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탈 사람이 없다고 애를 갖지 말라고요?
대학을 졸업한 해, 24살에 입사한 회사
외할머니 나이 마흔에 낳은 막내딸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가 학교에 오시면 그렇게 창피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할머니라고 놀려서...
그래서 친정엄마는 그 울분에 나를 일찍 결혼시키고 손주를 보려고 대학 때부터 맞선 시장에 내놓았다.
내가 노처녀도 아닌데 주말이면 유명한 호텔 로비에 앉아 이름이 쓰여있는 피켓을 확인하고 선을 보는... 아주 오래전 TV 드라마 재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광경이 연출됐다.
다행히 친구 이종사촌 오빠를 소개받아 만난 지 6개월 만인 스물다섯 살에 결혼했다.
회사에서는 입사 1년 차가 청첩장을 돌리니까 "애 뱄냐?"라고 대놓고 묻는 이들도 많았다.
남편과 첫눈에 반해서 결혼한 것도 아니고, 혼수로 아이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웃기게도 공무원이셨던 시아버지 정년퇴직 전에 막내아들을 결혼시켜야 된다는 이유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비교적 유복하게 자라서 돈 걱정 없이 살았는데 대학교 4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기울어져, 가고 싶었던 대학원을 못 간 게 아쉽기도 했고, 돈도 벌고 싶었지만 그냥 어른들 뜻대로 결혼을 했다.
물론 결혼한다고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대학생이었던 두 남동생 학비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조금이라도 보탤 걸 그랬나 보다.
남편과 연애다운 연애를 못해서 아기는 2~3년 후에 갖기로 했다. 스물일곱 살쯤 되어 이제 슬슬 애를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커피 타러 입사한 것은 아닌데...
지금은 없어졌지만 90년대는 기능직이라는 직렬의 고연차 언니들이 있었다. 대부분 이사들 비서를 하거나, 커피를 타고, 타이프를 치던...
10년 만에 들어온 대졸 출신 일반직이었던 나는 "쟤가 커피를 탈까? 설거지는 할까? 신문은 가져올까? 난에 물은 줄까?" 하는 예의주시 대상이었다.
내 앞에 들어왔다가 퇴사했던 여직원들이 이런 문제로 마찰을 많이 빚었다고 한다. 솔직히 나는 별로 개념치 않았다. 여자만 커피를 타는 게 이상한 것이지, 같은 여자인데 대졸이라고 혼자만 고고하게 앉아 있는 모양새도 좀 웃겼다.
지금 세상은, 소위 말하는 MZ세대는 상상하기도 힘들겠지만 여직원이 커피 타는 문제는 회사 안뿐만 아니라 사회적 단골 이슈였다.
사실 <여직원>이라는 용어 자체도 거시기하지 않는가? <남직원>이라는 말은 안 쓰면서...
말이 나온 김에 약 20여 년 전쯤 일이 기억난다.
여성들이 많은 홍보부에 소위 스카이 출신 신대리가 새로 발령받아 갔는데, 위에 서술한 것처럼 아주 고상했다. 그 당시 흔치 않았던 커피메이커를 본인 책상 위에 놓고 원두 향기를 폴폴 풍기고 혼자만 커피를 내려 마셨다. 물론 개인 소유의 커피메이커였다.
남직원들도 곱게 보지 않았겠지만 여직원들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스카이 출신이라 잘난척한다는 둥.
어느 날 신대리가 나를 찾아와 울먹이며 말했다.
"과장님! 외주업체에서 손님이 왔는데 김대리(남자)도 있고 권과장님(남자)도 자리에 있는데 왜 저한테만 커피를 타오라고 시키죠? 지들은 손이 없어요?"
"신대리님아, 커피 타오라고 시킨 게 억울한 거야? 본인이 싫어서 안 탔으면 그만이지 뭐가 속상해서 그래? 솔직히 신대리도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지?"
"아 몰라요. 다 싫어요!"
"신대리님아. 머리를 좀 써봐. 부장님이 커피 타오라고 할 때 양촌리 다방커피 드릴까요? 원두커피 드릴까요? 해봐. 그랬으면 아마 뒤에 가서 그럴걸? 역시 스카이 출신이 커피도 잘 타네라고..."
90년 대 초엔 커피 믹스도 흔치 않았는데 탕비실에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김땡땡 : 커2, 프2, 설2
양땡땡 : 커1, 설3
조땡땡 : 커2, 프2
처음에는 무슨 암호인가 했다.
부장님은 커피 두 스푼, 프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이었다.
세 개 부서가 한 사무실 안에서 근무하고 인원이 거의 스무 명은 넘었다. 아침마다 부장들이 참석하는 이사실 회의가 끝나면 과장들과 전달회의가 이어져 10시 30분쯤 마치고, 스무 잔이 훨씬 넘는 커피잔 설거지가 시작됐다. 물론 그들이 오기 전 포트에 커피물을 끓이고 세팅을 하는 것은 여직원들의 몫이다. 아! 담뱃재 날리지 말라고 크리스털 재떨이에 물에 적신 휴지를 곱게 접어 까는 것도 했다.
나보다 열 살은 많은 기능직 언니들과 명절 당일 아침처럼 매일매일 이런 일을 반복하고, 오전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정작 내 고유 업무는 오후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을 안타까워하던 민상선배는 과장과 부장한테 여민씨는 이런 일을 하려고 입사한 게 아니라고 항의를 해줬지만 나이 많은 언니들 등쌀에 이내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도 참 고마운 선배였다.
커피를 위해 피임 조절?
다시 아기 갖는 얘기로 돌아가자. 나도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스물일곱 살 무렵 홍언니는 내게 말했다.
"올해 내가 둘째 가질 거니까 너는 그거 감안해서 조절해!"
잉? 뭐를 조절하지? 홍언니의 둘째 임신을 위해 내가 피임을 계속하라는 것인가?
"언니랑 부서도 다르고 저는 처음으로 아이를 가지려는데, 언니 둘째 갖는 거랑 제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왜 상관이 없어? 너 육아휴직 들어가면 저 많은 커피는 누가 타고, 설거지는 누가 하니? 김언니는 나이도 많잖아!"
그 당시 육아휴직은 단 2개월뿐이었다.
그날밤 나는 남편과 더 불타는 밤을 보냈다.
* 오늘 연재의 교훈 *
미쿡인들 커피 문화를 들여온 스타벅스에 경의를 표합니다.
커피는 테이크아웃하시죠.
(그때 낳은 아이가 벌써 스물여덟 살, 그 당시 내 나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