를 버린다.      


대길    (따라오며) 야?

은주    (립스틱 내밀며) 입술만 발라봐. 그래도 아니면 나도 포기할게.     


  사이. 은주 떠밀 듯 대길에게 립스틱을 넘긴다.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립스틱이 변기에 퐁당 빠진다.      


동시에    야!      


  대길 변기와 쓰레기통을 번갈아 바라본다. 결국 변기에 손을 넣어 립스틱을 꺼낸다.     


은주    으아아아!

대길    비켜, 비켜!     


  대길 세면대의 물을 튼다. 물과 비누로 립스틱과 자신의 손을 벅벅 씻는다.      


대길    독해. 독해. 어쩌다 저런 거랑 친해져서.

은주    그때 고맙다고 먼저 말 건 건 너야. 

대길    그거야 그 전날 니가 먼저 아는 척 했으니까. 

은주    그럼 모른 척 해야 됐나? 

           한 밤중에 같은 반 대길이가 여장 대회 때 옷을 그대로 입고 산책하는 걸 봤는데?

대길    대게는 본인한테 직접 아는 척 하지는 않지.

은주    아하 뒷담이 고팠어?

         하필 웬 아저씨도 그 뒤를 바짝 쫓아서 산책을 하고 있었던 것도 그럼 모른 척 하고?      

 

  물을 끄고, 손과 립스틱을 탁탁 터는 대길.       


대길    (혼잣말로) 난 목소리 들킬까봐 도와 달라 말도 못하고 있었는데.

은주    왜 이 얘기까지 나왔냐. 어쨌든 친해졌잖아. 

           우린 기껏 여장 대회 때 같이 사진 한 번 찍어본 게 전부였는데.   

대길    근데 그건 그거야. 나 진짜 립스틱만 발라보고 내가 아니다 싶으면 안 갈래. 

           고마운 것도 미안한 것도 없이.     


  끄덕이는 은주. 대길이 립스틱을 바르는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 대길은 화장을 끝낸 자신의 얼굴을 고요하게 바라본다. 미소 지으며 고개 젓는 대길. 역시 미소를 짓는 은주. 은주 묵묵히 짐 가방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낸다. 은주 롱패딩을 벗는다. 대길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촌스러운 클럽 복장을 입고 있다.      

대길    어머.

은주    왜?

대길    아깝다. 이런 말 하는 나도 염치 없지만.  

은주    아, 몰라. 클럽 입장료 굳었네. 이따 어묵이나 먹자. 두 개 먹자. 

대길    아니면 내가 이거 다 지우고 남자 옷 입고 같이 갈까?

은주    됐어. 솔직히 너도 예쁘게 꾸미고 가고 싶었잖아.  

대길    그건, 맞네. 

은주    나 하나만 물어보자. 너 그때 여장 대회 때 왜 그렇게 죽상이었어? 

           분명 좋았으니까 밤에 여장 도구 챙겨가서 혼자 외출도 했던 걸 거 아냐. 

           그냥 죽상도 아니고 오늘처럼 완전 우울해져서, 

대길    진지해졌었거든. 다른 남자 애들처럼 장난이래야 웃긴데, 진지해지더라고.  

은주    아.

대길    나도 하나만 묻자. 넌 오늘 왜 그런 건데?

은주    내가 뭘?

대길    아무리 너라도 너무 무모했잖아. 당장 여비도 없는데 돈 쪼개서 서울까지 오고. 

           모텔에서 안 되겠다 싶었으면 적당히 찜질방 가지, 굳이 굳이 이 화장실을 또 찾아내고.


  대길을 빤히 바라보는 은주.   


은주    앞으로 자취하면 예쁜 옷도 많이 사고, 틴트도 새 걸로 사. 부피 생각하지 말고. 아예 막 어질러 놔. 

대길    뭐래. 서울이랑 충주 기차로 두 시간 반이더라.

은주    그렇게 별 거 아니면 맨날 와라.

     

  서로 바라보고 실없이 웃는 두 사람.      


대길    근데 첫차 다닐 때 어묵집도 여는 거 맞나?  

은주    아악, 맞네! 

대길    쉿.

은주    이미 소리 지르고 생쇼를 다 했는데도 아무도 안 올라왔거든?      

대길    어?


  일어나는 대길. 세면대 쪽으로 간다.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검색한다.     


은주    뭐 하는데?     


  핸드폰 볼륨을 높이는 대길. 화장품 광고를 5초 정도 듣다가 스킵 한다. 곧 EDM 류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대길 요상한 춤사위를 펼치기 시작한다. 사이.     


은주    헐. 얘 또 혼자 추네.     


  은주 땅을 박차고 일어나 함께 춤춘다. 춤 실력이 도긴개긴이다. 두 친구는 깔깔 웃으며 한참을 춤춘다. 천천히 조명이 꺼진다.      




- 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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