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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Apr 16. 2023

나만 할 수 있는 일의 의미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아침 출근길 우연히 스친 이 문장을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일에 지쳐 한숨을 내쉴 때마다 되새겼다.


숨 가쁘게 매일 우선순위로 떨어지는 촉박한 ETA 업무들을 쳐내가면서도 나는 그 어떤 뿌듯함,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빠듯하게 급한 일을 주면서도 공감 어린 격려, 칭찬은커녕 정해진 기한 내에 책임지고 무조건 해오라는 말이 숨 막히는 날들이었다.


일은 끝내야겠다는 생각에 짜증 한 번 내보지 못할 정도로 많은 팀원들이 노력한 결과물임에도 실수가 발견되거나 조금만 일이 지연되면 위에서는 다그치기에 급급했다. 내부 중간 관리자로서 전달, 공유의 역할을 하면서 잘 전달했다고 했던 이야기들도 나의 계획과 다르게 이해되고 움직여지는 상황을 보면서 의지가 꺾일 때도 많았다.


나는 업무 스킬 측면에서 남들 대비 엑셀, PPT, 데이터 쿼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일의 목표, 목적에 대해 정의하고 보고서 쓰기 팀원들과 소통하는 말하기(전달), 문서관리 정리력은 일머리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나의 업무역할은 자연스럽게 Process, 다수를 위한 가이드 정의, 업무 순서와 방향성을 검토하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 최종 리더에게 보고되는 최종 보고서, 엑셀 스킬이 요구되는 데이터 정리를 주로 하지 않다 보니 중요한 업무 흐름을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모든 업무를 다 할 순 없고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역량을 살려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핵심적인 업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마주할 때 자존감이 떨어지곤 했다.


내가 가진 역량과는 다른 업무적 스킬을 요구하는 상황이 많고, 그것을 내가 지금 채우기에는 성향과 맞지 않은 분야이기도 했다. 그럴수록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잘하고 있는 걸 더 어필해야겠다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내가 하는 업무 역할, 성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고, 아무나 대체될 수 있는 보잘것없는 일로 여겨졌다.


그렇게 보잘것없는 일을 반복한다고 생각하니 날마다 회사생활이 괴로운 건 나였다.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나를 질책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는데 부족한 것, 실수한 것, 못한 것들만 나열하다 보니 스스로의 가치를 내가 떨어트리고 있었다.


조직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개인별로 잘하는 것이 다르고 그 다름이 모였을 때 다각도에서 성과를 채워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모든 사람이 말하기만 하고 듣고, 쓰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 미팅일지라도 휘발되고 만다.


모든 일이 그렇듯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 회사에서 필요한 일이 진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팀원들을 격려하면서 긍정적인 업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궁금한 건 거침없이 질문하는 성격에 누구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미팅을 주도하는 사람. 지친 오후에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존재 자체가 재미있는 사람.


내가 가진 캐릭터로서 각각의 조미료가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만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해내가면서 내가 나를 격려하고 인정한다면 회사 일이 조금은 즐거워지지 않을까. 그 일이 지금 당장 나를 갉아먹는 듯한 소모적인 활동이었다고 해도 역할의 쓸모를 판단하진 말자. 그것이 나의 전부가 아닐뿐더러 부분적인 업무 중에 하나였을 뿐, 나의 가치를 판단할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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