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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Apr 06. 2020

너도 애쓰고 있었구나?

에세이 - 식물, 반려식물에 대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은 식물이 잘 자라는 집이었다. 

벤자민, 고무나무, 군자란, 스투키, 아이비, 난초 등 우리집 베란다는 늘 초록 식물로 가득했다. 아주 작고 보잘것 없는, 죽어가던 묘목도 우리집에선 파릇파릇 자라곤 했다. 보기 힘들다는 벤자민 열매도 자주 봤고, 군자란은 매년 다홍색 꽃을 한가득 피우곤 했다. 엄마는 가끔 베란다 호스를 길게 뽑아 들고 화분에 물을 주곤 하셨다. 베란다 바닥이 흠뻑 젖을 만큼 화분이 물을 먹고 나면 베란다에서는 옅은 흙냄새와 풀냄새가 났다. 베란다와 연결된 내 방 샤시를 열어두면 온 방 가득 초록향이 나는 것 같았다. 


식물이 잘 자라는 집은 아이들도 잘 자란다고 했다. 어디서 들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 그 말은 내게 큰 위로였다. '이렇게 푸르게 잘 자라다니, 나도 그럴거야. 꼭 그럴거야.' 덕분에 나는 아주 건강한 20살이 되었고 어설픈 어른의 모습으로 혼자 살게 되었다. 베란다도 없고 작은 화분 하나도 없는 집에서 시작된 나의 자취는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다. 혼자 사는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작은 화분을 사고 식물을 키웠다. 그런데 생각보다 식물 기르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베란다에 두고 가끔 물만 주면 싱그럽고 푸르게 자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조금만 신경을 못 써도 말라버렸고 너무 자주 물을 줘도 물러버렸다.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최선을 다해 식물을 기르고 나를 길렀던 걸까. 최선을 다 하지 않았던 나의 베란다에는 흙만 남은 화분이 점점 늘었다. 


어느 이른 봄, 나는 몬스테라 화분을 집에 들였다. 지금까지 길렀던 식물과는 체급부터가 달랐다. 두 손으로 꽉 껴 안아야 겨우 들 수 있는 제법 무거운 그 화분을 '오래 오래 잘 길러야지' 라는 다짐과 함께 집에 들였다. 처음 며칠은 매일 아침 인사를 했고 이름도 붙여줬다. 달력에 표시까지 해 가며 물을 줬고 해가 잘 드는 곳을 찾아 자리를 옮겨가며 관심을 쏟았다. 최선을 다 했다. 하지만 역시, 나는 내가 제일 중요했고 나를 먹이고 재우기도 벅찬 시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몬스테라를 잠깐 잊었다. 


너무 벅찬 날들이었다. 일도 많고 생각도 많았다. 나에 대한 믿음이 위태로운 시기였다. 지친 밤 어두운 집에 들어와 겨우 앉았다. 그러다 몬스테라와 눈이 마주쳤다. 몬스테라는 좀 늘어져 있었고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색이 좀 바래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컵 하나 가득 물을 담아 화분 가까이 앉았다. 그리고 그 앞에서 좀 울었다. 나의 몬스테라는 갓 짜낸 물감처럼 쨍하던 초록빛이 조금 누르스름해졌고 탄탄하고 탄력있던 줄기가 아래로 쳐져 있었는데, 가지 시작 부분 그 사이에서 아주 연한 빛의 새 잎이 나고 있었다. 물을 머금은 것처럼 촉촉해 보이고 속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 연두빛의 그 잎이 이상하게 나를 울렸다. 


"너도 애쓰고 있었구나?"

"너는 자라고 있었구나?"


화분 앞에서 잠시 청승을 떨고 나서, 화분 가득 물을 먹였다. 좀 부끄럽기도 했다. 풀 앞에서 절절 울다니. 허겁지겁 물을 마시는 나의 몬스테라를 응원하면서 나는 나를 위로했다. 새 잎이 자라나듯 나도 자라겠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자람이라도 언젠가는 쏙- 하고 잎을 올리겠지. 화분 속 식물은 자라는 것으로 나를 또 위로했다. 위로 받았다. 


그 때 그 몬스테라는 두번째 겨울을 나와 함께 보냈다. 반려 식물을 기르는 삶은 시간을 내어 나를 돌아보게 해 준다. 나는 이 친구 덕분에 매일매일 아주 조금씩 더 자라고 있다. 


나의 반려 동물, 그리고 반려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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