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바쁘더라
그러고 보니,
제주에 살면서도 완전한 숲속은 안가봤다 싶었다
주차 자리가 없어서, 바람이 심해서,
입구까지 갔다가 번번히 돌아 왔던 일을 떠올렸다
붉은 오름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온 낯선 곳.
남편은 아이들과 전망을 본다고
와글와글 산으로 향했다
'사진이나 찍고 있을께 나무가 엄청나네..'
이상하게도 사람이 거의 없이
고요하고 고요한 숲속에 나혼자 덩그러니 있자니
해방감보다 생경함에 가슴이 간질간질 했다
붉은 흙으로 다져진 이 길을
나도 모르게 조용히 소리를 줄이며
성큼성큼 걷지 못하고 타박타박 소리낼 수 없이
그렇게 길을 따라 느릿하게 걸었다
비로소 생경한 간지러움이 사라질 때쯤
눈앞에 작디 작은 것들이 크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두빛 물감보다 더 아름다운 이끼들과
쭉쭉 뻗은 나무들의 든든한 어깨들과
온갖 풀을 여기 죄다모아 놓겠다라는
신의 의지가 느껴지는 듯한
셀수 없이 다양한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하아.. 숲이 나를 안아 주는 것 같네...
나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 때, 옹알옹알 숲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옮기라구!!
저건 저렇게 가지고 가자!!
여기로 뻗어 봐, 그래 그 쪽이 자리가 있어'
' 그런데 저 인간 봤어?
저 인간은 왜 저런 표정이지?'
'뻔하지 뭐, 자기만 힘든 줄 알고 세상 우울한가봐
이봐 이봐 인간 신경 쓰지 말고 이거 좀 받아봐!'
'한 두명이냐구, 자 같이 들어 보자 저쪽으로!'
놀랍게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지나가는 사람은 마침 하나 없이
멈춰진 시간에 나만 있는 것 같았다
깜짝 놀라 발 아래를 보니
온갖 개미 거기 땅속의 벌레들까지
식물들과 이끼들과 붉은 흙들과 더불에
모두 생생히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경이로운지
미쳐 몰랐던 것 처럼
문득 땅을 밟고 있는 내 발모양 아래의 세상이
알수 없는 깊이로 이어져 내려가는 길이 느껴졌다
무수히 많은 생명들위에 얇은 흙으로 덮인 문,
그저 이곳에 사는 것 뿐.
내가 해야 할 일을 수고롭게 해내는 것,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면 되겠구나
'고생이 많구나.. 고생한다'
여전히 내 말은 듣지 않고 분주한 숲을 뒤로 하고
가족에게 향했다
남편은 정상이 날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음을 이야기하며 내게 물었다
'숲은 어땠어?'
'숲은 바쁘더라'
나는 창밖을 보며 웃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