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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 피아노 친다고 되게 뻐기네. 엄마 2만 원

by 글담쌤


꿈 많은 여고 시절 목사님 딸이었던 친구를 따라서 간 교회에서 ‘샤론의 밤’을 한다고 했다. 처음 듣는 성가곡은 어린 마음에 너무 아름다웠다. 신앙. 믿음 이런 건 하나도 없었다. 다만 합창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교회라는 공간이 주는 묘한 공기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하지만 ‘샤론의 밤’을 위한 합창곡을 연습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피아노 반주자가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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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니 옆의 교회에 다니는 반주자를 모셔왔다. 이름 모를 여고생 친구는 앙탈을 부리며 반주를 잘 안 해주었다. “가시나 피아노 칠 줄 알면 반주 쫌 해주지! 엥가이~ 뻐기네”라고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교회 다니면 다 착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찬양 연습한다고 모였는데 반주자가 없어서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때론 지휘자 선생님께서 반주자랑 함께 오시기도 했다.


우리가 교회 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게 그 반주하는 친구를 찾아가서 사정하는 것이었다. “야~ 반주 좀 해주라”라고 부탁을 하면, “내가 너그 교횔 왜 가는데, 너거 교회 반주는 너그가 알라서 해라 내 바쁘다”라고 하면서 뒤로 안 돌아보고 휙~ 가버렸다. ‘“이야~ 가시나 억수로 재수 없네. 머 저런 기 다 있노.”’ 하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소리로 욕을 했다.


교회 갔다가 허탕 치고 찬양 연습 못 하고 돌아오는 날은 “가시나 피아노 좀 친다고 잘난 척하네. 내가 반주하면 맨날 해주겠다. 더러버 죽겠다. 치사빤스닷! 내가 반주자 해야 되겠다!” 이런 꿈을 꿨다. 그리고 기도라는 걸 했다. “하나님 내가 피아노 배워서 반주 하께요. 내 피아노 좀 갈쳐주이소. 내는 안 뻐기고 착하게 하께요. 아멘~”


대학입시가 끝나고 엄마께 통 사정을 했다.

“엄마 내 2만 원만 주이소 제발요~” 불쌍하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알랑 방구를 낀다. “가시나가 2만 원이 누구 이름이가 머할라꼬 그라노?” 엄마의 날선 목소리에 최대한 저자세로 부드럽게 “엄마 내가 피아노를 배울라 카거든요. 내 2만 원만 주이소” 살살거리며 온갖 아양을 떨었다.


“치아라~ 인자와서 피아노는 무슨 피아노고 됐다 마~” 포기하면 안 되지 하는마음으로 난 다시 “엄마 내가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다 하께요. 2만 원만 주이소!” 엄마는 콧방귀도 안 낀다.


다음날도 난 엄마 앞에서 살살거리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방청소도 했다. 2만 원이 필요했다. 당시 피아노 학원 학원비가 2만 원이었다. 난 교회 반주를 해야 했기에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요 내가 피아노 배워서 반주한다 캤쟎아요. 우리 엄마한테 돈 좀 주라카이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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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탓인지 나에게 시달려서인지 엄마 주머니에서 2만 원이 나왔다. 당장 학원으로 달렸다. 고3 입시도 끝난 상태였던 난 미친 듯이 피아노를 연습했다. 얼마나 재밌고 신났는지 모른다. 한 달한 배우면 교회 반주를 하는 줄 알았는지 모르겠다. 진도는 술술 넘어갔고 원장님도 놀라셨다. “은미야 피아노 억수로 잘하네 ”


2만 원으로 배운 한 달은 후딱 지나갔다. 다음 달 레슨비가 필요했다. 다시 엄마 앞에서 또 살살거리며 2만 원을 외쳤다. “이노무 가시나가 와카노 한달 했으먼 됬지 머~ 또~ 고마해라” 엄만 됐는지 몰라도 난 안됐다. 조르고 졸라 또 2만원을 들고 학원으로 달렸다. 2달을 배워 바이엘 상.하를 다 끝냈다. 그러나 그 정도론 교회 반주가 어림도 없었다.


스케치북에 건반을 그렸다. 그리고 찬송가를 꺼내서 연습했다. 4부 반주는 어렵고 정신이 없었다. 쉬운 거부터 해보자 마음먹고, 유년부 주일학교 찬송가를 들었다. 그리고 책상 위의 스케치북 건반을 두드린다. 그렇게 나의 피아노는 시작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알바를 하면서 돈이 생기면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가고 없으면 안 배우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여름 성경학교가 시작되었다. 내가 피아노를 배운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난 왕초보였는데 반주자가 모자랐던 까닭에 난 피아노 앞에 앉혀졌다. 나의 반주 인생이 시작되었다. 엉터리 반주에 실수투성이였다. 그래도 꿋꿋하게 했다. 쪽팔림보다 연습이 필요했고 연습보다 반주자가 없는 교회가 너무 싫었다. 난 잘난 척하지 않았다. 하나도 잘난 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감사했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10년쯤 지났을까? 아니 더 긴 세월이 흐른 후....

그렇게 시작한 피아노는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되었다.



#가난 #피아노 #교회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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