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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Jun 25. 2020

나는 왜 멀티 페르소나가 되지 못했나

서른이 되고 다시 찾기 시작한 나의 취미와 특기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김난도 교수는 밀레니얼의 가치관의 가장 큰 특징은 세상의 중심을 ‘나 자신’ 에게 두는 나중 모드라고 말했다. 회사 안에서의 ‘나’와 밖에서의 ‘나’를 철저하게 구분하며 멀티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밀레니얼들은 모든 생각, 행동이 ‘나’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일할 때와 자신의 여가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름을 보여준다. 업무 연관성과 관계없이 OFF 모드에서는 자신의 취향을 100프로 발산한다. 평소 일할 때 ON&OFF가 명확하지 않았던 나는 직장 생활하면서 여가시간에 정기적으로 즐기는 특별한 취향이 없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라.
쉬엄쉬엄해!


  퇴사 고민 전문가 회사 동기 언니가 일 그만두고 뭐할 거냐 물어보길래 그동안 미루고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더니 나에게 한 말이다.


  백수가 되어 과로사는 아니더라도 이왕 쉬는 거 확실하게 이것저것 많이 해야지 않겠냐며 나의 당찬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속으로는 정해진 기약 없이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몰랐다. 학교 다니면서 매년 취미와 특기를 적었던 것 같은데 서른이 되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진짜 취미, 특기가 뭔지 떠올리려 하니 막막했다.


  20대 나의 취미와 특기는 일하는 사람이었다. 오로지 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였고 자기 계발, 자아실현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직업을 통해 얻으려 했다. 쉬는 날에도 매출전략, 교육자료, 상품 공부 등 자료, 연출물을 만들며 나의 업무 능력에 스스로 만족하며 즐거움을 찾았다. 그렇게 빠르게 업무스킬이 다져지고 조직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나의 모습이 좋았다.


  7년이라는 시간을 한 직장에서 몰입하면서 업무에 익숙해졌지만 일만으로 얻을 수 없는 깊은 공허함에 빠져 번아웃이 찾아왔다. 더불어 회사가 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시대에 와있다는 것을 코로나를 통해 깨달았다. 회사가 요구하는 일뿐만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업,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나’를 돌보는 일이 필요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한번 더 깨달았다.


  회사 명함, 직책과 회사에서 하는 일을 지우니 나를 소개할 수 없었다. 직업이 없으니 나는 앞으로 하고 싶은 목표도 분명하지 않은 무미건조한 사람이 돼버렸다. 7년간의 직장생활을 했다는 얄팍한 경력 자부심마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회사 생활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학교 때 보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니 생각만 했던 다양한 것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개인 PT, 필라테스, 캘리그래피, 글쓰기 수업, 중국어 배우기, 실내 클라이밍 해보기, 볼링 동호회, 캠핑, 여행 다니기 등 평범한 여가생활을 즐겼다.


 운동을 했던 이유는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한 체력 유지용이었고 한 달 수업을 듣고 나서 지속하지 않고 경험에 그치고 말았다. 일하면서 한 가지 취미생활, 나의 전문 특기를 발전시키고 꾸준히 해보려는 의욕이 앞서지 않았다. 쉬는 날에는 누워있기 바빴다. 갑자기 직원이 아프거나 아르바이트생이 잠수라도 탄 날에는 뛰쳐나가 일하기도 했다.


  그저 일 끝나고 혼자 조용히 유튜브를 보며 무한도전을 보며 쉬는 게 마음 편했다. 점차 동료들의 연락이 번거롭게 느껴지고 쉴 때 오는 연락과 모임이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퇴사 생활계획표 짜기.


  나는 ‘나’를 돌보는 일로 취미와 특기 찾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


  일하면서 이직하는 게 이직의 정석이라지만 지금 이 상태로는 어떤 일도 만족하며 할 수 없고 사람 간의 스트레스만 받다가 홧김에 끝내버릴게 분명했다. 우선 나의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지금 내가 왜 이런 정체기를 겪게 되었는지 일하면서 어떤 부분이 힘들었는지 정리하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글로 써 내려가면서 지금까지 삶, 앞으로의 인생을 기록하는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어 졌다.


  글 쓰는 인문학 수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돈 버는 블로그 포스팅 글쓰기도 백수생활 조금이나마 도움될까 수강을 바로 시작했다. 글 쓸 생각을 하니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카톡 이모티콘을 직접 그리고 글과 관련된 다양한 일러스트를 그려보고 싶었다. 퇴직금으로 아이패드 살 계획에 아이패드 뽕 뽑기 유튜브 채널 시청을 시작했다. 그림을 못 그리면 어쩌나 싶어 사진을 잘 찍고 싶었다. 카메라 살 투자는 하고 싶지 않아 휴대폰으로 사진 잘 찍기 수업을 찾아보았다. 적당한 온라인 취미 클래스 강의가 있긴 한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된다. 30대 멋진 몸매로 살아보고 싶은 개인 욕심에 헬스장과 개인 PT를 찾아봤다. 쉬는 동안에도 레깅스 예쁘게 입고 열심히 땀 흘릴 모습을 기대하며 다시 취업할 때쯤이면 후줄근 유니폼이 아닌 멋진 오피스룩을 소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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