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회사 기숙사로 입주한 지 한 달이 안 됐다. 지난주 집에 들렀다 하룻밤 자고 갔다, 다녀간 지 1주일 밖에 안 지났는데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시계를 보니 7시가 다 되어간다. 학원 아이들도 정리하고 집에 갈 준비를 한다고 부스럭거리며 피아노 책과 가방을 제자리에 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아이들의 움직임과 동선이 그려지는 저녁이다.
6시 퇴근인 아들 퇴근 시간이 지났다. 핸드폰을 들었다. 운전 중에 전화를 받는지 스피커폰 울림이다. 회사 막내와 드라이브를 하는 중이라길래 그러라고 이따가 연락하자고 얼른 끊었다. 10시다. 아들의 전화가 없다. 기다린다. 남편은 학원 운행이 마치자마자 울산행 ktx를 타러 가야 했다. 경주 박물관 대학의 동기들과 전라도 지역 답사 일정이 잡혀있다. 난 서울 일정이라 각기 다른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혼자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빈자리가 보인다. 가끔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자유로움과 공허함은 동시에 찾아온다.
혼자라 홀가분하게 소파 위에 앉았다 누웠다 해본다. 밀린 책을 집어 들었다 놓았다. 차를 한잔 마셔본다. 멍하다. 바쁘게 지낸 1주일이다. 늘 하는 학원 수업 외에도, 오전 아르바이트가 더해지고, 온라인 피아노, 수업 요즈음은 공저로 전자책을 편집 중이라 시간이 금 같다.
스스르~나도 모르게~
눈을 떠보니 새벽 3시 20분이다. 소파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깜짝 놀란다. 거실 불을 켜져 있다. 거실 돌 소파라 온도를 올려놓고 잠시 누웠는데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몸이 잠들었나 보다. 할 일이 가득한데 얼른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난다.
무심결에 울산 집에 도착한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새벽 5시 30분 알람을 부탁받은 기억이 난다. 핸드폰 기록에 아들 전화는 없다. 엄마 아빠랑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해놓고, 데이트는 자기 애인이랑 하고 회사 동료들이랑 한다. 치이~
아들의 빈방에 들어가 본다. 아직 다 가져가지 못한 짐이 보인다. 일렉기타와 통기타가 그대로 세워져 있다. 교회서 찬양단을 인도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잠시 침대를 쓰다듬어보고 나온다. 거실 작은 액자에 유치원 때 찍은 아들 사진이 보인다. 잠시 눈길이 멈춘다. 쓸데없이 신발장을 열어본다. 280 사이즈 한눈에 쏙 커다란 아들 신발도 눈에 들어온다. 욕실 문을 열었다. 아들 칫솔이 걸려있다. 자꾸만 여기저기 뒤지고 있다. 무슨 보물 찾기도 아니고... 이제 아들을 조금씩 떠나보내자 맘을 먹었는데 가끔 짝사랑이 올라온다.
내 아들에서 서영이 남편으로 우선순위가 바뀌는 과정인 거 아는데 서운한 마음이라기보다 허전한 마음이라고 할까? 이럴 때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엄마 생각이 난다. 울 엄마도 아들 결혼 시키고 같은 마음이었겠지.
아무도 없는 집인데 아들이 있다. 내 눈에 안 보이는데 아들이 있다. 아무래도 이놈의 짝사랑이 올라오는 걸 보니 나이가 드나 보다. 남편은 아들 보내는 마음이 나랑 같을까? 비슷하겠지? 가끔 집에 혼자 남을 때가 있다. 밀린 일들을 더 미뤄두고 아들 흔적을 찾아 뒤지는 내 모습을 본다.
회사 막내와 시간을 보내느라 나한테 전화 안 한 괘씸함이 남아 있나 보다. 자기 애인이랑은 통화했겠지? 엄마는 안중에 없는 게지 나쁜 놈... 괜히 욕해본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10분이다. 잠들었겠다.
에이~ 나도 울 엄마 서운한 마음 들게 했을 텐데...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든다. 확실히 나이 들었구나 싶다.
과정일께야. 이렇게 아들의 성장하는 거야. 어른이 되는 거야. 나도 그랬을 테고... 한 창 사랑할 나이이고 결혼 준비에 바쁜 시간을 보낼 텐데 보고픈 내 맘을 추슬러본다.
어릴 적 아들이 만든 찰흙 공룡을 보관 중이다.
못 버리는 마음은 뭔지?
짝사랑 별로 안 좋다.
그런데 짝사랑 진행 중이다.
#아들 #짝사랑 #빈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