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마후라는 혹독한 과정을 이겨낸 자의 산물이다
공군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입문-기본-고등의 3단계 비행교육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공군사관학교(공사)를 졸업하고 임관한 장교뿐만 아니라 민간대학에서 조종을 전공하고 임관한 소위들도 마찬가지다. 조종 ROTC와 조종분야 가산복무 지원금 지급대상자(조종장학생)도 예외는 없다. 차이가 있다면 비 공사 출신자들은 입문 과정이 생략된다. 공사 출신자들이 졸업/임관 이후 비행교육을 시작하는 반면, 비 공사 출신자들은 대부분 교육용 경항공기로 비행에 관한 기초를 익힌 후 임관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관문인 입문과정은 국산 훈련기 KT-100을 이용해 약 3개월 간 진행된다. 비행에 관한 기초적인 이론과 이해를 중심으로 비행지침 등에 대한 교육과 평가가 실시된다. 항공기 교육이 실제 펼쳐지는 첫 단계다.
이어지는 기본과정은 약 8개월간 계속된다. 주·야간 단독 비행이 이 시기에 본격 펼쳐진다. 실제 실습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에 교육은 매우 엄격하고 혹독하다. 중간 탈락하는 인원도 상당하다.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해 탈락하거나(도태), 신체적/정신적 이유 등으로 탈락하는(콜) 경우다. 그만큼 교육의 강도가 세다는 증거다.
이 과정에서 교육생들은 항공기 계통, 공중조작, 국지절차 등 비행 전 교육을 비롯해 비행계획, 항공법, 항법, 비행이론, 기상 이론·실습, 통신술보안, 항공계기 등의 교육을 받는다. 이수해야 할 과목의 수도 많고, 학습량과 숙지 사항도 많다. 물론 그 전문성의 깊이도 만만치 않다.
국산 항공기 KT-1을 이용한 실제 비행교육과 시뮬레이터 실습교육도 꾸준히 진행된다. 기본과정에서 이수해야 하는 비행 횟수는 총 66회. 정해진 비행을 모두 이수한 뒤 평가를 통과해야 수료할 수 있다. 스스로 느끼는 부담과 스트레스는 물론 교관의 강도 높은(혹독한) 지도에서 오는 압박감도 상당하다.
비행 전 항공기 상태를 확인하는 외기점검에서부터 이륙, 비행, 착륙의 모든 순간순간이 평가 그 자체다. 말 한마디와 미세한 동작 하나까지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한다.
비행 이후에는 교관과의 디브리핑이 기다리고 있다. 이를 통해 전체 비행 과정 중 나타난 실수를 인지하고 바로 잡는다. 비행 중 기록된 영상과 음성을 바탕으로 사소한 실수 하나까지 지적 받는다. 교육과정을 통틀어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창피함과 부끄러움, 자괴감과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교육생 대부분은 그런 감정을 느낄 새도 없다. 교관이 무섭고 또 내 자존감이 바닥을 기더라도, 결국 내가 못해서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조종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정에서 탈락하면 특기 재분류가 되고 다른 지상 보직으로 이동해야 한다. 조종사의 꿈은 사라진다. 그래서 견디고 버틴다.
기본과정을 수료하면 고등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약 9개월의 고등과정은 1전투비행단과 3훈련비행단에서 실시한다. 여기서 자신의 보직이 1차적으로 나뉜다. 전투기 조종사와 기동기 조종사. 기종도 훈련기에서 고등기(T-50, KT-1)로 달라진다.
고등과정에서는 더욱 실전적인 훈련이 이어진다. 먼저 약 7주 동안 지상학술교육이 실시된다. 이후에는 고속 제트항공기 기동요령과 3차원 공간에서의 전술편대 유지능력 등 공중조작 능력을 익히고 평가받는다. 비행교육을 시작한 지 1년여가 된 시점이고 계급도 소위에서 중위로 올라갔지만 상황이 나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 언제든 탈락의 순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세 단계를 모두 거치면 빨간 마후라를 목에 걸 수 있다. 약 2년에 가까운 시간이며, 비로소 조종사라고 불리어지는 시점이다. 이 정도면 항공기 조종에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과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입문·기본과정에서와 달리 고등과정 수료식에서는 (어지간히 특별한 스케줄이 있지 않으면) 공군참모총장이 참석해 조종사의 탄생을 축하한다. 기본과정 수료식은 보통 비행단장 주관으로 진행된다.
고등과정까지 마쳤다고 바로 조종간을 잡는 것은 아니다. 다시 전투기 입문과정(LIFT·Lead-In Fighter Training) 또는 전환 및 작전가능훈련(CRT·Combat Readiness Training)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도 약 21~28주간 진행된다. 끝없는 평가와 교육의 연속이다.
그리고 나서야 F-15K, KF-16, FA-50 등 세부 기종으로 나눠 본격적인 조종을 시작한다. 물론 실전 배치되더라도 완숙된 조종사가 되기 위해 꾸준한 훈련이 계속된다. 다양한 상황에서의 충분한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실전 배치되기까지 초급조종사 한 명에 투입되는 예산은 약 21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조종사는 아무나 될 수 없다. 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조종사의 임무는 가혹하지만, 조종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더 힘들다. 특전사 못지않은 강인함은 기본이고, 조종 기술과 공중 기동·전투 기술 등 방대한 분량에 대한 숙지와 숙달도 있어야 한다. 학습 능력이 매우 뛰어나야 하고 체력과 정신력도 강해야 한다. 엄청난 강도의 스트레스와 부담감도 이겨내야 한다. 아무나 빨간 마후라를 목에 거는 게 아니다.
조종사를 두고 대한민국 0.005% 인재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고, 위기에 빠진 조종사 한 명을 구출하기 위해 특수부대가 투입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종사는 그렇게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