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연애에서는 더더욱
전술훈련 취재를 위해 강원도 철원 군부대에 다녀왔다. 취재를 이어가며 몇몇 용사(장병)에게 훈련 소감과 포부를 물었고 준비된 대답을 들었다. 업무적인 딱딱한 대화. 곧 쉬는 시간이 되었고, 조금 전 이야기 나누던 상병이 다가와 내게 물을 건네며 잡지 기자 직업에 대해 묻는다. 재미있을 것 같다며. 무슨 말을 해줄까 하다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라고만 대답해 주었다. 여러모로. 그러더니 여자에게 고백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묻는다. 뜬금없다. 궁금했던건 잡지가 아니라 여자였다. 고백을 어떻게 하느냐. 고백의 방법이 아닌 고백을 해도 되는지 망설이는 듯했다.
좋아하는 여자 동생이 있는데, 자신은 군에 있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고백하라고 부추겼다. 이제 군에서의 시간이 약 8개월쯤 남았다는 시간 계산적인 생각이 포함된 말은 아니었다. 고백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인데, 그 마음을 숨기고 감추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단지 군인이고 갇혀 있기에 때문에? 주변에서는 나중에 전역해서 마음을 꺼내라는 정도로 타협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이다.
타이밍은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마음을 드러내는 고백 앞에서는 계산하지 않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특히 군인에게는 말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도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게 빤하기도 하지만, ‘고백’이라는 애틋함에 ‘가능성’ 같은 현실적인 수치를 섞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 때로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게 역설적으로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 되기도 한다. 마음을 비울 때처럼 말이다. 더 나아가 조금 멀리 보고자 한다면 실패도 필요하고, 이왕이면 ‘잘’ 실패해야 한다.
연애에서의 고백은 곧 시험이다.
고백을 받아주거나 거절하거나
또 합격과 불합격만 있을 것 같지만
그 고백에도 점수가 있고 성적표가 있다
시험이 어렵고 힘들고 불편한 건 모두 같은 마음이다. 그래서 피하고 싶은 심정도 인지상정. 하지만 시험을 봐야 결과가 나오더라. 내 수준이 어떤지, 내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때로는 적나라한 결과에 맴찢 당하기도 하고 좌절의 언저리에서 고통을 맛보지만 시험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시험 보는 건 겁을 내면서 점수는 잘 받고 싶다거나, 나도 한 번 1등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부끄럽다.
물론 성적이 좋지 못할까봐 또 준비가 부족해서 시험 보기를 두려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험을 치러야 성적표가 나오고 나의 점수를 알게 된다. 준비가 잘 된 상태라면 좋은 점수가 나올 테고. 준비가 부족했다거나 운이 없다면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아 들겠지. 당연한 이야기. 오답노트라는 건 이럴 때 쓰라고 있다. 왜 틀렸는지 알아야 다음에는 틀리지 않을 테다. (그렇지만, 뭐, 알면서 틀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성적이 나쁜 것보다 더 좋지 않은 건 시험을 포기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이겨내야 한다.
좋아하는 여성의 마음을 얻으려면 고백부터 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이야기를 꺼내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오랜 시간 준비에 매달리거나 망설임에 갈등하지 않았으면 한다. 사과나무 위에 맛있게 열린 사과를 따먹어도 되는지 망설이는 동안 다른 누군가가 먼저 먹어 버리는 게 연애다. 서두르지 않아야겠지만 언제까지 지켜보고 망설이고 가슴 졸이는 건 답답할 노릇이다. 게다가 여성의 직감은 그리 둔하지 않다. 어쩌면 이미 눈치 채고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백을 받아주든 그렇지 않든.
시험을 봐야 한다. 성적이 나빠서 그녀에게 까인다면 어쩔 수 없다. 군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는 점도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우리의 얼굴이 생겼으면 얼마나 잘생겼고, 가졌으면 얼마나 가졌겠나. 다만 진심을 다해 시험 치르는 것이지. 실패한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거나 더욱 노력해서 준비하여 다시 시험 보면 된다. 꼭 그 사람이어야 한다면 다음번 기말고사를 목표로 준비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모의고사 치렀다고 생각 하자. 실패가 중요한 이유, 실패하더라도 잘 실패해야 하는 이유라고 본다.
다만 시험을 치를 땐, 그러니까 고백을 할 때에는 내 마음이 진심인지를 먼저 생각하면 좋겠다. 감정은 때로 우리 자신조차도 헷갈리게 만든다. 특히나 군대에 있으면 ‘밖에 있는’ 상대방의 이미지를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내는 경향이 생긴다. 그래서 예쁘게 포장된 그녀를 떠올리며 전화하고 편지하고 고백을 준비한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게 좋겠다.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시간낭비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사람 마음을 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소중하며 얼마나 간절한 일인지.
그리고 고백하자. 쫄지 말고. 두려움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후회라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