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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다 Jan 27. 2018

전투의 시작과 끝을 책임진다

묵묵히 일하는 군인이 한둘이겠느냐마는 공병부대는 분명 그 중 하나다.

도하는 전투부대의 기동여건과 직결되는 핵심 작전으로 불린다. 도하작전의 성패에 따라 전투부대의 작전 범위가 달라지며 아군의 전투력 발휘가 결정되기 때문. 동이 틀 무렵인 이른 아침, 육군 제2공병여단의 문교·부교 구축훈련이 있는 강원도 화천군 북한강을 찾았다. 강상의 고요한 물안개는 마치 훈련을 앞둔 부대처럼 평온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가진 듯했다. 안개가 걷히고 저 멀리 강습도하를 위한 공격단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강습도하는 문교와 부교를 구축하기 전 수상정찰을 진행하며, 나아가 작전에 영향을 미치는 강 너머 적 화기를 제압하여 교두보를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강습도하 용사들이 도하지점을 정밀 파악하고 신속하게 교두보를 확보하자 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작전지역이 연막으로 휩싸였고 가려진 연기 사이로 수송차량이 교절을 강상에 펼쳐놓는다. 교절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부교가 될 것이다. 부교는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 형태의 도하 수단으로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하게 여러 개의 교절을 서로 연결하는지가 중요 포인트. 게다가 강상에서 실시되는 작전이기에 주변 지형은 물론 위험 요소를 파악하고 작전 간 긴장감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작전이 빈틈없어야 하는 이유다.

공병 용사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할 뿐이다


펼쳐진 교절을 향해 교량가설단정(BEB, Bridge Erection Boat)이 접근한다. 교량가설단정은 교절을 이동시키는 것은 물론 부교 구축 과정에서 강의 유속에 부교가 휘어지거나 움직이는 것을 방지하는 지지대 역할을 한다. 뚝딱 뚝딱, 순식간에 교절이 연결된다. 쉽게 쉽게 완성해 가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만한 능력을 갖추기까지 끊임없는 훈련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연습이 있었는지, 누구라도 척 보면 알 수 있는 법이다. 교절수송차량 운전병과 조작병, 교량가설단정 운용병 및 교절 연결 장병 모두의 동작 하나, 움직임 하나에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협력이 중요한 작전이라는 점을 아는지, 저마다 제 위치에서 묵묵히 역할을 수행한다. 작전이 시작된 지 한 시간 남짓. 폭 200여 미터의 북한강을 가로 지르는 부교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공병은 묵묵히 제 역할을 할 뿐이다


이렇게 넓은 강에, 어느 세월에 부교를 설치하는지 막막했지만 기우일뿐이었다. 완성된 부교는 시원스레 곧게 뻗었고, 흔들림 없이 튼튼해 보였다. 부교의 측면에는 교량가설단정이 유속의 흐름에 부교가 움직이지 않도록 지지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연막탄이 터지고 아군의 전차부대가 도하를 시작한다. 공중에서는 500MD 헬기가 육상 부대의 도하를 엄호하고, 지상에서는 언제 있을지 모를 적 공격에 대비하며 방공부대 및 전투부대 요원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강 다른 쪽에서는 문교를 통한 도하작전이 펼쳐졌다. 부교가 완전한 교량 형태라면 문교는 교절을 뗏목처럼 이용하는 도하 수단이다.


교절을 내려놓은 수송 트럭(좌), 문교를 통해 이동하는 전차(우)


동력이 없는 탓에 교량가설단정을 통해 이동하는데, 전차를 싣고도 빠르고 정확하게 목표 지점으로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교량가설단정은 작전뿐만 아니라 작전 지역에 수해 같은 자연재해 발생 시 부유물 및 장애물을 제거하는 등 대민지원과 환경예방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게 부대 관계자의 설명. 운용병들의 자신감 있는 표정에서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전투부대가 도하를 마쳤다고 작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작전의 끝은 우리가 맡는다


도하작전은 전투공병의 꽃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화려함만큼 보이지 않는 노력이 이들의 숙명. 아군의 전차와 장비들이 자랑스러운 위용을 드러내며 도하하는 장면은 저절로 보여지는 게 아니다. 공병 용사들이 제일 먼저 작전지역에 투입되어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할 뿐만 아니라, 도하가 끝나면 다시 부교를 분리하고 정비하며 언제 있을지 모를 작전에 대비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전투의 시작과 끝을 공병이 책임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완성된 부교로 도하 중인 모습(좌), 도하의 마무리도 공병이다(우)


전차부대가 도하를 마치자 작전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메라 장비를 챙기며 발길을 돌리는 그 순간에도 공병여단 장병들은 여전히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도하가 끝났지만 그들은 다시 시작한다. 구축된 부교를 다시 분리하고 새로운 작전에 대비하는 스탠바이가 되어야 비로소 작전이 마무리된다. 진짜 공병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훈련이었다. 대부분은 도하를 실시하는 웅장한 전차 행렬에 시선을 집중하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공병부대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임무완수를 위해 구슬땀 흘리는 공병여단 장병들이야말로 전투력 발휘의 숨은 주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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