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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Oct 17. 2022

고생 끝에 낙이 오긴 할까.

재택근무가 일상이라 출근시간에 거의 딱 맞춰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퇴근 시간까지 집을 나가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잠시 산책이라도 하면 좋겠지만 밥 먹고 나면 잠시 핸드폰보다 보면 업무 복귀 시간이 된다.


그러다 보니 퇴근 후 1시간에서 2시간을 꼭 가볍게라도 움직임을 가지려고 헬스, 필라테스, 산책 등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운동한다. 유산소 운동 비중을 높이다 보니 요즘은 일명 천국의 계단을 20분~30분 하면서 단기간에 땀을 쏙 뺀다. 일반 러닝머신보다 유산소 효과가 좋고 뛰는 게 아니라서 개인적으로 무릎 부담이 적게 느껴진다.

나는 유산소 운동에 약하다. 단순 걷기, 사이클은 생각 없이 반복하면 좋겠지만 항상 시간을 보게 되고 지루함에 진득하게 하는 법이 없다. 일적인 측면에서는 꾸준히 나의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강한 책임감을 보이면서 유난히 자기 속도대로 조절하면 오랫동안 체지방을 불태우는 운동에는 나약함을 보인다.


나의 몸을 단련하는 운동임에도 나 스스로에게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속도를 조절하거나 애초에 마음먹었던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내려올 때가 많다. 일하는 것처럼 열심히 유산소 운동에도 임하면 좋겠지만, 유난히 나의 의지를 그때그때 좌절하게 만든다.


오늘 천국의 계단을 20분 오르면서도 속도 6 > 3 왔다 갔다 하면서 겨우겨우 시간을 채웠다. 땀은 적당히 났고 숨이 엄청 턱끝까지 차오른 건 아니었다.


미세하게 목 아래에서 숨이 찰랑 말랑, 찰 듯 말 듯 하면서 묘하게 힘들었다. 엄청 힘이 든 건 아닌 거 같으면서도 이 속도로 계속 계단을 오르기엔 힘들어 속도를 줄이거나 그만 멈추고 싶다는 충동이 계속 들었다. 차라리 미친 듯이 땀을 흘리며 턱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뱉을 극한의 정도라면 과감하게 멈추는 게 나았다.


적당히 힘들면서 극한은 아닌, 그 힘듦에서 나는 20분을 채우고 내려왔다. 항상 30분~40분 넉넉하게 마음먹고 오르지만 30분을 채웠던 적은 손에 꼽는다.


고통의 경계가 있다. 서서히 몸이 힘들다고 인지할 때, 힘들지만 이 움직임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아직 남아있음을 느낄 때, 힘들인 시간이 지속된 만큼 좀 쉬고 싶은 꾀가 날 때, 힘들게 버틴 게 아까워서 조금이라도 더 하면 어떨까 갈등하는 단계.


갈등이고 뭐고 이만하면 그래도 나름 잘 버텼다 생각해서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 힘든 상황을 조금 더 유지하면서 더 큰 뿌듯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희망에 조금 더 가보고 싶은 단계, 마지막으로 내가 마음먹었던 수준을 달성했을 때 자신 있게 끝내는 마지막.


첫 직장생활의 퇴사가 그랬다. 수많은 모진 경험들을 잘 버텨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힘든 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래도 조금 더 열심히 해보자 힘냈다가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싶어 그만두었다. 나는 버티고 버텨왔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더 이상의 뿌듯함, 보람은 없으니 이만하면 됐다였다.


그때 선택의 후회는 없지만 두 번째 직장을 다닐 때는 현실적인 생각도 많이 해보고 감정에 휘둘리진 말자 다짐했다. 잦은 조직변경으로 인한 동료들의 이동, 퇴사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들의 몫을 내가 소화해야 했다. 함께 일할 수 있는 동료들이 사라지니 같이 일할 맛 나는 사람도 없어지고 일은 더 많아졌다.


여전히 아직도 조직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줄줄이다. 나는 남아야 할까. 남는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뻔히 보이고 힘들게 버틴다고 한들 어떤 목표를 두고 나는 이걸 버텨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힘듦을 조금 더 감내하면서 혹시 모를 성취감을 위해 지금을 희생해야 할까.


이만하면 됐다. 편한 길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조금이나마 즐길 수 있는 일을 다시 찾아 나서기 위해 멈춰야 할지, 힘들 때는 오히려 선택보다 지금 있는 그대로 집중하며 지나가기를 기다릴지 모르겠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에 기대보고 싶다. 그 고생의 끝이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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