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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Jan 04. 2021

격렬하게 아프고 아물기를

동생의 번아웃


내 동생은 3교대 간호사다. 아빠가 제일 바랐던 의료 전문직에 종사하는 우리 집 자랑거리, 보물이다. 간호사는 낮이면 새벽 5시, 오후는 2시, 나이트면 밤 10시부터 밤샘 근무를 하며 환자들을 돌보는 직업이다. 흔히 3교대 스케줄 근무라고 한다.


이제 간호사로 어엿한 대학병원에서 자리 잡고 일한 지 2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일은 고되고 배울 건 끝이 없다고 한다.


평소 나이트 근무로 밤늦게 집을 나서 출근할 때면 가족들이 번갈아가면서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준다. 늦게까지 고생하니까 힘내라는 무언의 응원이자 안쓰러움을 감추며 독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나이트 출근길은 혼자 걷고 싶으니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동생은 집을 나섰다.


내심 추운 밤 나가지 않아도 되는 걸까 꾀를 부리면서, “혼자 걸으면서 생각 좀 할 게 있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동생은 최근 들어 일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고, 성장 가능성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앞으로 이 조직에서 무엇을 배우며 더 성장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스케줄 근무에 대해서도 유독 지쳤다는 말을 자주 했다.


동생은 2년 만에 번아웃이 온 듯 보였고, 매사 흥미를 잃고 삶의 즐거움이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스스로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나는 꼰대였다.


나의 번아웃, 무기력함, 상실함에 대해서는 당연한 듯이 동생에게 털어놓았으면서 지친 동생에게는 “아직 2년밖에 직장생활 안 했는데 너무 심각한 거 아니야?”라고 웃으며 넘겼었다.


동생의 책장에서 책을 하나 꺼내왔다. 일하는 것에 대한, 삶에 대한 고민이 들때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우종영 작가님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는 직장생활 조금 해봤다고 으쓱대는 꼰대였고 그녀가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의 업을 바라보며 고민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존재에 대한 관심, 물음은 동생에게 곧 환자를 돌보는 일이었다.


간호사로서, 그녀는 '나'보다는  '환자'를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했고, 아픈 사람을 돌보느라 본인이 아픈 것은 모르고 하루를 바쁘게 살았을 것이다.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환자의 아픔을 보살피지는 못했는지, 잘못되는건 아닌지 생명을 다루며 시간과 싸움을 벌였을 작은 어깨를 제대로 위로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로도 나아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심각성을 깨닫고는 조금은 가볍게 이 시간을 넘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같이 쇼핑하고, 유튜브로 머리 비우는 시간도 가져보고 서점에 함께 가서 책을 구입해 읽어보기도 했다. 쉬는 날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다녀오거나 집에서 VOD 영화 플렉스를 즐기기도 했다.


즐겁게 자신의 삶에 빠져들기에도 모자랄, 에너지 넘치는 청춘 27살 내 동생.


나는 힘든 순간도 외면하지 않고 상처를 드러내어 집중하고 알아가려는 우리 집 막둥이의 현명함과 용기를 끊임없이 응원할 것이다.


답을 찾기보다 답을 찾고 싶은 지금의 과정을 조금이라도 즐기기를 바란다. 인생에서 정해진 길은 없고 정답은 없으니 말이다.


격렬히 아파하고 고민하고 나아가기를 응원한다.



살까 말까 고민될 때는 사지 마라


먹을까 말까 고민될 때는 먹지 마라


갈까 말까 고민될 때는 가라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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