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떠나는 여행은 늘 분주하다.
하지만 그 분주함 끝에는 여유로움이 있었다. 하노이 국제공항에 비행기가 내리고, 비행 동안 꺼놓은 휴대폰 전원을 켰을 때 시계는 밤 11시가 되어 있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내 이름이 적혀 있는 피켓을 찾기 시작했다. 늦은 밤 도착할 예정이었고 호텔에 미리 픽업 서비스를 요청한 상태였다. 어렵지 않게 나의 첫 베트남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나를 태운 차는 이내 어둠을 가르며 하노이 시내로 내달렸다.
밤 12시가 훨씬 넘어 호텔에 도착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호텔의 로비는 불이 반쯤 꺼져 있었고, 프런트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체크인을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거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저쪽에서 잠에서 깬 듯한 직원이 내게 다가온다. 억지로 웃어 보이는 미소와 함께.
내 돈 내고 묶는 숙소이고 늦은 밤 도착할 거라는 이야기를 미리 전해놓았지만, 미안함과 고마움이 크게 들었던 하노이의 첫날밤이었다. 룸에 들어와 냉장고에서 캔맥주부터 하나를 꺼내어 드링킹 하고 가볍게 씻은 뒤 잠에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새벽 5시쯤이었다. 늦잠을 푹 자겠다고 마음먹고 누웠는데 4시간이 채 되지 않아 잠에서 깼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노이의 새벽 5시는 서울의 아침 7시. 내가 출근을 위해 항상 일어나던 시간이었다.
신체 리듬은 아직 시차를 반영하지 못한 모양이다
침대에서 조금 뒤척이다가 6시쯤 창밖을 내다봤다. 갑자기 어수선한 소음이 들렸기 때문이다. 호텔은 큰 도로에서 안쪽으로 들어와야 하는 작은 골목에 있었는데, 그 앞이 시장처럼 상인들로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작은 바구니 하나를 거리에 깔고 생선이며 채소를 파는 모습이었다. 신기하고 낯선 풍경을 보며 하노이의 아침은 시작됐다. 나중에 프런트에 물어보니 새벽에만 그런 상황이 펼쳐지고 8시 쯤 되면 전부 사라진다고 한다. 하노이. 토요일. 아침. 어제까지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 눈떠보니 새로운 곳이라는 느낌이 드는 시간이었다.
호안끼엠 호수는 하노이 여행의 중심이다. 하노이에도 신도심이 있고 곳곳에 번화가가 있지만 여전히 이곳은 여행자들로 붐비고 현지인들로 가득하다. 특히 주말에는 호안끼엠 호수를 따라 난 도로를 우리나라의 ‘차 없는 거리’처럼 통제하면서 무슨 축제의 거리처럼 변신한다. 산책하는 사람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삼삼오오 모여 제기차기 같은 게임을 즐기는 학생들, 나 같은 외국인들 그리고 노점들까지 함께 어우러지며 인산인해를 이룬다.
나도 사람들 틈에 끼어 호수를 한 바퀴 돌며 산책한다. 면적이 꽤 넓은 호수라 천천히 주변을 구경하며 처음의 장소로 돌아오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날도 살짝 덥고 해서 잠시 휴식을 위해 호안끼엠 호수 바로 앞 한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유명하다는 베트남 연유커피를 마시며 이번에는 사람 구경을 한다. 풍경이 다채롭다. 대체로 밝은 표정의 하노이 시민들의 모습에서 내 입꼬리도 살짝 올라간다.
이미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심심치 않게 하노이를 볼 수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인들의 하노이 방문이 많은 시기인지라 곳곳에서 한국말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방송에서 다녀간 음식점 쌀국수집 앞에는 한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한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살며시 가게 안을 보다가 한국인들로 가득한 내부 모습에 괜스레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들어간 곳이 그 바로 옆집이었다.
상대적으로 한산한, ‘한국인 맛집 가게의 옆집(?)’은 서양인 여행객과 현지인이 각각 한 테이블씩 자리를 하고 있었다. 돼지고기 쌀국수 하나를 시키고 옆 테이블 서양 여행자와 눈인사를 나눴다. 혼자 열심히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이 서양인이 내게 말을 건넨다. 한국에서 왔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하자, 옆 가게는 왜 한국인들이 많은지 묻는다. 내가 살짝 웃어 보이며 내 생각에는 한국의 유명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집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해주었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그 여행자는 그곳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곳 쌀국수 맛도 환상적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한국에서든 낯선 이국에서든,
주말은 늘 그렇듯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점심을 먹고 동쑤언시장을 구경하고 성요셉성당을 둘러보자 밤이 되었다. 저녁식사는 분보남보로 정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호안끼엠 호수 근처 야시장으로 향했다. 온갖 스트리트 푸드들과 다양한 브랜드의 짝퉁 제품들이 나를 반겼다. 숙소로 향하면서 이번에는 눈여겨봐 둔 바에 들어갔다. 꽤 고급스런 인테리어의 술집답게 칵테일과 맥주 가격도 상당히 높다. 사람들의 분위기도 남다르다. 거의 대두분 잘 차려입은 현지인들이었고 서양인들은 배낭여행객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를 위해 하노이에 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호텔 바로 맞은편에 있었기에 가볍게 맥주나 한잔 하고 들어가야지 하는 편한 생각으로 들렀는데 위축되는 느낌이다.
바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병맥주를 마시며 스마트폰으로 이날 찍은 사진을 보고 또 이것저것 검색을 하는데 한 여성이 내게 다가온다. 베트남 사람이라고 했는데 베트남 사람 답지 않게 피부도 하얗고 상당히 세련된 옷차림의 젊은 여성이었다. 변변치 않은 영어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 칵테일바는 하노이에서 잘 나가는 핫한 바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운지 좋았다. 현지인들 중에서도 좀 논다는 젊은이들만 온다는 말에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표정을 건넸다. 호구조사(?)를 시작으로 한국, 베트남, 축구, 박항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 연예인과 한국 드라마 이야기, 그녀의 개인 스토리를 나누자 병맥주는 세병이 비워져 있었다.
그렇게 불타는 토요일 밤을 보내고. 일요일.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다. 짧은 여행은 긴 아쉬움과 반비례한다.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가물치 튀김이었다. 이곳도 우리나라 TV에 소개된 곳이긴 한데, 하노이에 가면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곳이었다. 밤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저녁 8시에 하노이 시내를 떠났다. 버스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 길도 구경하는 재미다. 주로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만 있었기에 하노이의 다른 동네를 지나치는 버스 차창 밖은 놓치기 아까운 경치들이다. 하노이를 이륙한 비행기는 밤을 지나서 한국의 월요일 아침에 닿는다. 그리고 다시 시작이다. 주말에 어딘가를 다녀온 느낌은 비록 잠깐의 시간이겠지만 기억은 조금 더 오래 남을 것이다.
하노이는 내게 어떤 여행지였을까. ‘주말의 여유로운 도시’ 혹은 ‘불타는 토요일 밤의 도시’ 그것도 아니면 ‘산책하며 커피 한 잔 하기 좋은 도시’는 아닐까. 다음에 다시 하노이를 가게 된다면 그때에도 난 금요일을 선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