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씀씀 Jan 24. 2021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일

《살아가는 거야》

입사 한 달 차.

귀가 피곤하다는 말이 이런 느낌일까

낯선 미팅 자리에서 생소한 단어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알아서 사람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중이다.


귀에서 흘러가는 단어들을 붙잡으려 열심히 메모장에 끄적였지만, 퇴근 후 다시 정리하려고 들여다보면 알 수 없는 문맥과 단어로 긴박함은 느껴지나 특별히 머리에 남는 건 없었다.


하루 종일 특별히 중요한 업무를 하는 건 없더라도 한번 들어도 머리로 딱딱딱 이해하는 영리함을 발휘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문맥 흐름과 단어들을 들으며 능숙하게 문제를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 주, 5일을 꽉꽉 모르는 말들을 듣느라 지쳤던 눈과 귀를 주말에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되었다.


<살아가는 거야> 로이킴


-노래 가사 중에-


언젠가는 결국 끝이 나겠지

그 뒤엔 무언가 나를 위로해주겠지


많은걸 잃어서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내가 나를 맞이하겠지


그보단 나은 내가 기다리겠지



삶이란 살아가는 것, 지금 모든 걸 잃어버린 것처럼 가진 것은 없지만 이 모습 또한 언젠가 또 다른 맞이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느껴졌다.


그 모습은 나은 내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듯했다.


시작이라는 지점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한다. 평소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 마주하는 나의 모습도 새롭다.


하지만 언젠가 마주해야 할 변화라면 조금이라도 겁이 없을 때 도전하고 싶어 퇴사했고 얻은 것이 현재 내 위치다.


6개월 간 백수생활을 하면서 사회에서 역할이 분명한 구성원으로 빨리 자리 잡고 싶었고, 취업 문턱만 넘으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았지만 또 다른 불안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긴장감을 떨구지 못했다.


이것이 진짜 내가 바랐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시간을 주는 일


새로운 조직에 입사하면서 타인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대치가 얼마인지 모르면서도 그들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며 혼자 조급한 마음의 스트레스를 쌓고 있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보는 시선보다 더 먼저, 더 빠르게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재촉하면,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일을 잘하게 될 거라고 믿고 물리적인 업무 시간에 매달렸다.


하지만 마음만 급했는지 파악해야 할 일은 너무 커 보였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오히려 자신감을 깎아 위축되게 만들었다.


제대로 일하기도 전에 미리 겁을 먹고 ‘난 잘해야 해’ 병에 걸렸다.


이러한 강박증은 나를 긍정적으로 움직이게 만들기보다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 병을 유발했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일은 나를 강한 목표, 목적의식을 갖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걱정, 불안 친구를 동반하게 했다.


항상 나는 걱정했고, 불안했다.



그보단 나은 내가 기다리겠지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고 좋게 봐주는 것도 마냥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겸손이 미덕이라고 생각해서 타인의 긍정적인 평가에 몸 둘 바 모르며 나를 깎는데 급했다. 상대방이 ‘넌 잘할 수 있어.’ , ‘잘하잖아’라는 말을 하면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어필하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낯부끄럽기도 했고, 나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고개 숙이는 모습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잘할 거라고 용기를 주고 나에 대한 믿음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에게는 그렇지 못할 거라며 이미 나의 한계를 정해놓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나에게 <살아가는 거야>라는 노래는 항상 나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속삭였던 것 같다.


모든 걸 잃었을지 몰라도, 그 모습 조차 언젠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모습이 되어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오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나의 모습이 쌓여 언젠가 또 다른 나를 위로한 강한 사람이 되어있을 미래를 상상했다.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길을 나의 속도로 가려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 위로하고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카톡을 붙잡고 누군가 나를 인정하고, 보듬어주길 기다리지 않고 의연하게 나의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마음속 기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아지는 일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때이다.


시작을 앞둔 사람들이 크게 하는 실수, 조급하게 마음 먹고 서두르다가 지쳐 의욕을 잃는 일은 나에게 독이 될 테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직 새싹을 품고 있기 때문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