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인생은 일생이다.
한번 태어나고 한번 살고 한번 죽는다. 이 세상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공통되고 공평한 일생이다. 살면서 죽음을 경험할 수는 없다. 죽음에 대한 생각도 거부하며 산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아직 죽지 않았다면 늙어가는 것이다.
작가인 경국현은 저자는 대학교수이자 사업가다. 성공이란 타이틀을 손에 쥐었을 때 백혈병이 걸렸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2017년 서울을 떠나 제주도 생활을 하고 있다. 제주도 바람을 맞고, 제주도 바다를 보며 그 번잡한 생각을 글로 끄집어내어 정리하였다. 건강하였다면 절대 생각할 수 없었던 그런 번뇌를 잔잔하게 풀어놓았다. 아버지의 이야기이고, 한 남자의 고백이고,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은퇴자의 고민이다
처음 '아부지 일기' 책을 만났을 때는 덤덤하니 책장을 펼쳤다. 그렇게 책장을 펼치면서 '나' 라면 어땠을까? 속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51살이다.
병원에서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죽는 줄 알았는데 살았다.
암 치료와 병원생활의 힘듦을 이기고 나았다.
제주로 갔다.
요양을 핑계로 제주에 살고 있다.
57세! 재발이다.
이젠 진짜 죽는구나.
죽어야 하는구나... 그런데 아직 살아있다.
작가의 목소리는 죽음을 앞둔 특별한 경험을 글로써 남겼다. 살아 있는 타인에게 주는 메시지며 스스로의 고뇌가 가득한 인생 고백이다.
아주 오랜 전이다.
외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장례를 치를 땐 어려서인지 죽음이 뭔지 고민하거나 깊이 생각해 보질 않았다.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지 못한다는 슬픔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추억의 한 자락이 떠오를 때를 제외하면 나의 생각 속에서 두 분은 무의식 저 아래 어디엔가 가라앉아 있다.
직접 죽음을 경험한 건 친정아버지를 보낼 때였다. 결혼 후 아버지의 위암과 대장암 소식을 접하고 아버지의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친정 엄마와 2층에 사는 여동생의 극진한 보살핌과 간호가 아버지의 생명을 더 연장시킨 건 사실이다. 그렇게 아버진 온 가족의 관심을 받으며 암을 이기셨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점점 쇠약해지신 아버지는 살 하나 없이 마른 몸으로 하늘의 별이 되셨다. 죽음 아라는 것, 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이 옆에서 바라보며 가슴 절절한 것 그때가 처음이었다.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 한 죽음을 가까이 생각하거나 고민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진짜 고독을 아직은 맛보고 싶지 않은데... 피하는 걸까? 아님 아직 생의 여유가 있다는 착각을 하는 걸까?
혼자 죽어가는 시간을 진짜 고독이라 말하는 작가의 그 '진짜' 이젠 진짜라는 말은 금기어처럼 사용하게 되겠다.
삶 자체가 소유이고, 욕심이다.
우주에 나 혼자 살아간다면 욕심이 있을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 내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살지 않기 때문에, 욕심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이다.
그 어떤 욕심도 죽음 앞에서는 의미 없다.
성공, 행복, 돈, 부자, 등의 모두는 내가 살아있을 때만 가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부질없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지금 죽어가기 때문이다.
- 아부지 일기
욕심도 살아있는 자가 누리는 호사인가?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인간의 욕망이 부질없는 순간은 죽음 앞에서 인간이 겸손(?) 인가? 내일이 없다는 생각을 못 하고 과거의 내가 있으니 현재의 나도 있으니 당연히 미래의 나도 존재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지배적이다.
인간의 유한한 삶이 피부로 와닿지 않음이다. 죽어가는 것을 느끼고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돈을 버는 사람이 누구이건 그 돈을 쓰는 사람이 돈의 임자이다. 남편이 번 돈을 내가 쓰면 그 돈의 주인은 나이고 내가 번 돈을 아들이 쓰면 그 돈의 주인은 아들인 것이다. 일생을 돈 벌기에 몰빵 하기보다 번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죽어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순장하듯 돈을 무덤에 묻지도 않는다.
우리는 일상을 그냥 산다.
돈 부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 부자가 진짜였음을 알았다.
삶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하루하루를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나는 돈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시간 거지로 살고 있었다.
바보같이 산 것이다
-아부지 일기
아차차!
나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 돈부자의 길을 가고 있구나. 돈보다 시간 부자여야 하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돈 버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네. 삶의 본질을 시간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항변에 뜨끔해진다.
나 지금 '시간 거지'인 거 맞지? 평생 성공을 위해 달려온 저자의 삶이 억울하게 보인다. 너무 잘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백혈병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다른 방향으로 전환을 하게 한다.
이렇게 아파봐야 깨닫는 게 인생일까? 나의 무지와 모자람이 책을 읽으며 한심하게 와닿는 순간이다.
아부지 일기 저자 경국현 출판 부크크(bookk)발매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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