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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Sep 02. 2020

쓸데없는 것의 쓸모 있음

당근마켓 판매자가 되다.


아직 퇴직금이 넉넉하게 남아있지 않지만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라는 궁핍함이 오기 전이다. 다행히도.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마땅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나는 직장 없이 돈 버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시도 중이다.


수익은 소소하지만 보람, 기쁨, 알 수 없는 아련함 등 갖가지 감정을 느끼며 나름 재미있게 돈 버는 경험 중이다.




일주일 사이에 당근 마켓으로 2건의 판매를 완료했다.


수익  13,000. 


그중 한 건은 방금 거래했고 현금 만원을 쥐고 집에 돌아와 이 글을 쓴다.


당근 마켓, 알게 되다.


우연히 아는 언니가 당근 마켓을 통해 8만 원짜리 향수를 3만 원에 올렸는데 안 팔린다며 하소연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근 마켓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 중고 직거래를 이어주는 플랫폼으로 앱 사용자도 많고 중고나라 보다 믿고 거래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아무리 한두 번 썼다고 해도 향수 고가 상품 누가 중고시장에서 사가겠냐고 코웃음을 쳤다.


그날 저녁, 아빠가 안 쓰는 스포츠용품을 버려야겠다며 베란다 창고에서 큰 짐을 들고 나왔다.


순간 이거구나! 오후 이야기가 생각나 당근 마켓 앱을 다운로드 했다. 물건은 멀쩡한데 버릴 거면 당근 마켓에 올려보자며 안방에서 열심히 상품 사진을 찍었다.


또 팔건 없나 싶어 집을 둘러보니 옛 남친이 사준 대형 라이언 인형도 보였다. 항상 저 인형 내다 버린다고 엄마가 벼르던 거라 침대 위에서 대표 상품 사진을 찍었다. 옛 남친이 10만 원짜리 사준 거였는데, 지하철 타고 그 큰 박스를 들고 끙끙대며 집으로 데리고 온 기억이 스친다.


“드디어 5년 만에 너를 파는구나.”




스포츠용품 만원, 라이언 인형 삼천 원에 당근 마켓을 등록하고 3일이 지나 라이언 인형 구매자가 나타났다.


 판매 3,000


첫 판매에 설렜고 라이언을 담을 봉투가 없어 어깨에 지고 약속 장소에 갔다.

라이언과 마지막길

구매자는 강아지를 위해 이 대형 인형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아지에게 분리불안 장애가 없게 하려면 큰 인형을 집에 두는 게 좋다고 해서 거래를 원했던 것이다. 세상 구매 이유가 이렇게 귀엽다니.


“라이언, 너 복 받았구나.”


내 침대 발끝에 굴러다니며 거슬렸던 옛 추억과 여름마다 크기도 크고 더워 보인다고 구박받던 놈인데, 새로운 집에서는 예쁨 받을 것 같았다.


구매자는 약속 장소로 현금 삼천 원을 손에 들고 허겁지겁 뛰어왔다. 앳된 학생 같아 보였다.


담을 봉투가 없어 그냥 들고 왔다는 나의 말에 거듭 괜찮다며 서로 감사하다고 한동안 계속 끝나지 않는 어색한 눈 마주침을 이어갔다. 민망함이 커질 때쯤 적당히 헤어질 타이밍을 찾아 각자 갈길을 갔다.


더워서 오는 길에 얼음잔 600원, 파워에이드 1+1,  2,000원을  사 마셨다. 남는 게 없는 장사였다.


쓸모없다고 팔아놓고 집에 들어와서 라이언이 누워있던 침대가 비어 보이는 거 같아 외로워 보였다. 갖기는 싫지만 주기도 싫은 못된 심보였을까.


예쁜 강아지와 심심하지 않게 놀 라이언을 생각하니 묵은 추억도, 아쉬움도 사라진다.




쓸데없는 것의 쓸모 있음


생각해보니 너무 싸게 인형을 판 거 아닌가 후회도 했다. 이렇게 쉽게 팔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가격을 올렸어야 했나 싶었다.


쓸데 없다고 그냥 버리겠다고 해놓고 막상 필요한 사람이 있다니 가치를 올리려는 나쁜 심리가 작용했다.


쓸데 없는 것과 쓸모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한다. 당근마켓에 팔 상품을 찾는 건 아니다.


나의 하루를 돌아봤을 때 쓸데없는 일은 무엇이었고, 쓸모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쓸데없는 일은


엄마와 잦은 말다툼을 한 일이었고

비오는 소리가 좋아 오후에 낮잠을 잤으며

동생이랑 농담 주고 받으며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불합격 예감이 드는 성과없는 자격증 시험을 보고 왔고,

허전한 마음에 햄버거, 패스트푸드를 폭식했다.


짜증나는 마음에 전화로 1시간 수다를 떨고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 쓸모있는 일은 오늘 하루  없는  같다.


그나마 아빠 스포츠 용품을 당근마켓 통해 만원에 판매한 일 뿐일까. 돈버는 경험을 한 것 외에 특별한 일이 없었다.


돈을 벌어야만 쓸모있는 일은 아닌데, 오늘 나는 어떤 하루를 보냈는가 돌이켜보면 모두 쓸데없는 일 투성이다.


쓸모있는 하루를 보내기 참 어렵다. 오늘 하루의 쓸모를 발견하고 싶지만 딱히 없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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