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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씀씀 Jan 10. 2021

그럼에도 운수 좋은 날

첫 교통사고

내가 4살 때, 아빠가 차를 몰다가 사고 난 이후 우리 집은 차 없이 뚜벅이 생활을 했다. 그때 아빠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엄마가 병간호로 고생했던 것 같은데, 나는 정확한 기억이 없다. 


엄마는 멀미 때문에 차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그때 사고 때문인지 내가 자라온 30년 동안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먼 곳을 지하철로 2시간, 3시간 걸리는 거리를 가더라도 집에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낸 사람이 없었다. 그냥 그게 당연했고, 오래 걸리지만 안전했고 편했다.


나와 내 동생이 어른이 되어 운전면허를 딴 지금도 우리 집은 차가 없다. 내 운전면허가 장롱면허일 수밖에 없는 이유랄까.


데이트를 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차를 일주일에 한 번씩 타게 되었다. 처음에는 멀미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워낙 배려하며 운전해준 덕분에 남자 친구의 차에서는 멀미를 느끼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지하철, 버스 대중교통이 잘되어 있으니 불편한 걸 몰랐지만 여행을 가거나 근교 카페 혹은 산책 코스 드라이브를 갈 때 차로 이동하는 게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동차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점점 부모님이 나이 들어가고 지하철로 다니기에는 피로도가 높은 먼 거리를 다닐 경우 이제는 차를 살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종종 든다.


더 멀리 가더라도 좋은 곳을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 중고차 시세를 알아보기도 했다. 멀미가 심한 엄마에게 편안한 승차감을 주기 위해서는 운전연습이 다시 필요할 듯싶다.


첫 접촉사고, 평소와 비슷하게 자동차로 점심을 먹으러 가던 중 뒤에서 차가 박는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처음 겪어본 일이라 놀랐다.


얼굴이 빨개지면 화남을 감추지 못하고 당황하며 놀라던 남자 친구의 표정을 직관하면서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가 튼튼해서 다행인 건지, 경차가 박은 경우라서 놀란 감정 외에 딱히 크게 느껴지는 통증과 문제는 없어 보였다. 길거리 한복판에서 사고 접수를 하고 차의 상태를 꼼꼼히 살피며 사진을 찍어두었다.


최근에 눈이 오고 세차를 제대로 하지 않아 차가 더러워진 상태라 물티슈로 차 뒷부분을 닦으면서 사고 부분을 확인하느라 손이 시린 날씨였다.


접수를 마치고 다시 운전대를 잡고 밥집을 이동하는 시간에 구름 위를 떠다니는 몽롱함이 느껴졌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있어서 그 정도지만 직접 다시 운전을 하는 남자 친구는 유독 더 다시 긴장하는 듯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며 지난 사고 내용을 다시 곱씹으며, 치료받을 일정이라 차 수리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오늘 운수 좋을 날인 거 같아
나는 그래서 기분이 참 좋다?


밥을 먹고 차 안에서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면서도 나는 기분이 좋다고 거듭 이야기했다.


이 상황이 뭐가 즐겁냐며 어이없어하던 남자 친구도 어느새 "하긴, 이 정도인 게 어디야"라며 나의 말에 동조했다.


사고가 크지 않아 접수 마무리 후 아무렇지 않게 밥 먹으러 다시 출발할 수 있었고, 뒤차 주인과 이야기도 잘 되어 큰 감정싸움이 없었다. 차 상태도 크게 문제는 없어서 카센터에 가면 될 일이었다.


다음날 우리 둘은 사이좋게 일요일에 운영하는 한의원을 찾아 찜질, 약침을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주말에 병원 가는 일만큼 시간 아까운 게 없을지 몰라도 정말 이만하면 다행이다라고 느꼈다.


이번 주 나의 마음을 돌아보면,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끊임없는 동경과 함께 상황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과 감정을 많이 안고 지냈다.


고생하다가 취업했으니 이제 일만 열심히 시작하면 되는데 재택근무라서 사람들을 못 봐서 외롭고, 안 보이는 야근이 힘들고, 적응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업무적으로 부족한 건 없는지 긴장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도 긴장하다 보니 내방은 휴식의 개념이 아니라며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잦은 안 좋은 꿈을 꾸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을 안고 있었다.


항상 나는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은 상태라 불안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지내느라 지쳤던 일주일이었다. 


처음 차 타면서 교통사고를 겪어보니, 그동안 좋은 운수 내가 스스로 다 깎아먹으며 불행함을 선택한 건 아닌지 문득 내 심리 상태를 돌아보게 되었다.


좋은 일, 나쁜 일 기준이 뭘까. 내가 만족하면 무슨 일도 좋은 일, 행복한 일이 될 테고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무슨 일도 나쁜 일, 불행한 일이 되는 거 아닐까. 


항상 나에게는 편안하고 기쁜 일이 없는 것 같았지만 내가 모르고 인정하지 않았을 뿐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 시간, 사람들이 모두 기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지난 인생이 보인다고 했다. 매사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의 눈빛과 얼굴 주름, 무엇이든 '다행이다, 행복하다' 느끼며 말하는 사람의 눈빛과 얼굴 주름은 다를 것이다.


오늘 하루 한번 더 웃으며, 내 주변에서 웃을 일이 없는지 살펴본다. 매일이 1일 1 웃음으로 나 자신을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지는 순간이 나에겐 운수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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