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메로나 May 23. 2024

그것은 그곳에 없었다(14)

귤의 의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와 어린 동생을 돌볼 수 없었던 아빠는 선을 보았다

사별하신 분이라며 같은 상처가 있으니 서로 이해하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새엄마에겐

나보다 한 살 어린 딸이 있었다


엄마는 처음엔 우리와 먼저 적응을 하느라 생활을 했고 일 년 뒤 여동생을 데리고 오셨다

여동생은 나와는 너무나 다른 성향이었다

나와는 성별이 같아 방도 같이 써야 했는데

나는 그때 중1, 동생은 6학년

너무 예민한 나이였다

우리는 친해져 보기도 싸우기도 하다

서로의 다름에 많이 힘들어했다

마치 방에 3.8선을 그어놓은 듯

책상침대 사이의 이동 동선에서

머나먼 거리감을 느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막내동생은 8살이 되었다

개구쟁이 남자아이는 새엄마에게 경계의 눈빛도

호의의 눈빛도 보내지 않은 채 자연스레 가족이 되었다 엄마는 그런 동생이 걱정도 되고 귀엽기도 했다 다행히 그랬다


난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동생같이 편하진 않은 사이였다

설레며 다가가면 서먹하고

엄마가 다가올 땐 부끄러웠다


언젠가, 엄마방에 있던 일기장에 이런 말이 적혀있었다

나와 처음 만난 날, 내가 엄마를 향해 경계하며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이라 신경이 쓰인다는 내용이었다

일기장을 몰래 보지 말았어야 했다

엄마가 밥은 잘 차려주었지만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새엄마와 아빠가 재혼하신 뒤 이모들은

적응을 돕기 위해 연락을 하기 힘들어졌다

이모들은 솔직하고 성실한 아빠를 좋아했다

일 년에 한 번 11월이 되면

과수원을 하시는 둘째 이모는 귤을

보내오셨다 품질 좋은 귤을 설 때쯤 보내주시기도

했고 빨리 나눠먹으라며 상품성이 떨어지는 귤은 보내주시기도 했다


귤이 별로이면 엄마는 이걸 누가 먹냐며 시렁거리셨고 귤이 맛있으면 웬일로 맛있냐고 평소엔 맛도 없더니 하시면서 은근한 귤의 왕래를 불편해하셨다 엄마는 귤을 싫어했다 아니 귤의 의도를 싫어했다 귤은 노란색 천덕꾸러기로 남았다


귤의 왕래는 매년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고 나보고 받았다고 전화드리라고 하셔서 감사전화를 하는것이 유일한 이모와의 교류였다


불편하고 귀찮은 귤

사먹어도 비싸지 않은 귤

매년 오는 귤


이제야 귤을 그만큼 따고 보내는 일이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임을 안다

맛이 있던 맛이 없던, 농부의 일년 수고로움이 담겨있는 일이다 무엇 하나 그냥 되는것없이 허리와 목과 어깨를 깎아대는 일이란걸 알게 되었다


귤의 의도도 이제야 안다

우리 아이들 잘 키워주셔서 고마워요

이모들이 멀리에서나마 응원할께

잊지는 말아주렴


새엄마에겐 반대였으리라

아이들 잘 키우는지 우리가 지켜보겠어요

노란귤들은 미운 시누이처럼 흘겨보는 시선같기도 했을것이다



내가 44살인 지금도 이모는 귤밭이 있으시지만 이제는 아들이 관리한다 어제는 맛있는 여름귤을 반 컨테이너만큼 주셨다


정말 맛있어요

아빠랑 동생한테 보내고 나눠 먹을께요

이모 너무 감사합니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한다


아이 셋을 낳고 보니

그 시절 원망스러웠던 새엄마도

번거로웠던 이모도

귀찮았던 귤도


정말 고맙다



작가의 이전글 그것은 그곳에 없었다(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