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m 한강을 다녀오는 동안
할 것 없는 귀찮은 아침을 이겨내고 한강을 다녀오기로 한다. 충분히 잠을 잔 것 같지만 모닝콜은 항상 뒤척이게 만들고 매일 나는 아침형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다 보면 오전이 사라지고 점심 먹고 하루가 시작되는 날이 늘어난다. 쌓이고 쌓여 무의미한 시간들과 게을러지는 노력이 더해져서 무기력함과 공허함을 낳는다.
평소 운동에 대해 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불안함을 가져다준다. 무너진 체력, 하루 내 삶의 발란스를 맞추기 위해 가끔 아침에 걷는다. 내가 걷는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1시 사이다. 이 시간에는 주로 산책 나온 어르신들이 많다. 나는 종종 걸으면서 나와 또래인 사람들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냥 내 걸음에 집중하면 되는데 굳이 나와 비슷한 사람은 있지 않을까 싶어 젊은이들을 찾았다.
이 걸음 사이에서 내가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동지를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이 시간에 여기서 한가롭게 걷고 있는 사람은 나뿐일까 라는 생각에 일없는 젊은이의 서러움이 올라왔다. 내가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모호해진 상황에서 지금 이 시간 여기에서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이 스스로 맘에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감각적으로 자연을 즐기고 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비록 내 머릿속은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이렇게 낙엽을 바라보며 걷는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부끄럽지만 핸드폰을 꺼내 사진에 담았다.
한강까지 한번 가는데 5km , 오디오 클립과 유튜브를 번갈아 들으며 천천히 내 걸음에 집중했다. 항상 눈이 피로한 하루를 보내다가 귀에 집중하려니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스마트폰, 노트북으로 눈을 너무 괴롭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귀로 상상하며 ‘책을 읽어드립니다’를 주로 들으며 걸었다. 한강을 다녀오면서 한 권을 정독한 느낌이 들어서 시간을 알차게 쓴 것 같다.
6개월 동안 일하지 않고 살아보는 경험은 새로웠다. 학창 시절에도 방학이 길어야 2 달이었으니 유치원을 다닌 이래 제일 길게 쉬고 있다. 이 시간에 하염없이 한숨을 반복하면서 걸었던 것도 처음이다 보니 오만가지 감정이 드나드는 하루하루다.
아무도 내몰지 않았던 퇴사를 내발로 직접 하고도 방향을 잡지 못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면서 힘들었다. 이직을 준비하지 못해서라는 아쉬움보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인가’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다. 마지막 퇴사도 성장 가능성, 나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는 야심 찬 발걸음이었는데 막상 하고 싶은 게 없으니 도전할 것도 없어 허무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한강에 도착할 쯤에는 뭔가 새로운 깨달음 하나는 얻고 가지 않을까 기대한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거리에 답을 찾아줄 사람은 없다. 나 혼자 걸어갈 뿐 도움받을 사람도 없다. 막막함에 시작했던 걷기는 이때가 되면 뭐라도 되겠지 막연한 기대감을 싹트게 한다. 딱히 뭔가 결정되는 건 없지만 자신감, 어쨌든 나는 앞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이게 걷기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다행스러운 마음과 이렇게 한 발짝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아무도 없지만 외롭지 않았다. 모르는 길은 걸어보면 되고 힘들면 쉬어갈 수 있는 벤치가 주변에 많았다. 언제든 내가 원하며 앉아서 한강의 경치를 즐길 수 있었고, 여유가 된다면 편의점에서 소시지 하나는 사 먹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정해지지 않은 길을 두고 갈 수 있는 기회는 있는지 가도 되는 건지 고민하는 기로에 서있다. 누구도 보장할 수 없는 선택이며, 그 선택이 좋을지 나쁠지도 모르는 모험, 도전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그마저도 할 수 있을지 아닌지 기회를 얻어야 하는 입장이라 불확실한 상태다.
내가 했던 일이 아니고 해 보면 좋겠다 생각했던 일이라 단점도 파악하지 못한 채 무작정 들이대는 상황이라, 과정도 결과도 예상할 수 없다. 한아름 고민, 걱정을 안고 다녀온 한강은 여전히 다리가 아프고 고단했다. 한강에도 , 돌아오는 길에도 주변에 젊은이는 없었지만 어쩐지 외롭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