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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다 Feb 10. 2019

중간곰신에게 미안함

미안함, 고마움, 그리움, 아쉬움. 결국 모두 사랑이다.

믿음을 심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겪어 본 사람은 안다. 신뢰를 쌓고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시간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진심을 다하는 수밖에.


조금 달리 말하면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믿음이라는 건 아무래도 시간이 쌓여야 만들어지는 것이니, 결국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내가 상대방에게 거짓을 보이지 않고 의심을 이루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해 보인다.


군에 와서, 군 생활 중,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사실에 미안함으로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휴가 나가서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복귀하는 능력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들 중 일부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해 보인다. 입대 전부터 알고 지내며 어느 정도 마음의 교류가 있던 장병도 그렇지만, 이렇다 할 관계 형성 없이 휴가 나가서 운명처럼 마음이 맞은 장병이 특히 그렇다. 어쨌거나 어느 부류든지 불안함이 크다는 게 공통적인 이야기.


입대 전부터 사귀던 사이가 아니라 군에 와서 사귀게 된 여자 친구를 '중간곰신'이라고 부른다. 중간곰신에 대한 미안함과 불안함. 어쩔 수 없다. 받아들여야지. 사귀려고 마음먹었다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하지 않을까. 괴로워할 필요도 없고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다. 부대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중간곰신은 상대방이 군인이라는 걸 알고 있다. (거짓말하지 않은 이상..) 여친이 괜찮다는데 무엇인 문제일까. 걱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수록 속만 썩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뿐이다. 보고 싶을 때 또 필요할 때 옆에 있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여자 친구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리고 미안함을 갖기로는 여자 친구도 마찬가지다.


입대할 때부터 사귄 게 아니니까, 처음부터 기다려주지 못한 점에 대한 아쉬움 혹은 다른 여친들만큼 해주지 못한 미안함 같은 것. 서로, 내가 더 미안하다고 우기는 아름다운 상황이 연출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군에 있는 나를 기다려주는 게 말이다. 중간곰신이니까 기다리는 시간이 비교적 적어서 마음이 편한 것이 아니다. 또 오랜 시간 관계를 이어온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믿음의 깊이가 시간의 퇴적과 어느 정도 비례한다고 믿지만 그래도 그 깊이의 중요성은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에서 비롯된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이라고 해서 믿음이 꼭 깊다고 할 수 없고, 반대로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서 얕은 것도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건, 지금 그리고 앞으로다. 중간곰신이라고 해서 곰신이 아닌 것도 아니다.


기다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고,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오로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차라리 고맙다는 말이 나을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아닌 고맙다는 말이 관계의 발전에 도움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왕이면 고맙다는 말보다 사랑한다 말하길 바란다. 미안함, 고마움, 그리움, 아쉬움. 이 모든 감정들 모두 결국 사랑이다.


휴가 중 여친이 생겼다며 자랑하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 지은 어느 장병에게. 좋은 생각만 하라고 이야기해줬다. 미안함 대신 고마움으로 앞으로 더 잘하면 된다고. 반대로 생각하면 입대 시부터 기다려온 곰신보다 기다림의 시간이 짧을 테니, 이 또한 기쁜 일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여친을 아끼고 사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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