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방학이면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 내 고향으로 갑니다. 엄마 아버지는 왜? 나만 시골 할머니네로 보냈는지, 그땐 몰랐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큰집 식구들이 거창 읍으로 다 이사 나가고 할머니 혼자 커다란 기와집을 지키고 계셨으니 덜 외로우시라고 절 보내셨겠지요.
그 시골집은 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큰집은 안채에 커다란 기와집이 있었고,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엔 아래채가 있었답니다. 방학이면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 아래채를 뛰어다는 게 좋았습니다. 안채의 대청마루 문을 전부 열면 뒷마당이 보입니다. 뒷마당 왼쪽엔 굴을 파서 거기다 항아리를 놓고 음식을 보관했답니다. 어린 맘에 그 작은 굴이 너무 좋아서 갈 때마다 손을 넣어보고 머리도 넣어봅니다. 그러면 특유의 바위 냄새가 납니다. 뭐랄까? 돌멩이 냄새와는 다른 큰 바위 냄새 동굴 냄새는 아니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할머니네 작은 굴 냄새가 있답니다.
아래채에서 엄마 아버지의 신혼살림이 시작되었고, 저도 그 집 작은방에서 태어났답니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 첫 명절에 화를 내셨대요.
가족들이 가득 모인 방에 불이 켜진 걸 보고 “우리 은미가 있는데 불은 왜 켜냐고.”
그 말이 온 식구에게 웃음을 안겨줬답니다. 그렇게 모두에게 웃음을 주신 아버지가 태어나고 사신 곳이, 바로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입니다.
그곳에 할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으니, 큰손녀인 나라도 방학 동안 보내 같이 있으라고, 말벗 좀 되어드리라고 아버지가 절 그곳에 보냈던 것 같습니다.
큰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셨고, 사촌들도 읍에 있는 학교를 다니니, 할머닌 외로우셨을 거라는 아버지 마음이 저를 통해 전달된 것이겠지요. 전 멋모르고 그냥 할머니가 좋아서, 거창 가는 걸 마냥 기다리고 좋아했답니다.
부산서 학교 다니다 방학이면 거창으로 갈 수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방학이면 할머니랑 들판도 나가고, 밭에 앉아 풀도 뽑고, 들깨밭 김도 매고,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밥상을 독차지하며 그야말로 할머니 사랑을 실컷 받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할머니 품에서 귀한 큰손녀였거든요.
할머닌 언제나 가마솥 밥을 해주셨어요. 정지간에서 군불을 때며 밥을 짓고, 그 위에 호박잎을 얹어 찌고, 집에서 키운 달걀로 계란찜도 같이 올려 익히셨죠. 그게 참 신기했답니다. 어떻게 밥을 하면서 호박잎도 찌고 계란도 찌는지, 너무 신기해서 정지간에서 할머니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할머니 손만 뚫어지게 쳐다봤어요. 어쩌면 1타 3피의 가마솥 밥은 제겐 할머니 그 자체입니다.
가마솥이 펄펄 끓어 가마솥이 눈물을 흘릴 때면, 김이 오를 때면 그때 무거운 가마솥뚜껑을 행주로 감싸서 옆으로 쓱 밀칩니다. 그 위에 얹은 계란찜과 호박잎이 함께 넣습니다. 그 뜨거운 김에 손을 넣으면서요. 울 할머니 손은 뜨겁지도 않은지 그렇게 설익은 밥 위에 계란찜과 호박잎은 찝니다. 그렇게 할머니 손끝에서 1타 3피의 요술 같은 요리가 완성됩니다.
때론 군불의 숯을 꺼내 잔열로 자반고등어도 구워주셨는데, 그 자글자글한 고등어 기름이 떨어지는 걸 처음 봤어요. 어린 마음에 ‘저건 무조건 맛있는 거다’ 하고 단번에 확신했죠. 그 후로 저는 지금까지도 자반고등어를 제일 좋아합니다. 제게 자반고등어는 곧 할머니의 음식입니다.
할머니는 갈치를 젤 좋아하셨는데, 비싸서 자주 못 드셨습니다. 그래서 고등어를 더 많이 드셨죠. 저야 뭐 주는 대로 맛있게 먹기만 했습니다. 할머니가 갈치를 유난히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는 훗날 엄마가 알려줘서 알았답니다.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고등어 기름이 떨어질 때면, 그 냄새에 침이 절로 넘어갔어요. 우리 할머니는 정말 똑똑하시구나. 군불 때기 남은 숯으로 고등어 굽는 거 보면, 전 대단한 분이라 느꼈죠.
나무 타는 냄새, 군불 앞에서 불 멍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무가 타닥타닥 타는 소리, 고등어 굽는 냄새, 밥이 익어가는 냄새 그 모든 게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이 됐습니다.
집 뒤 닭장에서 제가 가져온 계란 두 개로 만든 노란 계란찜,
막 따서 까시래기 벗겨낸 초록 호박잎,
하얀 쌀밥은 색도 참 맛깔스러웠답니다. 때론 밥상을 정지에 펴고 아궁이 옆 그 자리에서 밥을 먹기도 했답니다. 군불 옆에 할머니랑 둘이 앉아서 작은 나무 상위에 밥과 호박잎과 계란찜 그리고 할머니 김치과 쌈장이랑 먹습니다.
할머니가 된장 넣어 만든 쌈장에 좀 까끌거리는 호박잎을 돌돌 싸서 한입 크게 넣으면, 입이 미어터질 듯했죠. 할머닌 잘 먹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저는 보란 듯이 더 큰 쌈을 싸서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그러다 캑캑거리기도 했지요. 그럴 땐 할머니 등이 가볍게 두드려지고,
“은미야 천천히 묵어라 아무도 안 뺏어간 데이~ 자 물 마셔라” 하며 물도 따라주시곤 했죠.
할머니를 독차지하고, 혼자 사랑받는 그 기분. 지금 생각해도 정말 멋졌고, 따뜻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어릴 적 그 시골집, 그 부엌, 그 밥상, 그리고 할머니가 요즘따라 자꾸 생각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도 할머니처럼 그렇게 따스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아들이 결혼하고 나니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우리 손녀는 나를 내가 내 할머니를 기억하듯 그렇게 기억해 줄까?
군불 냄새, 가마솥 눈물 흘리는 모습, 타닥거리는 장작불, 1타 3피의 요술 같은 할머니 가마솥 밥 그런 건 전 못합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따스한 사랑은 대를 이어 전달되었으면 하는데 말이죠. 할머니가 보고 싶네요. 지금은 비어있는 큰집 뒷마당 한쪽에 있는 굴은 여전히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꿈에 할머니가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꿈에서라고 할머니께 가마솥 밥 제가 지어드리고 싶네요.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 할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할매.
#1타3피가마솥밥 #할머니의밥상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 #어릴적추억 #가마솥밥냄새 #군불 #계란찜 #호박잎 #자반고등어 #글담코치줄리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