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룸메이트 구해요

by 레이다

룸메이트 구해요




*

처음 가져보는 자유였다. 태어나 지금까지 늘 꿈꾸던 일이었다. 서울에 있는 유명 대학을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자취해야 하고, 결국 나만의 방에서 나 혼자 살 테니까 말이다.


지금 사는 이 공간은 내가 다니는 A여대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다. 사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의 원룸을 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월세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높았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집을 알아봤고, 그 반경이 점점 넓어지더니 학교 앞이라기에 다소 애매한 이곳 주택지역이 그나마 싸다는 사실과 마주했다.

엄마는 내게 기숙사에 들어가면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그건 싫었다. 기숙사는 3인실이나 4인실에서 모르는 누군가와 함께 또 다른 누군가의 통제와 감시 아래 살아야 한다. 그러려고 서울로 대학을 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어림도 없다는 태도로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내 생각을 전부터 알고 있던 엄마는 결국 내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나는 자취녀가 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의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 세 명, 나까지 여덟 식구가 함께 살았다. 이제껏 한 번도 내 방이라는 걸 가져본 적 없었다. 밭농사를 짓는 우리 집은 마당이 꽤 넓었는데, 차라리 마당 한 구석에 컨테이너라도 가져다 방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집은 늘 어수선했고 책상 하나 화장대 하나, 내 것은 없었다. 동생들이 싫을 때도 있었고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럴수록 이 집을 빨리 벗어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집을 나가는 방법은 대학 입시에서 ‘인서울’에 성공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


내가 합격한 대학은 상위권 학교다. 동네 어르신들도 내가 다니는 학교 이름을 알 정도이니 유명한 학교가 맞는 듯하다. 내가 합격 소식을 부모님께 알려드렸을 때 엄마는 나를 껴안으며 기뻐했다. 엄마는 내게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라"며 서울 가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다.


서울 진학을 기정사실 한 엄마와 달리 아빠는 내 등록금을 내는 날까지 망설였던 것 같다. 그냥 집에서 멀지 않은 대학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는 없는 것인지 묻기도 했다. 하지만 내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내가 이미 아빠에게 첫 학기 등록금만 내주면 나머지는 내가 벌어서 학비 내고 생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꼭 가야 하는 겨?"


내가 짐을 챙겨 서울로 떠나던 날 아빠는 낡은 트럭으로 버스터미널까지 날 태워다 주며 물었다. 아빠의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집안 형편을 빤히 아는데,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고 우기는 내 모습이 죄송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나직한 한마디가 슬프게 다가왔다. 이별이란 건 아무리 좋은 이유라도 슬픈 일이다.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된 내 방은 투룸이다. 처음부터 방 두 개짜리 집을 구할 생각은 아니었다. 원룸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원룸은 월세가 대부분이었다. 엄마는 월세보다 차라리 전세로 하면 좋겠다면서, 이왕이면 큰 곳에서 지내라고 했다.

"어휴 이렇게 쪼매난 데서 사람이 어뜨케 산대냐?"


엄마와 집을 알아보러 서울에 왔을 때 학교 앞 원룸을 본 엄마가 꺼낸 말이었다. 엄마는 내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생도 들먹였었다. 어차피 집 구하는 것, 방 두 개짜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 사장님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나온 투룸 전세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난 상관없다고 했다. 어차피 동생은 서울로 진학할 성적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본인은 서울에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 모르지만 서울에서 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였다. 엄마는 동생을 나에게 떠맡기려는 눈치였다. 내년에 서울로 올라온다고 하면 그때 가서 원룸으로 이사하면 될 것이었다.

3층 높이의 주택은 반지하 같은 1층에 두 집, 2층에 또 두 집이 있고 3층에 주인이 살고 있었다. 내가 살게 될 집은 2층이었는데 현관문을 들어서면 작은 방 두 개와 화장실 하나, 그리고 부엌과 거실을 겸한 공간 하나 있었다. 혼자 살기에 딱 좋아 보였다.


방 하나에는 침대 하나를 두면 딱 맞을 사이즈였다. 침대를 살만한 여유는 안 됐기에, 푹신한 요와 이불을 구해다가 꾸며 놓으면 아늑할 것 같았다. 다른 방은 옷방으로 쓰면 좋을 것 같았다. 옷방이라니. 이건 정말 꿈만 같다. 거실은 좁아서 무엇을 놓기는 어려워 보였지만, 작은 상을 놓으면 될 것 같았다.


엄마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딸아이 혼자 서울 살게 돼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수백 번은 했다. 그러면서 우리 딸이 요 앞 A여대에 다닌다는 이야기도 빼먹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능청스럽게 놀라면서 "공부 잘하는 따님 있어서 좋으시겠다"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자주 내려다보겠노라고 했다. 나는 주인아주머니가 진짜 자주 찾아올까 봐 그게 더 걱정스러웠다. 물론 한 학기의 절반이 지난 지금까지 주인아주머니가 현관문을 두드리거나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문제는 대학생으로서의 첫 중간고사가 끝나고 봄이 지나갈 무렵에 일어났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서 전날 먹다 남긴 삼각김밥을 꺼내,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밤 11시쯤이었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철컹’ 거렸다. 바람에 문이 흔들리는 그런 움직임이 아니라 누군가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려는 느낌이었다. 문을 두드리거나 노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있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경찰에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온 방 안 전등을 모두 켰다. 사람이 지나간 움직임이나 발자국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현관문 손잡이는 조용해졌다. 그날 밤은 잠을 잘 수 없었다. 형광등을 모두 켜둔 채 거실 벽에 기대어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다. 손에는 휴대폰을 꼭 쥔 채였다.


다음 날 아침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밖은 조용했다. 후다닥 주인집으로 올라가 주인아주머니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혹시 어젯밤에 오셨었어요?"

제발 아주머니이기를 바랐다. 차라리 아주머니였다면 오히려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아니 내려간 적 없는데, 무슨 일 있어?"

"누가 자꾸 현관문을 열려고 했던것 같아서요."


아주머니는 잘못 들었을 것이라며, 어제 늦게까지 잠들지 않았는데 밖에서 인기척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동네는 도둑 같은 것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럼 내가 들은 건 뭔데. 아주머니에게 더 이야기해봐야 의미 없어 보였다. 차라리 내가 잘못 들은 것으로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내 믿음은 하루도 가지 않아 산산이 무너졌다.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번에는 문을 계속해서 잡아당겼다. 분명히 사람이었다.

다시 또 그러면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나름의 대책을 준비했었다. 바로 112에 신고했고 10분이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경찰 아저씨는 침입 흔적이나 분실된 게 있느냐고 물었고 그런 건 없다고 답했다. 그러더니 일단 문 잘 잠그고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다시 신고하라고 했다. 그 사이 주인아주머니가 경찰차 사이렌 소리를 듣고 내려왔다. 아주머니는 ‘문 한번 덜커덕거린 것 가지고 호들갑이냐’고 하다가 내가 째려보자 경찰 아저씨를 쳐다보며 고생이 많다고 말을 돌렸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다시 신고하라니. 무슨 일이 생겨서 신고한 건데. 그러다가 진짜 집으로 들어오면 그땐 정말 어떻게 하려고. 순찰차가 사라졌다. 현관문을 잠그고 잘 잠겼는지 다시 확인했다. 창문도 잘 살폈다. 노트북으로 미드를 켜고 볼륨을 키웠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와 오늘 있었던 일들을 꼬치꼬치 이야기했다. 엄마는 내일 날이 밝으면 당장 올라오겠다고 했다. 역시 엄마밖에 없다.


엄마가 왔고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 간 사이 주인아주머니와도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서울에 올라오며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채소들과 밑반찬 일부가 사라졌다. 엄마는 주인아주머니가 더 자주 내려와 살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엄마가 서울에서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제 곧 여름이고 시골에서는 가장 바쁜 시기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호루라기 하나를 내게 건넸다. 내가 피식 웃었다. 엄마는 집에 일찍 일찍 들어오고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며 아르바이트도 그만두라고 했다. 일장 잔소리를 늘어놓고 사흘 만에 떠났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바로 집에 내려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

수연이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수연이는 내가 대학에 와서 알게 된 가장 친한 친구였다. 수연이도 혼자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수연이는 집이 서울이라 그러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동생이 있다는 수연이에게 동생과 방을 같이 쓰냐고 물었을 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왜 방을 동생이랑 같이 쓰느냐고 내게 되물었다.


"룸메이트를 구하면 어때? 투룸이라며?"


수연이가 방 하나를 월세 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방 하나면 충분하다면서 말이다. 월세를 조금이라도 받아서 그걸로 생활비에 보태면 또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그러면 빠듯한 생활에 도움도 되고 또 밤에 무섭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힘들게 독립을 이뤄 시작한 혼자만의 공간에 누군가 들어오는 건 달갑지 않았다.


수연이는 집만 같이 쓰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어차피 방에 들어가 있으면 마주칠 일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수연이도 집에 가면 방에 들어가기 때문에 부모님과 동생을 자주 못 본다고 했다. 화장실을 같이 써야하지만 서로 규칙만 잘 지키면 될 것이었다. 난 바로 룸메이트 구한다고 적은 종이를 학교 게시판에 붙였다. 이왕이면 우리 학교 다니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종이에는 간략하게 적었다.


<룸메 구함. 투룸 중 방 하나. 학교에서 도보 20분. 보증금 없음. 월 30만 원>

이 정도면 괜찮은 조건이다. 월세 30만 원이면, 학교 앞 원룸 시세와 비교해 매우 저렴하다. 보증금이 없으니 부담도 없다. 학교까지 거리를 20분이라고 했는데 빠른 걸음으로 가면 20분 안에 정문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연아, 근데 나랑 맞는 사람이 룸메가 되면 좋겠는데..."

"한 일주일 정도 같이 지내보면 어때? 계약서를 그때 쓰자고 하면서 말이야."

나야 좋은데, 그게 가능할까. 이삿짐 들여와서 정리 싹 해놨는데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가라고 하는 게 말이다.


"짐이 얼마나 많겠어? 방 하나 쓰는 건데 뭘."

"그래도..."


수연은 나보다 마음이 강한 편이다. 맞으면 맞고 아닌 건 아니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 거야?"


그럴 순 없다. 내가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왔고 또 자취녀가 됐는데 행복을 잃을 수는 없었다. 시골집의 밤은 서울보다 더 어두컴컴했지만, 한 번 무서워 본 적 없었다. 혼자 사는 서울은 다르구나...

너무 많은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였다. 나흘이 지나도록 연락 한 통 없었다. 전단지를 붙인 지 닷새째 돼서야 월세를 낮출 수 없느냐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끊었다. 저녁 알바를 하는 중에 모르는 번호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룸메이트 구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연락했다는 내용. 우리 학교 학생인지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에 계약서는 이사 오고 일주일 뒤에 쓰자고 했다.

그녀는 나와 동갑인 1학년이었다. 계약서는 언제 써도 상관없다고 했다. 경기도에서 가족들과 살며 학교까지 통학한다는 그녀는 최근 가족이 이사하게 됐는데, 이사 날짜가 살짝 맞지 않아 한 달 정도 살 곳을 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계약서는 쓰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녀는 오히려 내게 한 달만 지낼 건데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다음날 바로 집에 들어왔다. 짐도 별로 없었다. 깡 마르고 하얀 얼굴의 그녀는 말수가 적었다. 거의 없는 말투에서는 여성스러움이 강하게 느껴졌다. 시골서 자란 내가 닮고 싶은 그런 도시 아이였다. 첫인상이 참 좋다. 한 달 밖에 같이 지낼 수 없다는 게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와 함께 지낸 지 일주일 만에 그 환상은 사라졌다. 그녀의 본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어른들 말이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녀가 쓰는 작은방 문이 지그시 열려있어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다.

'헐, 이게 다 뭐야.'


그녀가 쓰는 방은 온통 쓰레기였다. 빈 생수병과 과자 봉지가 나뒹굴었고, 배달 음식 용기들이 소스가 뭍은 채 방안에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한쪽에는 이불과 옷가지들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방에서 음식물쓰레기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자기 방을 이렇게 쓸 수가 있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서서 바라만 봤다.

일단 방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래도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자신의 방이야 어떻게 쓰던 그건 내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여긴 내 공간이기도 하다. 상대에게 불편을 준다면 그건 선을 넘어선 행동이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다. 다만 어떻게 말해야 기분 나쁘지 않으면서 내 생각을 전달할지 고민이었다. 그날 밤 그녀와 거실에서 마주쳤다.


"집에서 무슨 냄새 같은 것 나지 않아?"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응? 무슨 냄새? 잘 모르겠는데."

"오래된 음식물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나는 그녀의 방을 살며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배달시켜 먹었어?"


그녀는 눈을 끔벅끔벅 거리며 도대체 무슨 이야기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 아이는 상대를 의식하지 않으면서 눈치도 없는 것인가. 그녀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자신의 방 쪽을 쓱 바라봤다. 이내 내게 미안한 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어제 너 저녁 아르바이트 끝나고 오기 전에 나 혼자 치킨 시켜 먹었어. 미안."


아니 그런 말이 아닌데. 치킨 같이 먹지 않았다고 그러는 게 아니라고. 포인트를 잘못짚은 것 같은데.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냐 아냐 그런 말이 아니라..."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어. 한 마리만 시켰거든..."


난 그녀에게 그런 뜻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기 할 말은 다 끝냈다는 듯 눈물을 보이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모습도 황당했지만, 분명 내 말의 의도를 알면서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모습이 충격이었다.


괜히 나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 같아 결국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내 방에 돌아와 털썩 앉아 내가 왜 미안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다가 허탈한 웃음이 났다. 이후 그녀의 영역은 자신의 방을 넘어 거실까지 확장했다. 어느새 거실은 그녀의 물건들로 채워졌다. 냉장고에는 먹으면 안 될 것처럼 보이는 남은 음식들이 가득해졌고, 싱크대에는 설거지해야 할 접시와 컵이 대충 쌓여 있었다.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난 더 말하지 않았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똑같은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면 일단 약한 모습 보인 뒤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눈망울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결국 내게서 사과를 받아냈다.


그녀와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 더는 버티기 힘들어질 무렵 그녀는 방을 빼겠다고 했다. 예정보다 다소 빠르게 가족이 살 집이 이사하게 되었다며 내게 통보하듯 전했다. 그러면서 먼저 선입금한 한 달 치 월세 중에서 남은 열흘 치를 계산해 돌려 달라고 했다.


난 돌려주는 게 맞는지 헷갈렸지만 그녀에게 10만 원을 건네주었다. 돈을 주고 나서 수연이에게 “왜 돌려주느냐”며 잔소리 들었지만 그보다 그녀를 빨리 내보낼 수 있어서 차라리 고마웠다.


그녀는 방을 빼던 날 내게 “꼰대처럼 잔소리하는 걸 줄이면 좋을 것 같다”며 충고를 남겼다. 순진했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고, 팔짱을 끼고 눈을 살짝 내리깔며 무시하듯 툭 내뱉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대꾸하지 못했다. 한 이틀이 지났을까. 그녀가 나간 방에 새로운 임차인이 생겼다.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전단을 새로 붙인 것도 아니었다. 어딘가에 여전히 붙어있던 전단을 본 것 같았다.




*

그녀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우리 학교 3학년 선배였다. 이유는 묻지 않았지만 지금 살던 집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말한 조건들을 모두 오케이 했다. 선배는 조용했다. 집에 있어도 없는 듯했다. 오히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내가 거실에 있을 때 선배가 방을 나올 때 살며시 문틈으로 방안을 봤는데 깔끔했다. 선배는 얼굴도 예쁘고 잘 꾸미는 스타일인 듯했다.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선배는 나를 동생처럼 잘 챙겨줬다. 나도 언니가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선배는 참 좋은 사람으로 느껴졌다. 특히 내가 듣는 교양 과목과 교수님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지 들려준 적 있는데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자신의 방은 물론이고 거실과 화장실까지 청소했다.


이제 곧 기말고사와 함께 1학기 종강이 올 무렵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온 저녁, 현관문 밖에서부터 집 안이 시끌시끌하다. 안에는 선배의 친구들이 있었다. 선배까지 네 명. 언니(?)들은 선배의 방과 거실에 걸쳐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어정쩡하게 인사하자, 선배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러더니 "이리 와서 같이 한 잔 하자"며 내게 손짓을 했다. 언니들도 밝은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며 맞장구쳤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피곤한 데다 몸도 좋지 않다고 둘러대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화장실도 가고 싶고 샤워도 하고 싶었지만 방 안에서 꿈쩍하지 않았다. 괜히 방 밖으로 나갔다가 붙잡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니들의 수다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가 다시 깨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3시 넘어 거실이 조용해졌고 내가 일어나 방문을 살짝 열고 나갔다. 언니들은 방과 거실 곳곳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딱 한 명, 선배만 빼고. 선배는 많이 취한 모습이었는데, 나에게 잠깐 앉아보라고 하더니 온갖 잔소리를 쏟아냈다.


"사람이 더불어 사는 거지,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니고."

"언니 체면이 있지, 내 친구들 앞에서 건방지게 그게 무슨 행동이야."

"선배가 말하면 잘 새겨들어야지, 방에 쏙 들어가고 말이야."

"내가 이렇게 내 집처럼 청소하고 그러면 너도 뭔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취했구나 싶어서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어서 자라고 했다. 선배는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며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다고 했다. 그러더니 옆으로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짜증이 났지만 참기로 했다. 괜히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며칠 뒤에 일어났다. 그날은 운이 좋게도 아르바이트가 조금 일찍 끝난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거실에 불은 켜있었지만 조용했다. 뭐 선배가 방에 있구나 하며 별생각 없이 들어서는데, 남자 신발이 보이는 게 아닌가. 분명 남자 신발이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근데 뭔가 찜찜했다. 남자친구가 왔나. 나도 아직 남친을 이곳에 들여놓지 않았는데, 내 허락도 없이 들일 수는 없는 거다.


일단 조용히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나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야 했다. 거실에 나와서 냉장고를 열었다. 선배 방 쪽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걔 온 거 아니야?"

"이상하네. 아직 올 시간 안 됐는데, 괜찮아 오빠. 신경 쓰지마."


신경 쓰지 말라니. 나는 아무래도 되는 사람인가. 잠시 조용해지나 싶더니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방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남녀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난 입을 막고 살금살금 내 방으로 건너왔다. 심장이 쿵쾅거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거실로 나갔다. 나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생각에 불쾌하면서도 궁금했다. 선배 방 가까이 다가갔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남녀의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잠그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노래를 틀었다. 그들의 본능적인 사운드 대신 내 최애 오빠들의 달콤한 보이스가 귀를 파고들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잠깐 잠이 들었다 깼는데 두어 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시 거실에 나가보니 그 남자의 신발이 사라졌다.


내 인기척을 듣고 선배가 거실로 나왔다. 분명 내가 나온 것을 알고 기다렸다는 듯 나온 것이다. 선배는 나를 보더니 기지개를 켜며 "언제 왔어?"라고 물었다. 자연스럽지 못하다. 연기력은 없는 듯했다.


"조금 전에 왔어요. 오자마자 잠이 들었나 봐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답했다. 서로 어색해지는 것보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선배는 쓸데없는 말들을 이어갔다.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교수님이 어쨌으며 점심으로 먹은 학식이 어땠다느니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며칠이 더 지났고 난 선배와 더는 함께 살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화장실을 나왔는데 한 남자가 거실에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언제 들어온 거야’ 난 큰 타월로 몸만 두른 상태였다. 내가 비명을 질렀고 남자는 선배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난 내 방으로 돌아와 부리나케 옷을 입었다. 밖에서는 그 남자가 집을 나서며 선배에게 뭔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번에 찾아온 남자와 다른 목소리였다.


뭐야 이 남자 저 남자 막 들이는 건가. 이어 선배가 내 방문을 노크했다. 난 아무 대답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선배가 들어간다며 내 방으로 들어왔을 때 난 울음을 터뜨렸다. 선배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난 한참을 울다가 선배에게 딱 한마디 했다.


"선배랑 같이 살고 싶지 않아요."


눈물 때문이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선배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아마 당황스러운 얼굴을 했을 것이다. 선배는 조용히 내 방을 나갔다. 다음 날 선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짐 뺄 거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리라는 내용이었다.




*

선배는 나갔고 작은 방은 텅 비워졌다. 아주 깨끗하게 청소까지 하고 나갔다. 그것도 내가 없는 사이 말도 없이 떠났다. 룸메이트를 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남자친구에게 선배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배의 남자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남친은 열을 내며 온갖 욕을 해댔다. 내가 “됐다”며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느냐며 화를 냈다.

"너 혼자 무서우니까, 당분간 내가 같이 있을까?"


이것들이 진짜. 남친에게 나도 이 집을 빼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학교에서 다음 학기 기숙사 이용자를 모집해 신청했고 운이 좋게도 당첨됐다. 혼자 쓰는 방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써야 한다. 통금시간도 있고 이래저래 불편할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가 출입할 수 없으며 기숙사 이용 규칙이 있으니 예전 같은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무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내 욕심만 조금 내려놓으면 될 일이었다.

집주인 아주머니에게는 사정이 생겼다고 말했다. 주인아주머니는 별말 없이 그리 하겠다고 했다. 보통 전세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데 나가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할 법도 한데, 군말 없이 알겠다고 하는 게 이상했지만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마도 내 방을 다녀간 많은 사람에 대해 알고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내가 월세를 받고 방 하나를 내어준다는 건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해 친구들이며 남자들을 집으로 들이는 여학생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대학 첫 학기는 우여곡절로 끝나갔다.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는 왜 기숙사에 들어가는지 묻지 않았다. 엄마에게서 ‘문 덜컹 사건’에 대해 이야기 들은 모양이다. 엄마는 아마도 아빠에게 속상함을 엄청나게 풀어놓았을 것이다.

"혼자 쓰기에 방이 너무 커, 아빠."

"그려... 알어서 잘 허겠제. 기숙사에 들어가나께 아빠는 인제서 마음이 놓이네."


"아빠 나 방학 때 집에 못 갈 것 같아."

"왜 또 무슨 일 있는겨?"

아빠는 실망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공부할 게 많아. 1학기 때 많이 못했거든."

"그럼 천상 추석에나 얼굴 보겠구먼."


"아빠 서울 오면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나 아르바이트해서 돈도 모아놨어."

난 대충 둘러대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현관문이 덜커덕 거린다. 그 소리다. 덩달아 내 심장은 철렁 내려앉았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침착해야 한다. 휴대전화에 112 숫자를 누르고 통화버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찰나 밖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 거기서 뭐 해?”


가끔 마주치면 인사 정도 하는 나와 같은 층에 사는 옆집 아주머니 목소리였다.

“어어, 여기가 아닌가...”

“저 인간이 술만 마시면 집을 못 찾고... 빨리 안 들어왓!?”

현관문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고 잠시 후 옆집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희미하게 옆집 아주머니의 잔소리가 들려왔다.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첫 학기에 많은 일이 있었다. 이제 기숙사 생활을 이어가겠지만, 언젠가 온전한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갈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이 있겠지만 난 꿋꿋하게 혼자서 살아남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