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던 날
우리는 가보지 않은 도시로의 여행을 꿈꾼다. 새로운 곳을 찾으면서도 이미 다녀온 나만의 도시는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주길 바란다. 어느 날 친구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 있다. "너와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야?" 친구가 답해준 이름이 의아했다."근데 너 요즘 걔 자주 만나지도 않잖아"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 땡땡이가 결혼하고 이전처럼 자주 볼 순 없지 그래도 제일 친한 친구는 여전히 걔야" 내가 예상했던 답변이 아니었다. 친구와 일도 함께하며 근래에도 자주 만나는 이름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자주 볼 수 있고 없고를 넘어선 이름 같았다. 시간으로 견고하게 이루어진 마음속 1순위 같은 느낌이랄까.
나에게도 그런 도시가 하나 있다. 그동안 여행했던 곳 중 어디가 제일 좋냐고 묻는다면 1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곳 바로 '바르셀로나'다. 직항을 타고 날아가도 최소 13시간의 시간이 걸려야 닿을 수 있는 곳. 더 가깝고 자주 볼 수 있는 도시도 있지만, 나는 이 먼 도시를 가장 친한 친구로 마음에 두고 있는 셈이다. 새롭게 만난 도시들이 생겨나고, 게 중엔 더 가까워 자주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나에게 멋진 풍경도 보여주고, 전에 없던 근사한 행운을 선물해 준다 해도 내 마음속 가장 친한 친구는 바르셀로나다.
퇴사 후 마드리드에 며칠 머문 뒤 바르셀로나로 넘어갔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주소를 보여줬다. 그라시아라는 동네였다. '도시에 들어선 순간 난 내가 이곳을 좋아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언젠가 이런 문장을 봤을 때 진짜일까라는 의심을 가진 적 있었다. 그랬던 내가 문장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택시는 낮은 속도로 가로수길을 지나고 있었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여느 유럽과 다른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순간 색색의 영롱한 빛을 발하는 창문이 반짝했다. 살면서 봤던 네모 모양도, 동그라미도 아닌 창문이었다. 그저 도시로 들어섰을 뿐인데 약간의 황홀함을 느꼈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드러운 곡선의 건물이 물결치듯 펼쳐졌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함, 너무 얇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건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건물들은 가우디의 까사바요트와, 까사밀라였다.) 택시는 우리를 작은 도서관 앞에 내려줬고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나는 이 동네 또한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어찌 보면 바르셀로나는 만나는 순간부터 운명이었다. 첫눈에 반하는 여행지가 정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짐을 푼 숙소는'까사구르메'였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미식가의 집'이 된다. 한국인이지만 스페인 요리사인 언니(지금은 통인동 스페인 식당 타파스구르메의 셰프님)와 가족의 집이었다. 언니는 이미 나보다 더 먼저 더 깊이 바르셀로나의 이 동네와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런 가족의 집에서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를 더 좋아하게 될 이유가 100가지는 늘어났다. 첫날 언니는 커다란 바르셀로나 지도를 식탁에 탁! 펴고 도시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골목골목과 식당, 시장, 빵집, 샵들을 알려주었다. 특히 요리사인 언니의 설명이 더해지는 식당과 메뉴들은 듣기만 군침이 돌아 참을 수 없어지곤 했다.
부드러운 도시의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 서울에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발신자는 회사 다닐 때 함께 일한 적 있었던 기업의 팀장님이었다. 연락이 안돼서 문자 남긴다며 전화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지금 스페인에 여행 중이라 연락을 못 받았다 답했다. 이후 돌아온 문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쪽 회사에 자리가 나서 사람을 구하고 있단 내용이었다. 내가 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면접을 볼 수 있냐고 묻고 있었다. 다녔던 회사보다 여러 면에서 좋을 회사였다. 아무 계획도 없이 퇴사한지라 돌아가서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백지 백수 상태였다. 연락 온 회사는 대학 전공과도 맞았고 해보고 싶던 일이라 욕심이 났다. 팀장님은 여행에서 돌아오면 바로 면접을 볼 수 있냐고 물었다. 길어봤자 1주면 여행이 끝날 거라 예상하신듯했다. 한국 시계로 봤을 땐 너무 당연한 생각이었다. 한 달 정도 여행 중이라 대답하니 그쪽은 급한 상황이라 날 기다려 줄 수 없다고 했다. 한 일주일 정도 스페인 구경도 했으니 그냥 돌아가서 면접을 볼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9월에 퇴사하며 올 해는 절대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나의 결심은 한국에서 온 문자 한 통에 바들바들 흔들렸다. 여기까지 떠나왔는데... 내 인생에서 이렇게 여행할 날도 다시없을지 모르는데 라는 생각이 울컥하며 반기를 들었다. 한 달이다. 고작 한 달. 내 인생에서 단 30일도 내가 원한대로 살 수 없다면 이후 펼쳐질 내 인생을 온전히 내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을 열고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지도 모를 문자를 꾹꾹 눌러썼다. "팀장님, 면접을 보고 싶지만 아직 여행이 남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아쉽지만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넘기겠습니다. 저에게 연락해주셔서 감사해요."
퇴사 후 시작할 일도 선택할 것도 없어 떠나온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내가 선택한 여행이 되었다.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별히 더 시간이 많아서도, 돈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선택의 문제였던 것이다. 나는 여행을 선택했고 그날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에서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은 평소와 같이 집 앞 넬슨아저씨네 커피 가게에서 시작했다. 동화 피노키오에 나오는 할아버지를 닮은 넬슨아저씨가 있는 커피집은 동네 사랑방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수다에 가끔씩 스치는 아저씨의 미소가 우유 거품처럼 보드랍고 인자했다. 내가 늘 정신없이 계산을 하면 오늘도 돈을 더 냈다며 동전을 내 손바닥 위에 돌려주셨다. 우리가 아저씨네가 좋다며 호들갑을 떨면 언니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최고지" 어떤 가이드북에도 없던 동네 카페였지만 나에겐 바르셀로나 최고의 커피집이었다.
노을이 지기 전엔 버스를 타고 구엘공원에 갔다.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구엘공원을 돌고 해가 지기 시작할 땐 곡선의 벤치에 앉아 분홍빛 바르셀로나를 눈에 담는 건 나만의 의식이었다. 맑은 날은 저 멀리 바다까지 보여 늘 하늘과 바다를 구분하려 발을 쫑긋 들곤 했다. 햇살이 쨍쨍한 낮에 공원을 찾으면 저녁과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고무줄놀이하듯 경쾌한 발걸음으로 뜨거운 햇살의 직선과 그늘의 곡선을 건넜다. 어느 날은 공원 벤치 타일 무늬만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도 있었다. 어쩜 이런 무늬가, 어쩜 이런 색이, 정말 모두 다른 무늬네 하면서 앉아도 보고 바라도 봤다. 그러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가 생각나 괜스레 혼자 온 게 미안해지곤 했다.
바르셀로나의 모든 식재료를 만날 수 있는 보케리아 마켓에서 과일 주스 하나를 물고 나오면 그저 기분 좋은 오후도 있었다. 언니가 알려준 생크림 대회에서 1등 했다는 가게가 문 열길 기다렸다가 컵 위로 우뚝 솟은 생크림을 앙 물기도 했다. 동네를 산책하고 시에스타를 즐기고 동네 멋쟁이들이 모인다는 피자집에 갔다. 하몽 피자 한판을 안주 삼아 샹그리아 한 병을 마시고 떠들다 보면 내가 여행자라는 사실이 가물 거리기도 했다. 동네 구제 샵들을 구경하다 친구와 똑같은 시계를 하나씩 사서 차는 밤도 있었다. 늘 부지런을 떨던 난 조금 천천히 가고, 늘 천천히를 외치던 친구는 좀 더 부지런히 갔다. 재깍재깍 둘 사이에 같은 리듬의 바르셀로나가 흘렀다.
가우디 투어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대신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가우디의 건축물을 찾아갔다. 까사밀라에 들어갈 때면 관광객들이 우르르 통과하는 입구 천장을 올려다봤다. 빛이 들어오는 시간에 따라 색이 다르다고 했기 때문이다. 파스텔 톤의 색들이 부드럽게 엉켜있었다. 역동적인 파도를 연상시키는 베란다를 보고 옥상에 올라가는 것은 더 없는 행복이었다. 가우디가 서민 아파트 위에 올려준 왕관 모양의 굴뚝을 바라보며 영화 스타워즈를 생각했다. 서울에서 구해간 중고 필름 카메라로 굴뚝을 찍고 또 찍었다. 태어나서 그토록 많이 남의 집 굴뚝을 찍은 적은 없을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곡선이 도시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나와서 길을 걸으면 직선이 아닌 곡선의 가우디 가로등을 만났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며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말한 그를 친구와 가우디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휴가가 끝난 친구가 떠나고 혼자 바르셀로나 공항에 남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와 텅 빈 느낌을 채울 길이 없었다. 만약 면접을 봤더라면 지금 친구와 함께 돌아갔겠지... 공항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하는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왈칵 눈물이 났다. 그렇게 텅텅 비어 혼자 동네로 돌아왔다. 무조건 달콤한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니가 적어준 초콜렛 가게를 찾아갔다. 혼자서 재스민 초코라떼를 마시고 있는데 이제 정말 혼자라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 찔끔 나왔다. 종업원이 내게 다가왔다. "혼자 여행 왔어? 지금 먹는 거 맛은 어때? 뭐 안 좋은 일 있어?" 나는 답했다. "오늘 같이 여행했던 친구가 떠나서 혼자야. 이건 정말 맛있어." 점원은 성큼성큼 카운터로 걸어가더니 버튼을 눌렀다. 윙~ 하더니 천장의 커튼이 걷치기 시작했다. 내 머리 위로 파란 하늘이 드리웠다. 다시 나에게 오더니? "하늘 보는 거 좋아해? 보고 기분 좋아지면 좋겠어. 그리고 초코라떼 네가 먹는 맛 말고도 다른 맛이 3개나 있어. 내가 샘플을 줄게 맛봐바" 이후 내 탁자에 작은 초코라떼가 3잔 올려졌다.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날엔 제일 좋아하던 타파스 바에 갔다. 늘 일본인이야?라고 묻던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이야?라고 물어봐준 아저씨는 가게 오픈을 위해 문을 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올라! 하며 웃었다. 오늘이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날이라고 말했다. 아저씨는 내가 제일 좋아했던 그래서 늘 먹던 연어 타파스를 만들어 주셨다. 굿바이 선물로 오늘은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번도 먹지 않았던 새로운 타파스 맛을 보여 준다며 밤 타파스를 만들어 내밀었다. 한글로 이것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해서 "밤" 이라고 말했더니 내 입모양을 보며 똑같이 따라 하셨다. "바아암"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운명의 도시를 만난다. 나에겐 바르셀로나가 그랬다. 일단 바르셀로나는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도시였다. 우리는 누구나 운명의 여행지를 꿈꾸면서 그곳에서 긴 시간을 보내려 하진 않는다. 단 이틀 삼일 만에 그 도시가 나의 것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도시도 우리가 머무는 시간만큼 숨겨둔 모습을 보여준다.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이후 나는 한 나라, 한 도시 여행에 빠졌다. 간 김에 다른 곳도 보고 오자라는 마음 대신, 간 김에 그곳을 잘 보고 오자라고 마음먹게 되었다. 똑같은 곳을 여행해도 풍경은 가질 수 있지만 시간이 만들어 낸 경험은 가질 수 없으리라.
세상에 수많은 카페가 있겠지만 넬슨 아저씨네 카페는 바르셀로나뿐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공원은 어디에도 있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바다가 보이는 벤치를 가진 공원은 구엘공원뿐이다. 화려한 불빛을 뽐내는 고층 빌딩 야경 명소는 많겠지만 녹색 불빛 사이로 부드러운 곡선이 춤추는 도시는 이곳이 유일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타파스가 연어인 것을 기억해준 아저씨는 단 한 명이다. 울고 있는 나를 위해 하늘을 보여준 초콜릿 가게도 유일하다. 완공된 모습을 보고 싶은 성당도 이곳에 있다. 친구를 떠나보내고 다시 돌아온 동네도 여기밖에 없다. 바르셀로나는 어디에나 있는 것들로 가득하지만 나에겐 여기 밖에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시간은 내가 선택한 나의 것이 분명하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여행지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오늘도 그런 여행지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는지 모른다. 나에겐 바르셀로나가 그랬다. 처음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살아보고 싶다 생각한 도시. 자주 볼 수 없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동네 골목 어귀에 카페 입구에 타파스 바 선반에 공원 벤치에 가로등 불 빛에 걸려있다. 언제라도 몇 번이라도 다시 가고 싶다.
까사구르메를 떠날 때 언니에게 물었다.
"다시 바르셀로나 올 수 있을까요?"
언니는 그 답을 책 앞에 적어주었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