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정도 퇴사 면담을 했다. 조직장 면담 때마다 직무 변경, 내년 성과급, 달래기 등 퇴사를 다시 생각해달라는 부탁을 거듭했다. 이렇게 퇴사를 말려주는 걸 보면 내가 2년 동안 일을 허투루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1월 퇴사를 마음먹고 앞으로 할 일들을 계획했던 내게 그 제안들은 달갑지만은 않았다. 확고하게 "그래도 퇴사하겠습니다." 말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 나도 나에게 확신이 없는 퇴사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이직한 지 2년이 되었다. 짧은 시간도 아니지만 긴 시간도 아니다. 작년 상반기부터 한 달에 한 명꼴로 조직 구성원들이 차츰 퇴사하기 시작했고 채워지지 않은 공백을 메꾸면서 네 몫 내 몫 가리지 않고 일했다. 직무도 변경하면서 하고 싶은 업을 찾아가는 동료들을 볼 때마다 꿈과 목표 없이 남겨진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고, 다른 대안이 없으니 당장 눈앞에 떨어진 일을 해내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이직 혹은 퇴사에 대한 열망은 서서히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왜 이 일에 만족하지 못할까,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까, 계속 이곳에서 일하면 나는 성장할 수 있을까 등 수많은 질문을 해봤자 내 안의 결론은 이곳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떠나보자였다. 나는 작년 10월부터 새롭게 떠날 곳에 대한 직업 탐구를 시작했다. 평소 운동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나의 몸도 개선해보고 한 번쯤 날씬하게 외적인 모습도 가꾸면서 일하는 직업은 어떨지 상상해 봤다. (2년 전 퇴사 후에 알아봤던 직업이기도 했다) 그렇게 안정적인 퇴사 준비를 위해 나는 3개월 과정의 주말반 필라테스 자격증반을 등록했다.
초반에는 주말 수업이기 때문에 일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해부학, 필기 위주의 공부였기 때문에 적당히 시간을 할애하면 중간시험들은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실제 동작 티칭 연습을 병행해야 했고 또 다른 업을 준비하는 자세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생각은 안일하게 느껴졌다. 이왕 마음먹은 거 몰입해서 성과를 내야겠다 싶어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구체적인 퇴사 일정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사실 퇴사 일정은 계획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퇴사가 답일까 라는 질문 진행형인 상태였다. 직장을 다니면서 필라테스 강사로 경험을 쌓는 게 경제적으로 안정감은 있겠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을까 불안함이 컸다. 병행하더라도 직장도 내가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있는 곳도 아닌 힘든 업무 환경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들어가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시간이냐 돈이냐 선택의 문제였다. 성격상 '직장 대충 다니면서 해보면 되지~'도 안될뿐더러 당장 이곳에서 일하는 게 괴로운 마음도 컸다.
이미 이성적으로 어떤 선택이 나에게 더 나을 것인가 판단하는 시점을 넘어선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게 퇴사를 지르게 되었다. 업무 강도뿐만 아니라 내가 일을 하는 이유, 목표, 성장 가능성, 커리어의 방향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어떠한 동기부여와 성취감, 즐거움이 없는 상황이다. 꼬박꼬박 월급이 유일한 장점이다.
필라테스 강사로서 나의 전문성과 비전이 명확하지 않았고 경험을 쌓는 과정과 시기를 고려했을 때 선뜻 올인하기가 무서웠다. 분명히 내가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고 살면서 유일하게 해보고 싶다고 느꼈던 직업이다. 9년간의 직장생활을 버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과 전혀 관계없는 세계로 선뜻 뛰어드는 용기가 부족했다.
결국 이 퇴사 고민의 끝은 3주간 연차를 내고 자격증 수업을 마무리하고 복귀하는 것이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을 때 나의 마음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쉬면서도 경제적 불안감은 없다는 게 큰 위안이 되긴 한다. 짧은 시간에 내가 계획했던 자격증 공부와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3주를 보내고 있다. 게을러지기도 하고 바쁜 일정을 속에 지쳐 쉬는 날도 있다.
잠시 일에서 거리를 두고 내가 추구하는 커리어의 방향, 삶의 목표에 대해 다시 처음부터 정의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 직업을 바꾼 들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본질을 정의하지 못한다면 퇴사는 일시적인 도피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30여 년을 살면서 지금까지 특별하게 '해보고 싶은 일,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답을 내본 적이 없었다. 책임감, 성실함으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니 인정받아 꾸준하게 회사생활을 했고 월급 받으면서 사고 싶은 거 사는 게 전부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동료들과 수다 떨면서 1년, 2년 버텨왔는데 이제는 그렇게 시간을 흘러 보내긴 싫었다. 내가 하고 싶고 살아가고 싶은 방향에 대해 지금이라도 단단하게 나를 다시 세우고 싶다. 잘 쉬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돌아가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