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기억의 공간을 확장한다
올해 병영문학상 수상작 발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병영문학상은 장병들의 창의력과 문예창작 능력 계발, 역량 발휘 및 사기 증진을 위해 국방부가 매년 주최하고 있다. 지난 2002년 처음 개최한 이래 올해 16회를 맞았다. 시, 수필, 단편소설 등 3개 부문으로 나뉘며 해마다 4천여 명 이상의 장병들이 응모하고 있다.
한 15년쯤 된 것 같다. 국방일보 지면을 통해 제1회 병영문학상 공모전 소식을 전해 들은 게 말이다. 대학을 휴학하고 입대해, 군생활에 적응하며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으로 미래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던 때였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차 명확하지 않던 시기였다. 군에 가면 누구나 하게 되는 미래에 대한 고민 속에,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계획뿐이었다. 그래서 병영문학상 작품 공모 소식은 운명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글쓰기라고는 배워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 작문 무식자였고 훈련소 입소 후 보급받은 '수양록'에 일기 쓰는 게 글쓰기의 전부였지만, 병영문학상에 제출하기 위한 수필을 쓰면서 머릿속엔 이미 수상 이후 대대장님의 칭찬과 포상휴가증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했던가. 하지만 때로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도 몸에 좋은 법. 덕분에 중도 포기 없이 한 편의 수필을 완성하여 기한 내 제출까지 했으니 말이다.
단지 응모를 떠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처음 시도하고 만들어 내어 결과를 보았다는 행동 자체에 큰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국문과 혹은 문예창작과 전공도 아니고 글쓰기에 관한 연습이나 습작이 있지도 않은 내가 입선조차 못한 건 당연할 결과였지만, 자신의 수준조차 모른 채 수상하지 못한데 낙담하고 (당시에는;;) 결과를 인정하지 못했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그 짝이었다.
그렇다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글쓰기는 계속됐다. 생활관에서, 휴게실에서 또는 빈 취사장 테이블에 앉아 노트에 샤프로 글자를 채워나갔다. 일기, 작문, 편지 등 사소한 글쓰기가 대부분이었지만, 미래에 대한 투자이자 노력이었고 군 생활의 고단함을 버티는 에너지이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나름의 '연습'을 펼치다 보니 수양록 페이지가 부족해 일기장을 새로 구했고, 한 페이지씩 쓰던 에세이 노트가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세 통의 편지를 썼으니 (부모님, 친구, 선후배, 심지어는 훈련 때 알게 된 인접부대 동기에게도 편지를 썼다) 2년 2개월의 시간 동안 쓴 편지도 200통은 족히 넘었다.
생각은 표현할 때 비로소 나눌 수 있었고
나눔의 방법을 글쓰기에서 찾으려 했다
2017 병영문학상 공모에서는 단편소설, 시, 수필 등 3개 부문에 걸쳐 150여 명 안팎의 장병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며, 최우수상 등 주요 수상자들에게는 한국문인협회 입회(등단) 자격이 부여된다. 매 회 약 4~5천여 명의 장병이 소중한 작품을 응모하고 있으니 글쓰기에 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놀랍기만 하다. 대회를 주최하는 국방부 역시 상금 규모를 늘리는 한편 더 많은 장병에게 상을 주어 사기진작을 이루도록 노력하고 있다.
게다가 15년 전과 달리 병영문학상의 권위는 물론 작품의 질적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대한민국 국군 장병이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는 점과 병영에서의 감상을 글로써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순수함은 여전히 그대로인 채 말이다.
하나의 문장이 쓰이고 그렇게 문단과 단락이 만들어지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완성된 한 편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어떻게 글을 쓸지 고민하는 '생각의 시간'이 감정의 깊이를 더욱 깊게 만들어 주니, 글쓰기란 참 매력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문장 하나하나에 온 힘을 들이는 '대작'이 아니어도 좋다. 힘을 빼고 가볍게 평범한 일상의 생각을 담는다면 글쓰기는 가장 쉽게 완성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글쓰기라는 게 막상 시작하려고 보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일기도 좋고 편지도 좋다. 지금 내가 가진 생각과 감상을 기록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병영문학상 같은 작품 공모에 응모해도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기억의 공간을 확장한다. 고단한 일상의 위로가 되고 설렘 가득한 기대를 더욱 북돋워 준다. 훈련과 근무 속에서 바쁜 나날이지만 틈틈이 완성해가는 글쓰기로 상상을 펼치고 다양한 감정을 가져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