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담다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티서 Apr 01. 2020

식물에는 동물이 꼬여

4월 창작 주제 <반려식물>

  어렸을 적 나는 산 아래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다. 우리 집 바로 옆에는 폐가가 있었는데 오래 전 집주인 할머니가 외롭게 죽어간 집이라는 소문만 무성했다. 소문의 진위야 알 수 없지만 관리가 안 된 그 집엔 사시사철 내 키보다도 높게 잡초가 자라 있었다. 덕분에 난 삼면이 모두 식물로 둘러싸인 집에서 살 수 있었던 셈이다.     

  봄이면 산에서 아카시아 냄새가 났고, 가을이면 우리 집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렸었다. 폐가 쪽으로 깻잎을 꼭 닮았지만 깻잎은 아니라서 먹을 수는 없는 식물이 특히 여름이면 우후죽순으로 자라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진귀한 경험들이지만, 어렸을 땐 딱히 식물들이 내 눈에 들어오진 않았었다. 어린 내 눈에 신기한 건 언제나 식물보다는 동물들이었으니까.     


  여름이면 우리 집 마당 통로엔 여지없이 거미줄이 쳐졌다. 하루에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새 거미줄이 쳐져서 급하게 등교를 하다 보면 얼굴에 거미줄이 걸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마치 솜사탕 기계 안을 휘젓는 나무젓가락처럼 내 팔을 얼굴 주변으로 휘휘 휘젓고는 했다. 그러면  얼굴에 완전히 밀착되지 않은 거미줄이 얼추 걷어졌다.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지만 거미줄을 타고 독거미까지 내 몸에 안착하는 것은 아닐지 매번 걱정이 되기도 했다.     


  폐가는 동네 길고양이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람도 모이면 분란이 생기는 것처럼 고양이들도 폐가에 모이면 종종 싸움이 붙었다. 오디오만 엿듣는 고양이들의 싸움은 실로 살벌한 것이었다. 바이올린 현을 무자비하게 긁는 듯한 처절한 소리가 났고, 종종 사람 비슷한 소리도 냈다. “엄마, 고양이 때문에 애기 울어.” 말해놓고 보면 우는 것도 애기가 아니라 고양이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며칠간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유난히 가까이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수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살다 보니 약간 피해의식이 생겼군,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운 울음소리를 들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고 우리 가족은 소리의 근원을 찾아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다. 아빠가 우리 장롱 위의 얕은 틈 안으로 고양이가 들어가 새끼를 낳아놓은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벌레와 동물의 침입에 익숙한 나였지만 그때는 좀 신기했다. 말 그대로 길고양이와 2층 살림을 살고 있었다니. 하긴 우리 집은 겨울에도 종종 환기를 위해 현관문을 활짝 열어뒀었으니까. 말했다시피 우리 집은 삼면이 식물로 둘러싸여 있었으니까. 겨울이라 걔도 추웠을 테니까. 새끼를 밴 고양이가 우리 집 안방까지 걸어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혼자 이리저리 생각해봤었다.      


  식물에는 동물이 꼬인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이제 사면이 공중으로 둘러싸인 아파트에 생활하며 다시금 실감한다. 우리 아파트는 방역도 철저히 하는지 벌레도 잘 나오지 않는다. 나는 앞서 말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거의 20년을 살았다. 이사 온 첫날밤은 괜히 이것저것 서운했었다. 가로등보다 높게 살아서 밤이면 주변이 온통 캄캄해지는 것도, 지긋지긋한 고양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나는 아직 벌레까지 품어줄 정도로 자연친화적인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겐 디딜 흙과 함께 설 나무가 분명히 필요하다고도 느낀다. 왜냐하면 인간 역시 넓은 의미로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재작년엔 출판사로 출근해 낮 시간을 내내 건물 안에만 갇혀 지냈다. 창고 건물을 개조해 창이 없는 건물이었다. ‘나들이, 나들이가 필요해.’ 산책만을 학수고대하는 강아지들의 심정이 저절로 이해가 갔다.     


  주말에 지하철 역 두 개 거리의 공원까지 걸어갔다 오면 그나마 일주일을 버틸 힘이 났다. 충전하는 힘보다는 소진하는 힘이 월등히 많아 결국 그 출판사를 나오긴 했지만..... 아무튼 하고 싶었던 말은 꼬이고 당기는 덴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더 어렸을 땐 잘 몰랐지만 나 역시 살아가기 위해 녹색 파워가 필요함을 나날이 느끼고 있다.           




덧) 써 놓고 보니 그냥 산책이나 하며 띵까띵까 백수로 살고 싶은 욕망을 환경보호에 관한 소신 있는 발언인 척 위장해놓은 글 같기도 하다.     


덧2) 가장 결정적인 침입은 ‘지네’에게 당했다. 자는 와중에 지네가 내 팬티 안으로 들어와 무려 내 성기를 물었다. 너무 아파서 그대로 바지춤을 잡고 아빠와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빠가 지네를 발로 밟아 죽여줬는데 요동치는 지네가 정확히 세탁기 위까지 튀어 올랐다. 저런 놈한테 물렸으니 아플 수밖에 없구나, 이래서 지네가 한약재로도 쓰이는 거구나. 다른 부연설명 없이도 알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