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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만추 Apr 03. 2020

식물 기르는 사람(上)

나는 식물 기르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

새해가 되면서 목표를 하나 세웠다. 방을 꾸며보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집 꾸미기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도 딱히 방을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어렸을 적 친척에게서 물려받은 책상과 엄마가 어딘가에서 얻어온 책장, 초등학교 1학년 때 샀는데 아직까지도 멀쩡한 초록색 스탠드 조명을 거리낌 없이 썼다. 책상의 코팅이 벗겨져 가끔 옷이나 살에 나뭇가지가 박히곤 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프니까 박힌 나뭇가지 빨리 빼야지’란 생각은 했어도, ‘이놈의 책상 바꾸든가 해야지’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 동생은 달랐다. 틈틈이 자신의 취향이 담긴 소품을 주문했다. 아직 독립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방을 꾸밀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동생은 과일 한 쪽을 먹을 때도, 자신의 취향이 오롯이 담긴 접시를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동생이 산 접시를 예뻐하면서도 거기서 끝인 사람이었다. 가끔 몰래 동생의 예쁜 접시를 사용하는 양심이 좀 없는 사람이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 1년간 온갖 서류와 책으로 어지럽혀놓은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니 갑자기 방을 꾸미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한해를 너무 힘겹게 보내서였을까. 나 자신을 조금 돌보고 싶어 졌다. 내 방 안에 마음에 드는 부분을 만들고 싶어 졌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집 꾸미기를 검색했다. 넘쳐나는 이미지 속에서 몇 가지 패턴을 발견했는데 그중 하나가 식물이었다. 식물 기르는 것이 순수한 나의 취향인지 아니면 넘쳐나는 이미지를 보며 은연중에 학습된 취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생각했다. ‘어머, 나 어렸을 때 동물 대신 식물 기르고 싶어 했잖아. 운명이네.’     


초등학생 시절 교실 뒤편은 담임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작은 동물원이 되기도 하고, 식물원이 되기도 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본인이 기르던 토끼 한 마리를 데리고 와, 교실 뒤편에 두셨다. 3학년 때는 조별로 길쭉한 파란색 화분에 씨앗을 심어 기르곤 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야외활동할 때 잡아 온 올챙이가 수조 속에서 힘차게 헤엄치고 있었다. 5학년 때는 개인 화분에 씨앗을 심어 길렀다. 초등학생 때 무슨 씨앗을 심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나는 동물보다 식물이 좋았다.      


나에게 동물은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이자 무서운 존재다.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동물이 움직이는 게 너무 무섭다. 가까이 오면 올수록 긴장돼서 몸이 굳는다. 식물을 동물보다 좋아하는 이유다. 식물은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래서 친구들이 반려동물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동물보단 차라리 식물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고 식물을 감당할 수 있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3학년 때 길렀던 식물은 다른 조원들보다 싹이 늦게 트는 바람에 애간장을 태우게 했다. 5학년 때 길렀던 식물은 싹이 트고 얼마 자라지도 않아서 죽어버렸다.      


초등학교 이후에도 식물을 기를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그 기회를 일부러 놓치곤 했다. 몇 년 전에는 친구가 반려 나무를 키운다기에 관심이 생겨 반려 나무를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에도 몇 번 들락거렸다. 나무 종류만 여러 번 확인하고 구입하지는 않았지만. 방 꾸미기를 계획하면서 눈여겨봤던 식물은 여전히 내 방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에세이를 준비하면서도 나는 내가 식물 하나를 구입해 기를 줄 알았다. 에세이 주제가 정해지자마자 ‘드디어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또 구입하지 않았다.     


식물이야 당장 구입할 수 있었지만, 자꾸만 4월이 지나고 난 이후 식물의 행방을 상상하게 됐다. 과연 내가 이 에세이를 다 쓰고 나서도 식물을 지극정성으로 기를까? 식물에 벌레가 꼬이면 어쩌지? 그렇게 좋아하던 꽃다발 선물도 화병에 한 번 꽂아보지 못하고 쌓아두다가 속상해하며 버리기 일쑤였던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선 많은 공부와 엄청난 각오가 필요하다고 한다. 식물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쩌면 나는 식물을 보는 건 좋아하지만 기르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손바닥만 한 나의 정원을 만드는 것을 꿈꾸고 있다. 식물을 기르는 건 나의 취향이자 식물과 나는 운명이라고도 생각한다. 비록 입으로만 향유하는 취향이지만 그럼 뭐 어떤가. 누구나 그런 로망 하나씩은 가지고 있잖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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