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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다 Jan 08. 2019

군대에서 책 읽기

그래도 아직은 독서가 좋을 때다

언제부터인가 군부대를 가면 종종 부대 내 도서관을 찾아가곤 한다. 이제는 군대 안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거나 놀라운 사실이 아닌 게 되었다. 소초처럼 작은 부대는 나름대로 작은 서재를 꾸리거나, 큰 부대는 아예 병영도서관이라는 명칭과 함께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외부 기업과 기관의 협조를 받거나 혹은 부대 자체적으로 도서관을 만들기도 한다. 서가에는 한물 지난 중고도서가 아닌 신간 도서들과 베스트셀러가 꽂혀 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주변 환경도 갖췄다. 어떤 부대는 카페를 도서관 안에 만들어 북카페처럼 운영하고 있고, 또 다른 부대는 열람실처럼 개인적인 독서와 학습을 보장하도록 해놓았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책을 읽는 장병들도 참 많다. 아무래도 군대에서 일과시간 이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운동과 TV 시청 혹은 빨래와 전화 같은 일들이 대부분이니까. 간혹 사지방이며 노래방, 마트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무엇인가 생산적으로 시간 보내길 희망하는 장병들에게 독서는 꽤 유익한 활동이다. 물론 올해부터는 일과 이후 평일 외출이 가능하고 또 휴대폰 사용이 허가되기에, 일과 후 독서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오히려 그 반대로 독서 인기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책은 단순히 재미를 넘어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얻고, 머릿속으로 상상을 펼치면서 사고를 확장한다. 내 생각이 아니라 부대에서 만난 장병들의 이야기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병영매거진 월간 HIM이 지난 10월 장병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식 습득과 공감확대, 정보전달을 독서의 이유로 꼽았다. (시간을 때우거나 마음의 평온을 위한다는 답변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선호하는 도서 장르 역시 자기 계발과 에세이, 소설 순으로 나타났다.


장병들의 독서에 대한 관심은 자발적으로 독서동아리를 만들거나 외부 공익기관의 도움을 받아 독서코칭, 독서동아리 등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게 한다. 스터디 그룹처럼 장병들 스스로 멤버를 구성해 책을 돌려 읽고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아예 동아리 형태로 발전시켜 정기적인 독서 토론을 이어가는 식이다.


외부 기관의 도움 받는 경우를 예로 들면 군부대 도서 후원 목적의 비영리 공공기관 ‘사랑의 책나누기 운동본부’에서 진행하는 병영 독서코칭 수업이 대표적. 독서 코칭 강사와 부대를 매칭해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도서와 문집 제작 등을 지원한다.  

장병들 스스로 일군 부대 내 도서관의 모습 (사진 HIM)
아무리 지휘관이 강조하고 지원해도
장병들 스스로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모든 장병들이 독서를 하는 건 아니다. 독서가 TV 시청이나 운동보다 더 좋은 시간 활용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을 하든 그건 장병 스스로의 선택이고 그 중요도 역시 각각 다르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분명 배울 점이 있고, 느끼는 점이 있다. PC 게임을 통해서도 또 전우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얻게 되는 가치가 분명 있다.


독서가 절대적이 아니라는 말이고, 군대에서 꼭 독서해야 한다고 강조할 생각도 없다. 다만 TV를 보거나 사지방을 가는 것보다 독서는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리모컨을 누르는 것보다 페이지를 넘기는 게 아무래도 더 힘들 테니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TV보다 나의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 책 읽기가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러 부대에서 자발적으로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요새 들어 특히 자주 들린다. 우리 부대에서는 병사들 스스로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며 자랑하는 정훈장교도 꽤 많다. 예전 같았다면 특별해 보였을 모습들이 이제는 익숙한 풍경으로 변화했다. 그들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건 아니다. 대단한 일이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낸 용사들과 간부들 모두의 노력이다. 다른 부대들도 장병들 스스로 활동적인 노력을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자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꼭 독서가 아니라도 좋다. 다양한 활동 범위에서, 자발적인 의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힘을 실어주었으면 한다.


병영 내에서 자율은 어불성설이고 통제는 필수불가결이었던 시대가 지났다. 오히려 자율이 그들의 책임 의식을 높일 것이고, 생산적인 병영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독서가 그 시작이자 가장 현명한 모듈이 아닐까. 독서는 건강한 병영문화의 순기능을 돕는 좋은 매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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