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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Oct 01. 2022

그때의 나, 지금의 나

10년 만에 증명사진 update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지만, 큰맘 먹고 증명사진을 다시 찍었다. 당장 이력서에 들어갈 사진은 아니었지만 대학교 때 처음 정장 입고 찍었던 사진 말고 지금 모습을 담고 싶었다. 워낙 옛날 사진이라 jpg 파일을 찾지 못하기도 했고 이제는 쪽머리 말고 편안한 스타일로 증명사진을 하나 갖고 싶었다.


다행히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졸업 예정자로 인턴에 합격했고, 그 인턴 경험이 정규직 전환으로 이어져 7년을 직장생활 쭉 했다. 이력서를 새롭게 쓸 일이 없다 보니 취업 증명사진을 적당히 몇 번 우려먹고 쓸 일이 많지 않았다. 이번에 두 번째 직장에 이직하면서도 10년 전 사진을 재탕했으니 게으른 건지 알뜰한 건지 모르겠다.


두 번째 직장을 잘 다니고 있지만, 가끔 퇴사 의지가 불타오를 때 이력서를 쓰면서 경력 기술서는 열심히 업데이트해두면서 사진은 그대로인 게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파란 배경의 풋풋한 대학생 때의 모습도 좋지만 사진이 멈춰있으니 이력서도 멈춰있는 듯했고, 30대의 직장인 모습도 스냅샷으로 담아두고 싶었다.


편한 스타일과 마음가짐이었지만 증명사진이라고 하니 찍으러 가는 길,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지나쳤다. 10년 전 취업 증명사진을 위해 대학교 근처 포토샵을 정말 잘한다는 소문난 집을 찾아간 것. 돈이 부담스러워 헤어 메이크업은 받지 못해 이력서용 스타일을 흉내 내느라 어색하게 실핀으로 머리를 다듬고 간 것. 처음 취업 증명사진을 찍으면서 이제 나도 취업준비를 하는구나 실감 난 것.


직장 생활 9년 차, 처음과 달라진 것


내가 일하고 싶은 사람,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운이 좋게 처음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까지 좋은 감정으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현장 매장에선 공동의 업무가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지 조금만 같이 있어보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나도 신뢰할 수 있었고 그만큼 나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부지런해야 했다. 처음 일을 시작한 게 사무직은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의 즉각적인 소통이 익숙했고, 마음이 맞는 사람이 어떤 건지 점차 알아가게 되었다.


나와 같은 결을 한다는 것은 일에 대한 책임감, 소속감, 의무감 등 전반적으로 내가 이 일에 얼마나 에너지를 쏟는가 비슷한 사람을 말한다. 그런 면에서 너무 워라밸을 강조하거나, 일을 타인에게 지시만 하는 사람보다는 계획적으로 함께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일을 떠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같이 일을 나누고 자기 몫을 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엇이든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먼저 다가가는 감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썼다면, 지금은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게 되었다. 두루두루 원만한 관계를 가지되 너무 많은 마음을 쓰지 않는 것, 나를 지키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방식으로는 순서와 효율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근무 시간 내에 빠르게 이 일을 해내야 한다면 어떤 순서로 얼마만큼의 시간을 할애하는가를 사전에 계산한다. 불필요한 회의, 미팅을 소집하거나 참석하지 않고 나의 일에 몰두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상황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미팅으로 시간을 뺏겼을 때,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상대방의 요구에 맞춰 나의 일을 배려받지 못하고 그때그때 필요에 맞게 소집되는 느낌을 받았을 때 일하는 방식 차이로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뚜렷해진다.

스킬, 전문적인 자격증 측면에서 무엇을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일을 진행하면서 나오는 나의 성향들을 보면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알아가게 되었다.


대학 졸업하면서도 앞으로 어떤 일(직무)을 하고 싶다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사회에 던져진 이후로 꿈은 거창하니 뭐해먹고 살지라는 고민을 수없이 했다. 어쩌다가 나는 이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는 건지, 진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지금도 고민 중이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통해 일뿐만 아니라 사내 활동, 조직 내 인간관계, 업무 지시를 받으면서 성과 내는 항목들을 살펴봤을 때 잘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 사전에 업무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점검하고 끝까지 마무리 짓는 것, 내부적으로 동기 부여하고 친밀하게 소통하는 것 등 장점이 부각되는 일을 하게 될수록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거창하게 지난 직장생활 동안 엄청난 커리어를 자랑하며 걸어오진 않았더라도 꾸준히 나의 직장에 최선을 다했고 큰 이직의 경험 없이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항상 함께 고민을 나누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배려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어느 위치에 있든 무언가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지난 8년의 사회생활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싶다. 30대가 되면 직장에서도 엄청나게 성공한 커리우먼을 꿈꿨던 22살, 23살의 나에게 지금 내 모습이 부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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