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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조던 Mar 05. 2018

회사를 때려치웠다면 의심없이 스페인으로

결국 나도 퇴사했던 날

학교를 다닐 때 영화잡지를 꿈처럼 품고 다녔다. 


잡지 제일 뒷면엔 영화사나 홍보대행사에서 언제나 급하고 절실해 보이는 구인공고를 내곤 했다. 나의 첫 취업이 이렇게 아날로그 적으로 이루어질 거라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난 영화 잡지를 보고 회사에 지원했다. 그렇게 영화판에 겁 없이 뛰어들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했다.


3년간 일하며 30편 정도의 영화를 개봉시켰다. 그중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천만 영화도 포함되어 있었고 나조차 제목도 어렴풋한 영화도 있다. 영화판은 영화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꿈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반대로 말하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1분 1초도 버티기 힘든 곳이었다. 내가 일하던 회사도 나같이 영화를 품던 사람들이 모여 굴러가는 곳이었다. 회사라기보다 마치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아리방 같았다. 늘 시간이 부족했으므로 사무실 불은 꺼질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일하고 집에 가서 눈만 붙이고 나오는 것이 당연한 시절이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로 이어졌다.


집에서 마주친 엄마는 "우리 얼굴 좀 보고 살자"라고 말씀하셨다. 친구들에게는 불러도 늘 바빠서 나오지 못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몸도 더 자주 오래 아프기 시작했다. 신장염에 걸리고 회사 앞 이비인후과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늘 먹던 약은 점점 효과가 없어졌다. 가장 슬픈 사실은 영화가 좋아서 입사했는데 이제는 그 영화가 보기 싫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바퀴가 하나 빠진 수레처럼 삐걱대며 내 인생은 30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렇게 몇 개월 더 길게는 1년 정도 버티면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결국 나도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면 모든 걸 새로 시작할 수 있을듯했지만
정작 내가 시작할 수 있는 건 여행밖에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여행을 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동안 수고했던 나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고,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여행을 가겠냐는 시간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퇴사 후 여행은 그것밖에 달리 할 것이 없음과 더불어 이거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에 가까운 마음이 뒤섞인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나 역시 여행을 가기로 했고 그 목적지는 10월의 스페인이었다. 언젠가 스페인어 전공자 친구가 그 나라는 365일 중에 300일은 날씨가 좋다고 한 말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주 단순한 이유지만 겨울을 향해가는 시점에 따뜻하고 날씨가 좋은 유럽이라는 점이 마음이 들었다. 늘 깜깜한 밤에 퇴근하던 내 인생에 빛처럼 절실한 게 있을까 싶었다. 빛이 있으면 뭐든 가능할 것 같았다. 낮에는 티셔츠 하나 입고 가볍게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았고, 햇살이 드리운 공원을 유유자적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노천에 앉아서 맥주나 샹그리아도 한 잔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노을 지는 저녁엔 덩달아 아름답게 물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야근에 익숙했기 때문에 늦은 밤까지 스케줄표를 만들고, 책과 카페를 뒤져 정보를 찾는건 쉬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중고 필름 카메라도 하나 사고, EBS스페인어 책도 한 권 사서 숫자와 인사말을 외워보기도 했다. 친구들은 퇴사겸 여행 기념 선물로 가이드북을 한 권씩 챙겨줬다. 지금 같은 스마트폰이 없던 당시 로밍 폰도 하나 구비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도착한 스페인은 어땠냐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정열의 나라답게 흥 많은 사람들로 출렁이고 한 밤중에도 그 열기가 가시지 않았냐고 물론 스페인은 그러했다. 내가 그 풍경의 일부가 되지 못했을 뿐. 퇴사를 하고 떠나오면 나는 자유다!! 외치며 바로 멋진 여행이 시작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왜냐? 첫 발을 디딘 스페인은 내겐 너무 무서웠으니까. 밤이여서 그랬을까, 혼자 여행은 처음이라 그랬을까, 아니면 이미 여행을 떠나 오기도 전에 너무 많이 들었던 소매치기 사건들 때문일까. 최대한 관광객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숙소에서 미리 지도를 보고 길을 외우며 걸어 나왔다. 하지만 발을 딛는 순간부터 모든 것은 백지화되었다. 누가 현지인이고 관광객 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인파들이 정신없이 나를 스쳐갔다. 동양인인 나는 누가 봐도 관광객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에 안그래도 위험해 보이는 가방을 더 꽉 움켜쥐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가득한 광장을 겨우 지났다.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떠드는 광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거대한 하몽이 달려있는 타파스바는 마치 분홍빛 정육점처럼 보였다. 츄러스를 팔고 있는 그 달콤한 노천거리를 도망치듯 쏜살같이 지나버렸다.

 


이 무서움은 휴가를 내고 스페인으로 날라 온 친구를 만나며 그나마 극복되었다. 그녀와 함께 찾은 광장은 공기부터 달랐다. 아까와 똑같은 광장인데 이제야 흥에 겨운 광장의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붉은 얼굴에 취기가 가득한 사람, 춤추고 있는 사람, 사탕을 문 아이와 구경을 나온 사람이 보였다. 자정을 향하는 밤에 혼자 지나친 노천 츄러스 가게에 둘이 앉았다. 도착 후 첫끼로 갓 튀겨 나온 뜨거운 츄러스를 초코라떼에 푹 찍어서 먹었다. 골목길을 따라서 적당한 온도의 바람이 코 끝을 스쳤다. 옆 테이블 노부부들이 마주 앉아 피워내는 수다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스페인 어린이들은 이 늦은 시간까지 안 자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거리에 나와있는 가족들도 많았다. 그제야 조금씩 세상 어딘가엔 이런 밤도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아마 회사 사람들은 지금도 야근을 하고 있겠지라는 생각도 함께 따라 올라왔다. 서울과 다른 밤을 맞이하자 퇴사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고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생각도 확실해졌다.

 


그런 밤을 보냈다해도 다음날 아침부터 바로 제대로 된 여행자가 될 순 없었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이틀 일주 이주 쌓여가며 자연스럽게 내 몸에서 일하며 쌓였던 때들이 조금씩 벗겨져나갔다. 그리고 내가 좀 더 이 나라와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간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누군가가 처음의 나와, 여행 끝의 나를 영상으로 찍는다면 이랬던 그녀가 이렇게 변했어요 같은 씬이 연출될지도 모르겠다.


올라!라고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카페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커피나 식사를 주문하기 위해 점원은 어디에 있나, 언제 내 주문을 받아주나 두리번거리지 않게 되었다. 스페인 특유의 느긋함에 익숙해지며 영수증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여유도 늘어났다. 처음엔 혼자 밥 먹기 괜찮아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다면 점차 그냥 내가 가고 싶은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자주 가는 가게도 생겼고 주인아저씨와 눈인사 후 ‘늘 먹던 그것’이 가능한 날도 왔다. 한 손엔 맥주 한 손엔 타파스를 들고 서서 홀짝 거리는 밤도 무섭지 않았다. 일어나면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이 햇살을 따라 공원을 걸었고, 어느 날은 뭐 이런 좋은 햇살은 내일 또 있는데라며 낮잠을 자도 아깝지 않았다. 시에스타(낮잠시간)를 보내고 한 밤 중 저녁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그리고 운도 좋게 그 악명 높다는 소매치기와 마주치지 않았다. 수상한 분위기의 사람이 다가와도 뿌리치며 나아갈 용기도 생겼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니 어깨 가득 들어 간 힘도 서서히 풀려나갔다.


내가 가고 싶은 도시로 이동하고 여행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스페인 국내선을 탈 때면 비대해진 짐이 용량 초과에 걸리지 않도록 기내로 가져갈 물건들을 재빠르게 나눠 담았다. 버스 짐 칸에 20킬로에 가까운 무거운 트렁크를 올리고 내리는 힘도 솟았다. 이전엔 제때 오지 않으면 불안했던 버스도 오겠지라며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내려야 할 도시를 지나치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몇 정거장 전부터 긴장되던 자세도 풀어졌다. 한편으론 한 정거장 정도 지나치면 어때라는 배짱도 생겼다. 어설픈 스페인어로 정류장 정도는 물어볼 수 있었고,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교감이 된다는 것을 느끼는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일부러 버스를 보내고 근처 노천에서 와인을 마시며 하얀 마을이 노을빛으로 물드는 풍경을 바라보기도 했다. 방과 후 학교에서 뛰어나온 동네 아이들의 축구복과 등에 MESSI라고 쓰인 유명 축구선수의 이름을 따라서 모르는 골목을 걷기도했다.


그동안 내가 태어나 살아오던 곳을 제외하고
이렇게 익숙해져 본 도시도 여행지도 없었다. 

여행을 떠나오며 내가 그토록 원하던 시간들은 내가 특별히 여행을 잘해서 생겨나는 것들도 아니었고 엄청난 것을 포기하거나 비워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내다 보면 시간이 가면 저절로 마련되고 해결되는 것들이었다.


친구의 말대로 스페인은 맑고 화창하여 내가 그토록 원했던 낮의 햇살을 선물해주었다. 덤으로 노을을 기다리고 바라보는 행복도 알게 해 주었다. 온통 야근으로 얼룩졌던 밤의 시간까지도 돌려주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좀 더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갈 수도 있었다. 남부 도시들은 저마다의 매력으로 여행에 풍미를 더했다. 지중해와 닿아있는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의 푸른 바다 곁에서 쉴 수도 있었고, 살면서 처음 보는 기이한 협곡 마을 론다도 구경할 수도 있었다.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던 말라가에서 며칠 여정을 풀기도 했으며, 그라나다 현지에서 만난 교환학생과 집시 마을에 오르고 알람브라 궁전에서 다시 그 마을을 바라보기도 했다. 세비아에선 만개의 골목을 지도 없이 누비다 플라맹고를 보는 밤도 있었다. 우리나라와 큰 물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며 술과 음식 과일까지 워낙 풍족하고 맛있으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배는 두둑했다. 저녁 6시~7시면 식당과 매장이 문을 닫는 안전 하지만 재미없는 나라들과 달리 밤부터 또 다시 시작되는 스페인 문화 덕에 낮에도 밤에도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이 나라와 도시와 사람들의 품 속에 뛰어들 수 있었다.


아마도 여행 때문 이겠지만, 누군가가 퇴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난 스페인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스페인으로 여행 가세요. 일단 날씨가 좋거든요. 365일 중에 300일은 맑대요" 진짜인지 아닌지 확실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저 토록 화창한 문장이 싫은 직장인은 아마도 거의 없을듯하다. 만약 내가 다시 회사를 때려치운다 해도 난 스페인에 갈 것이다. 인생에서 무언가 끝이 났을 때 갈 수 있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거대한 두려움이 친근해진다. 내가 사는 이곳을 제외한 가장 익숙한 나라, 내게 절실했던 낮의 빛은 물론이고 잃어버린 밤의 시간까지 돌려준 나라. 회사를 때려치웠다면 의심 없이 스페인으로 떠나면 된다.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오늘 당신의 고군분투에 조금의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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