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억울하진 않았어
추석 연휴 전날 홀로 밤 10시까지 컴퓨터 앞을 끝까지 지켜내고 나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계획했던 대로라면 야근할 일은 없었겠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업무 요청이나 부름에 응하다가 정작 내 할 일을 미룬 결과였다.
그럼에도 완전히 일을 끝냈던 건 아니라 후련한 마음보다는 내일 할 일을 조금이나마 덜었다는 안도감으로 하루를 마무리했음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위안을 삼았다.
아무도 야근하지 않는, 급한 일이 특별하게 있었던 날이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은 워라밸을 누리는 시간에 정말 이 일이 지금 나 홀로 당장 하고 가야 할 만큼 중요했던 업무였을까 의문은 들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쳐내가는 하루하루가, 업무 역량으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일이긴 하는 걸까.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 이동수
명언이다. 죽을 때까지 일할 곳도 아닌 이곳에서 일, 사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 말만 보면 회사, 직장 스트레스 별 거 아니겠다 싶었다.
Try everything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회사 잘되라고 지난주 실적 데이터 값을 채운 것도 아니고, 나의 일이었기 때문에 회사와 약속한 날짜에 마무리했을 뿐이다.
당장 나의 실적이 올라가거나 성과가 드러나는 눈에 띄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업무였다. 나를 위해 일했다 위로하면서도 그런 일을 왜 나 혼자 내 시간을 깎아가면서 희생한 건 아닌지 억울한 마음은 있었다. 월급과 맞바꾼 내 시간이 향후 내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회사를 위해서 일했다기보다 내 삶을 위해서 일했다는 것이다. 비록 회사는 내 것이 아니었지만 회사에서의 일은 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일을 위해서, 내 평판을 위해서, 내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 일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를 사랑하지 않고서도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할 수 있었다.
비록 내 회사는 아니었지만, 회사를 다니고 있는 나니까 말이다.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 이동수
그렇다. 나는 내 일을 위해서, 향후 이 일을 기반으로 더 단단해지고 강인해질 나를 위해서 일한 것이다. 회사에 나를 갈아 넣었다는 억울한 희생정신은 접어두고,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단순 업무일지라도 미래의 나는 도움을 받을 것이다.
사장님, 본부장님과 하이파이브 인사하는 신인류 직장인, 이동수 작가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책의 저자는 아무튼 출근 TV에서 화제가 된 인물이다. 임원들과 하이파이브로 인사하고 임원실에 들어가 자연스럽게 먹을 거 없나 둘러보다가 나오는 그의 쿨함을 보고 많은 직장인들이 감명을 받았다.
특별히 보고할 내용이 있을 때나 잠시 시간 되시냐고 묻는 대화가 전부였던 임원들과 이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고 당당하게 육아휴직을 쓰는 그의 행보를 보면 저 사람은 윗사람도 인정하는 엄청난 일잘러니까 가능한 일이겠구나 생각했다.
같이 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에게 피해줄 정도는 아니고 스스로도 당당하게 일을 하기에 TV에도 나왔겠지 정도였다.
회사 일을 내 일처럼 하면 내 일은 언제 하지?
회사에는 할 일이 쌓여 있는데, 퇴근하면 할 일이 없네?
회사에서는 연간 목표/월간 목표/ 주간 목표/ 일 실적을 관리하는데 정작 올해 나의 목표는 세우지도 않았네?
정말 내 삶이 회사보다 더 소중한 것 맞나?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 이동수
회사에서의 당당함은 일을 잘하고, 못하고 가 아니라 회사와 '나'를 어떻게 분리하고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는가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신인류, 별난 직장인이라 했지만 이동수 작가는 '나'를 잘 알고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가치관이 바른 강인한 사람이었다. 하고자 하는 바를 위해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찌질함을 감수하며 이뤄내는 에피소드를 읽어가며 희미한 실 웃음을 짓곤 했다.
나 스스로를 기관에 속한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 여러 기관들이 속해있다고 생각했다.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 이동수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직장에서 보이는 그의 태도가 유별나게 보였던 이유는 다른 사람 기준에 휩쓸리지 않고 그가 우선시하는 가치관에 따른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회사, 직장인의 명함에 갇혀 나를 한정 짓지 않고 나의 삶에서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관점을 바꿨을 때 지금 당장의 휴직, 이직, 승진은 과정일 뿐 삶의 결과물이 될 순 없다. 내가 원하는 삶, 잘 살고 싶은 모습에 어떤 가치와 자유를 둘 것인가.
회사 밖에서 만나면 지나가는 아저씨일 뿐인 사람에게 나의 평가가 달렸다는 직장 내 관계로 지나치게 벌벌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저자의 신인류적 행보에 동참해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