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마솥 밥과 할머니

by 글담쌤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방학이면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 내 고향으로 갑니다. 엄마 아버지는 왜? 나만 시골 할머니네로 보냈는지, 그땐 몰랐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큰집 식구들이 거창 읍으로 다 이사 나가고 할머니 혼자 커다란 기와집을 지키고 계셨으니 덜 외로우시라고 절 보내셨겠지요.


그 시골집은 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큰집은 안채에 커다란 기와집이 있었고,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엔 아래채가 있었답니다. 방학이면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 아래채를 뛰어다는 게 좋았습니다. 안채의 대청마루 문을 전부 열면 뒷마당이 보입니다. 뒷마당 왼쪽엔 굴을 파서 거기다 항아리를 놓고 음식을 보관했답니다. 어린 맘에 그 작은 굴이 너무 좋아서 갈 때마다 손을 넣어보고 머리도 넣어봅니다. 그러면 특유의 바위 냄새가 납니다. 뭐랄까? 돌멩이 냄새와는 다른 큰 바위 냄새 동굴 냄새는 아니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할머니네 작은 굴 냄새가 있답니다.


아래채에서 엄마 아버지의 신혼살림이 시작되었고, 저도 그 집 작은방에서 태어났답니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난 첫 명절에 화를 내셨대요.

가족들이 가득 모인 방에 불이 켜진 걸 보고 “우리 은미가 있는데 불은 왜 켜냐고.”

그 말이 온 식구에게 웃음을 안겨줬답니다. 그렇게 모두에게 웃음을 주신 아버지가 태어나고 사신 곳이, 바로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입니다.


그곳에 할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으니, 큰손녀인 나라도 방학 동안 보내 같이 있으라고, 말벗 좀 되어드리라고 아버지가 절 그곳에 보냈던 것 같습니다.


큰아버지가 국민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재직하셨고, 사촌들도 읍에 있는 학교를 다니니, 할머닌 외로우셨을 거라는 아버지 마음이 저를 통해 전달된 것이겠지요. 전 멋모르고 그냥 할머니가 좋아서, 거창 가는 걸 마냥 기다리고 좋아했답니다.


부산서 학교 다니다 방학이면 거창으로 갈 수 있어서 참 좋았답니다. 방학이면 할머니랑 들판도 나가고, 밭에 앉아 풀도 뽑고, 들깨밭 김도 매고, 무엇보다도 할머니의 밥상을 독차지하며 그야말로 할머니 사랑을 실컷 받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저는 할머니 품에서 귀한 큰손녀였거든요.



%EC%BA%A1%EC%B2%98.JPG?type=w1




할머닌 언제나 가마솥 밥을 해주셨어요. 정지간에서 군불을 때며 밥을 짓고, 그 위에 호박잎을 얹어 찌고, 집에서 키운 달걀로 계란찜도 같이 올려 익히셨죠. 그게 참 신기했답니다. 어떻게 밥을 하면서 호박잎도 찌고 계란도 찌는지, 너무 신기해서 정지간에서 할머니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할머니 손만 뚫어지게 쳐다봤어요. 어쩌면 1타 3피의 가마솥 밥은 제겐 할머니 그 자체입니다.


가마솥이 펄펄 끓어 가마솥이 눈물을 흘릴 때면, 김이 오를 때면 그때 무거운 가마솥뚜껑을 행주로 감싸서 옆으로 쓱 밀칩니다. 그 위에 얹은 계란찜과 호박잎이 함께 넣습니다. 그 뜨거운 김에 손을 넣으면서요. 울 할머니 손은 뜨겁지도 않은지 그렇게 설익은 밥 위에 계란찜과 호박잎은 찝니다. 그렇게 할머니 손끝에서 1타 3피의 요술 같은 요리가 완성됩니다.


때론 군불의 숯을 꺼내 잔열로 자반고등어도 구워주셨는데, 그 자글자글한 고등어 기름이 떨어지는 걸 처음 봤어요. 어린 마음에 ‘저건 무조건 맛있는 거다’ 하고 단번에 확신했죠. 그 후로 저는 지금까지도 자반고등어를 제일 좋아합니다. 제게 자반고등어는 곧 할머니의 음식입니다.


할머니는 갈치를 젤 좋아하셨는데, 비싸서 자주 못 드셨습니다. 그래서 고등어를 더 많이 드셨죠. 저야 뭐 주는 대로 맛있게 먹기만 했습니다. 할머니가 갈치를 유난히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는 훗날 엄마가 알려줘서 알았답니다.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고등어 기름이 떨어질 때면, 그 냄새에 침이 절로 넘어갔어요. 우리 할머니는 정말 똑똑하시구나. 군불 때기 남은 숯으로 고등어 굽는 거 보면, 전 대단한 분이라 느꼈죠.


나무 타는 냄새, 군불 앞에서 불 멍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무가 타닥타닥 타는 소리, 고등어 굽는 냄새, 밥이 익어가는 냄새 그 모든 게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이 됐습니다.


집 뒤 닭장에서 제가 가져온 계란 두 개로 만든 노란 계란찜,

막 따서 까시래기 벗겨낸 초록 호박잎,

하얀 쌀밥은 색도 참 맛깔스러웠답니다. 때론 밥상을 정지에 펴고 아궁이 옆 그 자리에서 밥을 먹기도 했답니다. 군불 옆에 할머니랑 둘이 앉아서 작은 나무 상위에 밥과 호박잎과 계란찜 그리고 할머니 김치과 쌈장이랑 먹습니다.


할머니가 된장 넣어 만든 쌈장에 좀 까끌거리는 호박잎을 돌돌 싸서 한입 크게 넣으면, 입이 미어터질 듯했죠. 할머닌 잘 먹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저는 보란 듯이 더 큰 쌈을 싸서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그러다 캑캑거리기도 했지요. 그럴 땐 할머니 등이 가볍게 두드려지고,


“은미야 천천히 묵어라 아무도 안 뺏어간 데이~ 자 물 마셔라” 하며 물도 따라주시곤 했죠.

할머니를 독차지하고, 혼자 사랑받는 그 기분. 지금 생각해도 정말 멋졌고, 따뜻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어릴 적 그 시골집, 그 부엌, 그 밥상, 그리고 할머니가 요즘따라 자꾸 생각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도 할머니처럼 그렇게 따스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아들이 결혼하고 나니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우리 손녀는 나를 내가 내 할머니를 기억하듯 그렇게 기억해 줄까?


군불 냄새, 가마솥 눈물 흘리는 모습, 타닥거리는 장작불, 1타 3피의 요술 같은 할머니 가마솥 밥 그런 건 전 못합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따스한 사랑은 대를 이어 전달되었으면 하는데 말이죠. 할머니가 보고 싶네요. 지금은 비어있는 큰집 뒷마당 한쪽에 있는 굴은 여전히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꿈에 할머니가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꿈에서라고 할머니께 가마솥 밥 제가 지어드리고 싶네요.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 할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할매.




#1타3피가마솥밥 #할머니의밥상 #거창군 #남상면 #월평리 #어릴적추억 #가마솥밥냄새 #군불 #계란찜 #호박잎 #자반고등어 #글담코치줄리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