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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Mar 15. 2021

아직 새싹을 품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나를 위한 위로

부암동을 산책하며 하루를 보낸 어느 주말 나의 이야기.


하루가 모여 삶이 된다.


하지만 나는 하루를 삶으로 보지 않고 그저 ‘오늘’이라는 시간에 집착했다. 더 나은 나를 만들기 위한 하루만을 생각했고 내가 의도하지 못한 하루가 되었을 때의 좌절감으로 며칠간 후유증을 혼자 떠안고 있었다.


이번 주말이 나에게 그랬다. 어느 하루의 망침이 계속 나의 삶을 방해했고, 내가 연연했던 타인의 시선과 감정들을 곱씹으며 그들의 의도와 내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고민했다.


금요일 회사에서 있었던 작은 투닥거림, 나의 모습과 언어를 반겨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당장 다가올 월요일을 어떻게 보낼지 두려워졌다.


내가 해야 할 일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나의 말과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읽을지까지 고려했다.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업무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직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역량 부족한 내가 위치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여겼는지 동료들의 반응은 다소 싸늘했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뭘 알겠어”라는 생각이 들려오는 것 같아 오히려 내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내 하루를 망쳤다는 생각으로 금요일이 마무리되었고 주말 내내 나의 행동과 말이 어땠는지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때 나는 어떻게 행동했어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의도, 생각, 행동까지 헤아리다 보니 정작 나의 마음을 다독이지 못한 것 같았다.


내 시간 속 오늘, 이 하루 삶의 주인공은 나인데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왜 걱정하고 있는 거지?


삶을 축제로


지나가던 카페에 있던 문구였다. 내 삶을 축제로 만들지는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해주는 말이었다.


문득 지나가면서 이런 말을 보니 지금 이 좋은 날씨에 산책하고 있는 나와 우리 가족, 이 소중한 시간을 타인에 대한 잡념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새싹을 돋울 때니까


이직 후 3개월 차인 지금, 경력직으로 입사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을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해서 내 위치에 맞는 업무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고 내가 노력하는 만큼 동료들이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나를 따라주길 바랐다.


첫 입사만큼 첫 이직이기 때문에 서툴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흔들릴 때가 많다. 진심이면 다 통할 거야라는 내 신념이 무너질 때가 많다.


낯선 곳에서의 ‘적응’ 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제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되겠지 라는 순수한 마음으로만 부딪히다 보니 상처 받을 각오는 미쳐 하지 못해 당황스러운 하루를 보낼 때가 많다.


무언가를 보여주고 해야겠다는 부담감으로 그새 지친 듯 의욕이 꺾일 때가 많았다.


남들이 잘하는 것만 보이고 그에 비해 내가 부족한 것 채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보여 벅차기만 했다.


오늘 부암동에서 성북로 산책길을 걸으며 겨울나무에서 아주 작게 돋아나는 새싹들이 보였다. 3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지난겨울 품고 있던 씨앗에서 작은 새순이 돋고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가다가 가끔 아주 콩알처럼 작게 푸릇푸릇한 흔적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드디어 봄이 오는구나. 이제 이 겨울 산속 곳곳에서 봄을 맞이할 자기만의 준비를 시작하고 있구나.


비록 지금 푸석하게 쌓인 겨울 낙엽 속에 있는 나무들이라 할지라도, 나만의 꽃과 열매를 맺기 위해 묵묵히 싹을 돋우고 있는 부지런한 자연을 보며 위로를 얻었다.




겨울을 지나 곳곳에 보이는 푸릇, 싱그러움이 나를 자극하는 듯했다.


천천히, 늦지 않았어.


너의 갈 길을 묵묵히 가면 돼.


잘하고 있어.


언젠가 네가 피운 꽃을 사람들이 돌아봐줄 날이 곧 올 거야.




새싹이 어여쁜 꽃과 달콤한 열매가 되지 않더라도. 모든 생명의 꿈틀거림은 고귀하고 에너지 있음을 느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피워낼 준비하는 시간과 생명력을 눈으로 보고 나서야 스스로 다짐하고 위로할 여유가 생겼다.


언젠가 계절에 맞는 때가 되면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준비해 온 사람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조급할 필요 없이, 서두를 필요 없이 그저 나의 길을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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