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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Sep 07. 2020

나보다 나이 많은 알바생

영업은 사람이다

첫 나혼자 살이

지방 1년 부임을 마치고 서울 올라갈 날짜가 정해졌다. 그동안 스쳐갔던 지역 사람들, 내 손으로 직접 뽑은 열명의 알바생들과 작별 인사를 마치고 이사를 준비했다.


내 일생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충청도 어느 한 지방이었다. 가족, 친구 없이 오로지 함께 일하는 직원들만 바라보며 일했다. 그들과 성향이 맞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어느 때보다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함께 내려간 직원들만큼 함께 일했던 알바생들과의 추억도 가득하다. 사내 직책, 직급을 알리 없으니 최종 관리자인 나를 두고 '사장님' 이라고 호칭하는 친구도 있었다. 후에 사석에서 술자리를 가지며 얘기 들은 바로는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온 돈많은 젊은 사장인 줄 알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점장으로 근무할 당시 나는 28살이었고 알바생들과 별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점장이라는 이유로 사석 모임에 자주 참여하지는 않았다. 사실 알바생들의 나이는 이십대 초반이니 한창 대학다니는 아이들과 딱히 할얘기가 없었다. 내가 처음 뽑은 알바생은 스물 세명이었고 저마다의 이유로 입퇴사를 반복하기도 했고 매출이 떨어지면서 운영상 열명으로 줄였다.


알바생과의 인연

첫 오픈 때 시작한 스물 세명의 알바중에서 나보다 나이많은 알바생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오픈부터 쭉 장기 근무하는 성실왕 알바생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두살 나이가 많았고 4살짜리 딸도 있었다. 가끔 오후 퇴근시간에 맞춰 남편과 딸이 마중나오는 모습이 부러웠고 특히 딸이 너무 귀여웠다.


"점장님도, 결혼할 때가 되서 그래요! 아이를 예뻐하시는 거 보니까! ㅎㅎ" 


모든 직원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그녀는 장난스럽게라도 우리에게 한번도 말을 놓거나 쉽게 대한 적 없고 직원들이 요구하는 업무지시에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걸레 빠는 일, 바닥 청소, 화장실 청소 등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항상 예의바르고 성실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느라 시간이 오래걸렸고, 진짜 해야할 일에는 손이 느린 것 같아 직원들의 답답 유발 1호 알바생이었다. 직원들은 "점장님이 뽑으셨잖아요!" 볼멘소리를 하며 그녀에게 업무 부탁하는게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 했다. 말 그대로 착한데 일은 못하는 알바생이었다.


그런데 3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그녀의 친절함이 손님들에게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 못하는 알바생의 능력이었고 한번 손님과 얘기하기 시작하면 바구니에 물건을 턱턱 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직원들이 상품에 대해 알려주고 교육을 해주니 화장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이를 재우고 혼자 공부하고 출근한다고 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공들여 설명하는 터라 특히 아주머니 팬들의 마음을 쉽게 사로 잡았다. 역시 같은 엄마, 주부 마음이 통한거라며 겸손하게 에이스 알바생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3개월만에 자신이 이 곳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감잡은 후에는 날개 달린 듯 적응했다. 




점장님, 이제 서울로 올라가신다고 들었어요.

1년 전에 점장님이 알바로 절 뽑아주지 않으셨다면 우리 세 가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아직도 아찔합니다. 당시 갑자기 아이가 생기고 사고로 일을 그만두게 된 남편을 두고 저는 돈을 벌러 나가야했어요.

옷장사를 하던 저에게 다른 기술은 없었고 알바 이력서를 내봤지만 면접오라고 한 곳이 여기와 순대국집이었어요. 

그때 점장님이 절 뽑아주셔서 일을 여기서 시작할 수 있었고 안정적인 월급덕에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저희 세 가족이 자리잡을 수 있었어요.

정말 막막했던 그 때 절 뽑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내가 만약 그녀의 이력서에 경력없음, 나이, 기혼 여부 등으로 기재된 정보만으로 알바를 채용했다면 면접을 요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업태 특성상 젊고 활발한 느낌이 필요하기에 대부분 20대 초반 대학생 알바생을 선호했던 건 사실이었지만 의외로 무책임하고 매너 없는 경우가 많아 성숙하게 일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예쁘기도 했고, 아줌마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동안이긴 했지만)


나는 처음 그녀를 면접보면서 절실함이 보였고 무엇보다 열심히 하겠다는 밝은 인사 그 자체가 좋았다. 면접 약속시간을 잘 지켰고 인사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이력서만 보면 특별할 것도 전혀 없고 오히려 아이가 있고 나이가 있다는 이유로 메일함 속 이력서를 바로 삭제할 수 도 있었다.  


처음 삼개월 동안 적응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직원들에게 내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들킨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역할을 찾고 꾸준히 1년 근무를 이어가면서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에 많은 직원들이 감동했다.


어떻게 하다보니 내가 가정의 은인이 되어주어 감사했다는 인사와 함께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뜻밖의 슬픈 사실을 1년 뒤에야 알았다. 나는 일찍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그저 부러웠을 뿐인데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만들어가는 영업

사람을 채용하는 일은 어렵다. 막상 면접 때는 좋은 인상을 주었지만 일해보니 180도 바뀌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력서로 날라리 같은 증명사진에 식겁해서 채용을 망설였지만 제일 일 잘하고, 가장 오랫동안 연락하고 지내는 알바생이 있기도 했다.


유통 영업을 하면서 관리자로 내가 배운 것은 사람 볼줄 아는 눈을 기른 것이다. 단순히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진정성을 읽고 다가가는 방법과 사람마다 가진 특별한 재능과 능력을 살려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당시 필요없는 일도 성실했던 답답증 유발 서른살 알바생의 장점을 발견해야 했고 고객과의 소통이 원할한 모습을 보고 화장품 제품에 대한 교육을 진행했다. 알바생이라서 잘 모르기 때문에 망설였던 업무 포인트를 캐치하고 이를 알려주니 자신감이 붙어 적극적으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여유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을 못한다.'고 단순하게 평가내리는 일은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른다.', '무슨일을 해야할지 모른다.', '어떤 업무들이 있는지 모른다.' 라는 거대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안하려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했다.


상대방의 일을 배우는 자세, 성향만큼 '사람'을 이해하고 잘 아는 것이 관리자로서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통해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 그만큼 뿌듯한 업무 성과도 없다. 나에게 영업은 고객을 만나는 일을 넘어서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만드는 일이었다. 단순히 물건을 주고 받는 세일즈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람과의 情,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영업의 본질이다.


그녀는 내가 매장을 떠난 이후에도 꾸준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열심히 카톡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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