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로 여기까지 왔을까요?
달리기로 여기까지 왔을까요?
승진인사 발령이 났다. 나는 입사 30년 차, 쉰 살 초반에 1급으로 승진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12월에 200대 1로 들어간 첫 직장에서는 하루종일 종이 접기만 시키길래 두 달 만에 때려치우고(대학원 간다고 뻥쳤음) 바로 이 직장 말단 6급으로 입사했다.
6급부터 오늘 1급이 되기까지 크게 승진에 연연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인사발령문을 보니 지난 30여 년의 세월이 파노로마처럼 펼쳐지며 혼자 울컥한다.
남성 중심의 조직에 90년대 초, 세 손가락에 꼽힐 만큼 몇 안 되는 대학출신 여직원이 들어왔기 때문에 입사 초기에는 구경 오는 직원들이 많았다.
내가 미니스커트를 입던, 가수 민해경처럼 언밸런스 단발을 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매일 같이 잔소리를 하는 언니들이 왜 그렇게 많았을까?
승진 때가 되면 부서장이 불러 "넌 여자니까", "넌 맞벌이니까", "넌 애가 하나뿐이니까", "남자한테 양보해!"라는 말을 수십 번 들었다.
그럴 때마다 '승진철이구나.' 깨달을 정도로 사실 별로 승진에 연연하지는 않았다.
대신 “제가 양보 안 한다면 저 승진시켜 주실 건가요?”라고 되받은 적은 몇 번 있었다.
이미 정해 놓고 왜 양보하라는 건지...
일이 재밌어 열심히 했고, 좋은 선배들도 만나 능력을 인정받고 그 기쁨으로 살았는데 뭐니 뭐니 해도 실력 겸비는 기본인 것 같아서 무슨 일을 맡더라도 파고들어 공부했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시기와 질투도 많아지고 견제세력은 커져 힘든 날도 많았다. 나에 대한 호불호는 엄청났다.
어떤 기관장은 나의 호불호가 50:50이라는데 무엇이 너의 본모습이냐고 묻기도 했다.
그들은 업무능력으로 까고 싶었지만 그게 안 되니까 가장 만만한 ‘여성 프레임’을 씌웠다.
누구누구랑 모텔을 갔다는 둥...(이 이야기는 차차 풀겠다).
가장 존경하던 선배가 약 10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너보다 정년이 훨씬 더 많이 남은
후배들에게 잘해줘라.
그들이 너의 직장 말년 자리를
정해줄 거야.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존경했던 그이는 왜 말년에 날 이렇게 힘들게 하던가?(이 얘기도 차차 하겠다)
의도는 안 했지만 후배들과 으쌰으쌰 프로젝트를 하고 그들 덕분에 성과가 나고, 그들을 추켜 세워주는 게 내 기쁨이었다.
특히 열 살은 더 어린 여성후배들과 독서모임을 갖고 공문서, 보고서, 사업계획서, 국정감사 답변서 작성법 등 스터디 모임을 했는데, 그 후배 녀석들이 지금 회사에서 소위 잘 나가는 능력자들이 되어 너무 행복하고 어느 누구보다 이번 승진을 축하해 줘서 참 눈물 나게 고맙다.
30여 년이 어찌 평탄하기만 했겠으랴.
살랑살랑하지 못하고(여자답지 못...), 욱하며, 혼자만 정의실현하겠다고 나대다가 혼쭐도 여러 번 났다.
특히 참모로서 기관장한테 직언했다가 몇 년 지방에서 유배생활하고 다시 복귀해 1년 반 만에 승진되어
기쁨이 더 배가 되었다.
유배기간에도 무슨 일 저지를까 봐 매주 카톡, 메신저로 연락 주던 선후배들...
참고로 그들은 내가 핑 돌아서, 아니 슬퍼서 소양강에 몸을 던질까 봐 걱정했겠지만 참고로 나는 그럴만한 담력은 없었다.
또 내가 가수 심수봉이 그렇게 애달프게 불러대던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도, 열여덟 딸기 같은 순정을 가진 소양강 처녀도 아니지 않더냐.
돌이켜보면 승진할 당시 부서가 욕 많이 먹는 더러운 자리라 다들 근무하기 싫은 기피부서인데도 “나랑 어디 좀 가자.” 한마디에 앞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짐 싸서 우리 부서로 합류해 준 후배들 덕분이다.
물론 난 첫 여성 1급 고위직은 아니다.
훌륭한 선배도 있었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극혐 했던 지랄 맞은 선배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니 그게 다 반면교사(反面敎師),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더라.
대부분 공공기관의 1급은 정년을 2~3년 남기고 되는데, 나는 정년이 한참 남은 50대 초반이니 후배들을 위해서 기꺼이 길을 더 트도록 해야겠다. (더 갈구려고요?라는 원성도 들리는구나)
올해 가기 전에 자랑하고 싶어 주저리주저리 나의 일기장에 떠들어본다.
내가 식물 같은 것 받으면 다 죽인다는 걸 아는지 오란다나 떡을 맞춰 스티커까지 붙여 보내준 전국의 후배들 덕분에 2020년 연말을 든든하고 따뜻하게 보내겠다.
- 2020년 12월 30일 여민의 일기 -
(이 여인초는 이미 사망했다)
* 오늘 연재의 교훈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한 충언은 골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