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9시 30분, 천안아산역. 남편을 픽업하러 갔다. 매월 홀수 달 둘째 주는 모란 문화유적 답사일. 남편이 12년째 회장이라 난 빠질래야 빠질 수도 없다. 나 혼자 자유롭게 있고 싶어도 "같이 가자"는 남편의 한 마디면 게임 오버.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선배님이시라… 쩝!
남편에게 역사와 문화재 답사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 경주 박물관 대학에서는 짝수 달마다 답사를 가니 그는 매달 전국을 돌아다닌다. 40년째 한 우물을 파며 공부하고 자료를 찾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하지만 그런 남편이 "같이 가자"라고 한마디 하면 나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싶지만 또 따라가게 된다.
지난주 그의 세 번째 책을 출간했다. 한글, A4 10.5 폰트, 165줄 간격,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 그의 꼼꼼한 성격 덕에 손댈 필요도 없이 그대로 출판했다. 그러니 내가 "바빠서 못 가" 해도 남편 귀에는 안 들린다. 막상 답사를 같이 가도 자긴 회원들과 시간을 보낸다. 난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 가능한 회원들께 남편을 양보하는 게 나도 맘이 편하다. 답사날은 내가 자연스럽게 비서가 되는 것 같다.
그가 오면 내 일정은 자동 플러스 원(+1)이다. 혼자 있다 그의 등장은 먹는 것부터 그의 일정도 나의 일정과 조정해야 하고 하여간 일이 많아진다. 천안 아산역에서 남편을 보면 반갑다. 집으로 가는 길,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가 집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내 책상은 공용이 된다. 이번엔 노트북도 안 가져와서 내 노트북까지 공유 중. 남편이 "조금만 쓰겠다"라고 하면, 그 ‘조금’이 얼만큼인지. 쩝!
남편은 역사 공부에 너무 진심이다. 아니, 너무 깊다. 난 넓고 얕은 지식을 추구하는데, 그는 땅을 파서 유물을 발굴할 기세로 공부한다. 그러니 남편이 "내 책 좀 읽어봐" 하면 솔직히 난 겁부터 난다. 그 책을 읽으려면 내용도 어렵고 문체도 너무 전문서적이라 부담스럽다. 남편이 깊이 파고들수록 나는 더더욱 넓고 얕아진다. 아들은 그런 나를 보고 "엄마도 좀 더 공부해서 내공을 쌓아야 해!"라며 훈수를 두지만, 난 속으로 생각한다. '얕은 지식도 벅차다, 인마...'
혼자 있을 땐 라면 하나로 버티던 점심도 남편이 오면 밥상이 달라진다. 아무래도 주말부부라 혼자 있을 땐 먹는 게 부실해 늘 맘이 쓰여서 집에 오면 뭐라도 하나 더 챙기게 된다. "마누라 밥이 최고야!" 으음~ 이소리가 꼭 좋지만은 않다. 내가 너무 못됐나?
우리 왕언니 말씀은 "나 먹자고 차려 먹진 않지. 남편이 있으니 같이 챙기는 거야. 그 덕에 나도 제대로 챙겨 먹게 되는 거지 " 예전엔 몰랐는데 이제는 그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혼밥으로 맘대로 먹는 게 편하긴 하다.
금요일엔 서울에서 콘텐츠 크리에이터 과정 발표가 있어서 종일 바빴다. 학원은 알바 선생님께 맡기고 다녀오니 밤 12시. 남편은 안 자고 기다리고 있다. 감동받아야 하나? 부담스러워해야 하나? "당신 피곤할 텐데 안 자고 뭐 해?" 하고 물으면 남편이 하는 말. "그냥... 기다렸어." 로맨틱한 것 같은데, 막상 듣고 나면 왠지… 부담이다. 눈에 잠이 가득하면서 그냥 주무시지.
토요일 새벽, 새벽 일찍 블로그 글 올리고 성남으로 출발했다. 남편은 문화재 해설 담당, 나는 후배 회원 모드로 조용히 따라다닌다. 일부러 회장님 아내 티를 안 내는 나름의 배려다. 그렇게 하루 종일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내고, 일요일 오후 그가 울산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이상하게 가볍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이 기분, 뭐지? 나만 그런가? 아니, 아마 그도 울산 집에 도착하며 똑같이 생각하겠지. "어우, 드디어 내 공간이다!"
주말부부 생활이 너무 길어졌나? 부부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란 게 필요하다. 함께할 때의 따뜻함도, 각자의 공간에서의 자유로움도. 이렇게 세월을 쌓아간다.
3대 조상이 덕을 쌓아야 한다는 주말부부. 그가 떠난 뒤 집으로 돌아오며 괜스레 미안해진다. 하지만 솔직히… 좋다.
주말부부, 혹시 부러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