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주제로 4번째 미팅을 준비하고 있다. 부족했던 나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주고 있는 걸까. 매주 리뷰를 하자면서 막상 아무도 매일매일 신경 쓰지 않는 이 프로젝트의 데이터, 주제에 대해서 나는 어떤 결론으로 이 미팅을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이유, 현상 설명에 대해서 일별 데이터를 나열한 gap 분석이 시작이었고, ‘어쩌자고’, ‘분석이 미흡하다’, ‘이유가 뭐냐’, ‘뭘 할 것이냐’ 등 상사의 질문에 매번 한 가지씩 부족해던 보고서 목차, 나의 대답이 미팅의 미팅을 낳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족했던 목차를 채우고 계획을 넣어보고, 여러 가지 버전으로 선택사항을 만들어 보고서 양식을 바꿔보았다. 하지만 4번째쯤 미팅을 계속 끌다 보니, 나야말로 ‘당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입니까?’를 스스로 정의 내리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다.
흔히 보고서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궁금한 이야기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쓰라고 조언한다. 내가 이 문제, 프로젝트를 어떻게 접근해서 결론에 이르렀는지 ‘나 잘했지?’ 과정보다는 이 보고서를 왜 요청했는지 최초 요청자, 듣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구조화하는 것이 올바른 보고서의 핵심인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상사 부류를 볼 때 본인도 본인이 궁금한 게 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니 “ ooo 좀 봐줘, ooo에 대해서 gap 분석 좀 해줘” 등 두루뭉술한 요청을 하게 되고 짧은 이 문장 안에서 최종적으로 이 보고서를 어디에 활용할 것이냐를 알지 못한 채 듣는 사람 입장에서 보고서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미팅의 결말은 이미 “ooo 이 ooo으로 개선되어 당신이 생각하는 그 기준에 맞출 수 있으며 문제가 없을 예정이다.” 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개선해야 되는 프로젝트 업무는 조직의 인력 운영이라는 점에서 단기간에 데이터상 드라마틱한 결과를 보여주기 어렵고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숫자만으로 개선 포인트를 보여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지 정말 실무를 이해 못 하는 건지 단 몇 주만에 모든 게 문제없이 해결되길 원하는 상사의 입맛에 맞춘 보고서는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의 보고서 작성 방식, pt 실력 등 나의 업무 스킬 부족으로 미팅을 질질 끌고 오게 된 게 아닐까 고민했지만 미팅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표면적인 보고서 양식과 방법보다는 상사와의 문제, 갈등에 집중해서 이 상황을 해석하게 됐다.
최근에 업무적으로 마음에 안 들었던 게 있어서 내가 하는 어떤 말도 듣지 않고 본인의 결론만 바라보고 될 때까지 집요하게 이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
2주 넘게 다양한 보고서를 마음속 짐으로 두고 싸우면서 다양한 프로젝트 중 하나를 다른 동료에게 떼어주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3번 실패했던 보고서 미팅을 그 동료가 한 번에 끝내는 걸 보고 보고서란 ‘너’에게 맞춘 양식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사실상 내용도 달라진 게 없었고 업무 계획, 방식은 오히려 텅텅 빈 채로 앞으로 잘해보겠다는 말뿐인 보고였음에도 상사는 “좋습니다, 해보세요.”라고 미팅을 마쳤다.
미팅이 끝나고 어떻게 정리할 걸 생각하고 보고서 흐름을 짜 온 거냐 했을 때 답변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냥, 신경 못 써다, 잘못했습니다, 부족했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그런 얘기 듣고 싶어 하는 거 같던데? 어차피 앞으로 계획은 당장 하기 어렵고 만들어간다고 하고 목표만 명확하게 다시 짰다는 걸 강조한 거지”
진지하게 보고서 목차 하나하나 생각했던 나와는 반대로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실컷 들려주자라는 생각으로 죄송합니다 미팅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업무적인 이야기보다 상사의 기분을 달래줄만한 쿠션 미팅이 필요해 보였고, 당신의 이야기를 잘 따르겠다는 태도를 보여주고자 했단다. 철저한 자료조사, 멋있는 결론, 명확한 타임라인, 데이터 분석 보다도 진짜 그가 원하는 단 한 마디를 위한 보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