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담다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롱박 Mar 30. 2020

<그럴 애가 아닙니다>

아주 짧은 희곡 - 글에 대한

1. 등장인물

기자

여러명의 인터뷰이

A



2. 장소

A의 방



3. 때

알 수 없다.



4. 이야기


화면 속 기자가 한 여자를 인터뷰한다.


기자    평소에 A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여자    그 친구 평소에요? 엄청 착하고 우리 가게 올 때도 매일 인사 꾸벅하고 그랬다니까. 이런 일을 당할 사람이 아닌데. 너무 놀랐어. 어쩌다 그랬을까.

기자    뉴스를 접하고 놀라셨나요?

여자    놀랐지 그럼. 절대 그럴 애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진짜 그랬대요? 응? 아니 그럼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야.(옆의 사람에게 동의를 구하려 한다)


화면에서 여자가 사라진다. 거실 바닥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와 중년의 여자가 등장한다.


기자    사건에 대해서 언제 알게 되셨나요?

남자    나는 경찰 조사 시작되고 나서 알았어요. 워낙 애가 조용했어서. 나는 꿈에도 몰랐지.

기자    사건을 알고 나서 심경이 어떠셨나요?

남자    (버럭 화를 내며) 속에서, 이 속에서 엄청 뜨거운 불이 솟더라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우리 A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데! 그럼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야! 그걸 찾아봐야지! 어? 다들 그렇게 우리 애 사진만 찾아대고 그러는 거 아니지! (바닥을 연신 내리치며 화를 낸다)

여자    여보. 화내지 말고 침착하게 해요. 침착하게. (남자를 손으로 말린다.)

남자    어, 그래요. (남자가 진정한다)

기자    집에선 어땠나요?

남자    우리 애. 내가 일하느라 자주 못 봐서 그렇지 단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는 애였어요. 학교에서도 문제 하나 없었고 장학금 받고 그랬어요. 우리 애가 절대 그럴 애가 아니라니까요. 어, 그 몇 년 전에 지 엄마 아파서 입원해 있을 때도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고 엄마 간병하고 그렇게 열심히 살던 앤데. 우리가 부자는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한테 나쁜 짓은 안 하고 사는 그런 사람들인데, (손을 휘적거리며 다시 흥분하려 한다)

여자    (남자의 손을 잡으며) 여보! 침착하게 하라니까.


남자가 숨을 크게 내쉬며 흥분을 자제하려 애쓴다. 기자가 여자에게 질문한다.


기자    지금 심경이 어떠신가요?

여자    (잠시 말을 고른다) 화가 납니다.

기자    어떤 부분이 가장 화가 나시나요?

여자    전부 다 요. 우리 애가 이런 상황에 빠진 것도 화가 나고 일이 이렇게 까지 된 것도 화가 납니다. 그리고,


여자가 말을 이어가려 하지만 감정이 격해져서 잠깐 숨을 고른다.


여자    화가 납니다. 일이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화낼 겁니다.


단호한 여자의 얼굴에서 화면이 전환된다. 교실을 배경으로 한 여자가 서 있다.


기자    학교에선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여자    조용했죠. 그렇지만 존재감이 없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늘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고. 밝은 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 일에 휘말릴 애가 아니에요. 저는 뭔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이유요?

여자    네, 뭔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학교에서 성적도 좋고 앞으로 가능성도 많은 학생이었는데 이렇게 불미스러운 일을 겪게 되다니 걱정이에요. 다시 빨리 학교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화면이 전환되고 여자 남자가 섞인 학생 무리가 나온다.


기자    A는 어떤 친구였나요?

남자    저희가 늘 의지하는 친구였어요.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공부도 잘해서 저희가 공부 같은 거 많이 물어보고 그랬거든요.

여자    맞아. 그리고 저희들은 지금도 계속 연락하고 있거든요? 답장이 예전처럼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잘 버티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기자    사건을 알고 나서 A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여자    뭐 어떤 생각이 들어요? 그냥 저희는 계속 친구예요. 좀 안 좋은 일이 생기긴 했지만 상관없어요. 저희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계속 친구로 있을 거예요.

남자    맞아, 그게 무슨 상관?

여자    그치? 어이없네?


학생들 웃는다


여자    그냥 저희는 계속 친구예요.

기자    그 전이랑 조금도 다르게 느껴지지 않나요?

남자    뭐래?


학생들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남자    아저씨, 그냥 저희는 친구라니까요? 그게 왜 다르게 느껴져요?

여자    아! 다르게 느껴지는 거 있긴 있어.

남자    그게 뭔데. 난 그런 거 없는데?

기자    그게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여자    좀 대단해요.

기자    대단하다고요?

여자    네, 대단하다고 느껴져요.

남자    맞아. 그건 그래.

여자    대단하잖아요. 그렇게 엄청난 일을 겪었는데 잘 버티고 있잖아요? 물론 힘들기도 하겠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다는 점이 정말 대단해요. 멋있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여자의 말에 동의하며 소란스럽다.


화면이 꺼진다. 조용하다.

조명이 들어오면 방 안에 A가 앉아 있다. 고개를 숙이고 본인 앞에 놓인 노트북을 보고 있다. 천천히 노트북 화면을 내려 덮고 고개를 든다. A의 얼굴에 네모나게 각진 밝은 조명이 비친다.


A    저는 꿈이 있습니다.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제 삶을 살아갈 겁니다. 저는 피해자입니다. 어둠 속에 있을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조명이 A의 방 전체를 밝힌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 글은 쓰고 싶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