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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Sep 06. 2020

시원한 바람엔 맥주를

선택과 실패에 대하여

코로나로 인해 문 닫은 곳이 많았다. 오늘은 독립출판 서점을 몇 군데 정해놓고 방문할 예정이었다. 우연히 지나가다 들린 곳과 계획했던 곳을 빼고는 모두 가보지 못했다.


그와 나는 앉을 곳도 없고 서있을 곳도 없는 하루를 보냈지만, 저녁 일찍 헤어지기는 싫어 남산을 갔다.


남산 케이블카 주차장을 향해 언덕을 오르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차하게 되는 어느 원조 돈까스집에서 저녁을 먹고 본격적인 야간 남산행을 내딛었다.


케이블카를 타려고 했지만 배도 든든하니 걷고 싶었다. 땀흘리며 마스크 때문에 호흡이 가파른 서로를 느낀 후 괜한 생각이었다는 후회는 잠시후에.


땀흘리며 힘겹게만 남산을 오르고 싶지 않아 중턱에서 숨고르는 시간을 가지며, 서울의 야경을 내려다보였다. 평소 저 점들 중에 나는 한 점이었을텐데 오늘은 그 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모기 두방 시원하게 물렸던 남산 등산 중턱

그는 산 중턱에 서서 새로 산 갤럭시 노트 20을 들어보이며, 야간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었다. 


케이블카 말고 걸어올라자고 제안한 내가 미안할 정도로 땀을 흘리면서도 굳이 가방을 들어주겠다며 힘든 내색하지 않고 모기물리며 찍은 사진이다.


나는 그에게 남산에 다 오르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달랬지만 땡기지 않는다며 거절당했다. 중턱을 넘어 남산이 보일 때쯤 나는 자신있게 "거봐, 금방 올라온다고 했잖아." 으쓱하며 안심시켰다.



어두운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나 토요일 밤의 남산 타워는 맑고 선명했다. 항상 지나가며 여기가 서울역, 명동 그쯤이군 머릿속 네비게이션 위치를 잡는 정도였던 남산타워가 낭만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은 조금 더 계단을 올라야한다. 남산 타워는 아직은 작다.



남산을 올라 맥주로 땀을 보상했고 선선하게 바람 부는 남산 벤치에서 일주일간 우리가 느낀 선택, 실패,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가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선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선택을 한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과 후회를 넘나들며,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한 한탄과 아쉬움을 느꼈다. '좀 더 나은 선택은 뭐였을까..' 침묵 속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이유에 대해 근원을 찾아보려고 했다.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과 청량하게 빛나는 남산타워 밑에서 침묵을 오가며 조용히 맥주를 마실 뿐이었다. 


나는 이번주 찰지게 불합격의 맛을 봤고, 오랜 매장 업무 경력이 오히려 이직에 독이 되었다는 피드백을 받으며 지난 나의 시간을 부정하는 중이었다.


7년간 최선을 다했던 나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중간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곱씹으며 '만약에' 상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으니 '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했고, 나만의 경험과 경력을 나의 방식으로 풀어낼 방법을 찾는 중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나의 가치를 누가봐도 알아볼 수 있게 만들겠다는 미래를 대한 선택을 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 C(choice)다.' 라는 사르트르의 명언처럼 지금 나의 모습은 무수히 많은 선택으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으로 비롯된 지금을 만족하지 못하다 탓할 것인지 나를 변화시킬지 다시 선택하시오.


나도 그도, 지금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지만 앞으로 나아갈 선택을 못할 상황도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선택의 결과로 인한 고통으로 자존감마저 잃는 선택은 또 다른 실패를 가져올 것이다.


벗어나도 좋고 도망쳐도 좋고 즐겨도 좋다. 어떤 방법이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를 지켜내며 최선을 다하자. 나는 나에게 당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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