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창피하다.
대학교때 신촌 컴퓨터학원까지 가서 공부하다가 어렵다고 포기한 컴활 2급을 서른이 되어 다시 도전했다.
일하다 보니 엑셀, PPT 쯤이야 자연스럽게 쓸 수밖에 없고 굳이 자격증없어도 왠만한 수식과 함수를 사용해서 문서작성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직하려고 이력서를 보니 빈 자격증란이 초라하게 느껴져, 남들이 기본적으로 다 한다는 건데 해야되지 않나 싶어 8월 초에 공부를 시작했다.
정량적으로 나의 실력을 입증할 만한 것이 이력서에 있어야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필기 접수도 겨우 한자리 얻은 건데, 오늘 오전 10시 불합격을 확인했다.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걸까 나름 시간을 쪼개서 고민했던 한달이라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아.... 진짜 창피하다.... 발로 푼 것인가...
풀면서도 불합격을 느끼긴 했다. 모의고사 내용이랑 많이 다르고 처음보는 문제가 많아서....문제은행 모의고사만 돌려가며 풀었더니 그런건가...
불합격, 무언가 도전한 것에 실패했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름 하고 싶은 시간 줄여가며 신경을 쓰긴 썼는데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차라리 불합격하고 쓸모없게 될거였음 책 더 읽거나, 하고 싶은 다른걸 할걸 그랬다며 속으로 계속 후회를 되새김질했다.
오전 11시, 엊그제 본 면접에서도 불합격 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오늘 아침부터... 이건 재앙이다.
내가 실패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닌가 멘탈을 다잡기 위해 생각의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렇게 실패를 두려워 하는 사람이었던가.
내가 생각하는 실패의 기준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성과, 보상, 아무런 결과가 없을때 지나온 과정과 노력이 모두 쓸데없는 시간이 된 것 마냥 억울해하고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합격이라는 명확한 결과 혹은 금전적 보상이 있어야 노력과 들여온 시간은 정당한 과정이라 말할 수 있고 불합격, 탈락이라는 결과는 노력과 공든 시간이 의미 없는 짓이었다고 습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실패와 거절당함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쉽게 흔들리고 실패했다 말한다.
직장이 없다는 것은 환경을 둘러싼 휴식을 가져다 주었지만 또 다른 도전과 변화를 받아들이고 시도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자신을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지만,
다른 사람은 우리를 우리가 이미 한 것으로 판단한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무언가를 도전하고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두려운 말이다.
내가 앞으로 할 수 있음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두려움없이 뛰어들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한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질테니 말이다.
그마저도 내가 한 것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는데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실감은 실패라는 사실보다 더 잔인하게 다가온다.
타인의 시선에 머물지 말고 ‘나’ 있는 그대로를 살라고 이야기 하지만 타인의 평가와 비교없이 나의 가치도 세울 수 없다.
그 잔인함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의연함을 배운다. 하나하나가 실패일지 몰라도 고민없이 배울 것 없이 얻어지는 것도 바라지 않으니 이 실패에 대해 익숙해보려 한다. 다만 지난 시간을 아까워하고 후회하지 말고 오늘을 오늘대로 멋지게 살아내는 탄력적인 습관을 길러야겠다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