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여행 왔더니 퇴사해서 불안한 날
버스 기사 아저씨가 자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국경을 지나 포르투갈에 들어왔다고 30분 정도 휴게소에서 쉴 거니 간식도 먹고 물도 마시라고했다. 다시 출발한 버스는 리스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하더니 붉다 못해 검은 해가 계속 버스를 따라왔다. 이제 정말 스페인을 떠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이유도 모를 눈물이 났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올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살면서 그러긴 쉽지 않다는 것을. 이렇게 나의 여행 한토막이 끝났구나. 나는 진심으로 이 아름다운 여정이 마지막이길 바랬고 또 마지막이 아니길 바랬다. 태양이 있다는 게 이렇게 위로가 될 줄이야. 사연 있는 여자처럼 노을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으며 훌쩍거리며 리스본에 왔다.
다음날 눈을 떴더니 몸도 여행이 끝나간다는 것을 아는지 으슬으슬한 기운이 감돌았다. 창 밖 햇살은 쨍쨍해 보이는데 내 방은 너무 춥게 느껴져 히터를 틀었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따끔거리고 기침이 나왔다. 거울을 보니 입술이 파랬다. 한국에서 미친 듯 야근을 할 때 찾아오던 감기 초기 증상이었다. 꼭 일상으로 컴백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리스본에 왔지만 특별한 계획도 없었기에 하루는 푹 쉬기로했다. 숙소에서 주는 밥과 약을 먹고 이 불 속에 누워있자니 외롭고 쓸쓸했다. 한국말을 못 한 지 2주째였다. 로밍폰을 열어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준 문자를 바라봤다. 히히덕거리며 수다가 떨고 싶었다. 여행 중 모른 척 닫아 둔 잡념의 방 뚜껑도 열렸다. 이제 여행이 일주일 남았구나... 한국에 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취업도 어렵다는데 진짜 내년부터 이력서 내도 될까? 올해 쓸 돈은 있나? 퇴직금은 얼마 남았더라? 돌아가면 가족들에겐 뭐한다하지... 이렇게 무작정 쉬어도 되나? 끝도 없는 고민들이 꼬리를 물었다. 퇴사하고 여행 간다 해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특히 여행이 끝나가는 시점엔 내 마음에 무거운 납덩이가 들어있는 줄 알았다. 퇴사하고 여행 왔더니 퇴사해서 불안한 밤이었다.
다음날부터 내가 포르투갈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은 두 가지다. 첫째 트램을 타는 것, 두 번째 전망대에 올라가 앉아있는 것. 누구든 리스본엔 온다면 트램을 타게 되겠지만, 아무 계획도 없던 내 여행에서 트램 타고 하는 동네 구경만 한 게 없었다. 설마 여기도 갈 수 있나 싶은 언덕과 좁디좁은 골목까지 트램은 만능이었다. 트램을 타고 아무 생각 없이 종점까지 동네구경을 다녀오면 복잡한 머리도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램은 나를 언덕으로 데려다주는 28번이었다. 리스본은 언덕이 많고, 언덕으로 오르면 오를수록 아름다운 도시였다.
언덕에 도착하면 한눈에 붉은 리스본 지붕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풍경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맘에 드는 건 전망대 사람들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마주친 사람들은 참 다양했다. 시장에서 본 사람들, 공원에서 본 사람들, 바닷가에서 본 사람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전망대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내가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부러운 사람들에 속했다. 그 이유는 내게 가장 부족한 '여유'가 그들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앉아 있을 수 있는 여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큰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여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도 책을 볼 수 있는 여유, 그들을 나에게 또 하나의 전망대였다. 풍경과 사람들을 교차로 바라보다 보면 불안한 내 마음에도 잔잔한 평화가 스며들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래도 니 인생이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어김없이 만나는 돌길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싫어하는 하이힐을 신고 걷기 어려워보이는 울퉁불퉁한 느낌이 좋았다. 운동화를 권하는 나라, 단화를 신는 게 어색하지 않은 나라. 반듯하지 않은 불편한 자연스러움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 걷다 보면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나 동네 빵집에서 커피와 빵으로 배를 채우곤 했다. 원래 빵은 파앙이라는 포르투갈 말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길다가 그냥 들어간 빵집도 맛이 좋았다. 큰 빵을 쓱쓱 썰어서 봉투에 담아 가는 마을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쌀로 끼니를 이어가지 않는 느낌 때문에 내가 진짜 유럽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빵을 먹고 고개를 들면 바로 눈 앞에 물고기 무늬 트램이 지났다. 어!! 빙고 물고기 트램!! 보물찾기 중 보물을 찾은 것처럼 사소하게 반가웠다.
리스본은 긴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다. 위치로도 가장 아래쪽 끝이었다. 리스본에서 조금 더 가면 진짜 대륙의 끝이 나온다고 했다. 유럽 최서단에 왔다는 증명서도 써 준다는 호카곶(CABO DA ROCA)이란 곳이었다. 여행의 끝에 대륙의 끝을 찾아가는 건 당연한 순리였다. 버스를 타고 찾아가니 정말 붉은 도장이 찍힌 증명서에 내 이름과 나라를 적어줬다. 증명서를 품에 안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향해 걸어갔다. '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끝과 시작이라는 상반된 단어가 양극에서 마음에 파고들었다. 끝을 볼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무한대의 바다가 펼쳐졌다. 땅이 끝나도 바다가 시작되니 좋겠다... 나에게도 이 여행이 끝나도 무언가 새로 시작되면 좋겠다... 그게 그 무엇이라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끝으로 몰린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엔 현지인들이 추천해준 식당에 찾아갔다. 당시만 해도 한국인은커녕 동양인 여행자도 거의 없었다. 내가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 밥을 먹던 사람들이 모두 정지한 듯 나를 쳐다봤다. 아니 쟨 뭐지? 하는 느낌이었다. 스페인부터 혼자 밥을 먹는 연습은 충분히 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고 문어밥과 와인 한잔을 시켰다. 빵이 먼저 나왔다. 버터를 달라고 말하니 종업원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발음 때문인가 싶어 버어터~ 버어어터~ 벗터~ 아무리 말해봐도 빵을 들어봐도 그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때였다.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시던 아저씨 두 분이 점원에게 알 수 없는 단어를 외쳤다. 점원의 얼굴은 아하!하는 표정이 스쳤다. 그렇게 버터가 나왔다. 좁은 골목 안 더 좁은 식당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덕에 옆자리라 해도 거의 같이 먹는 것 같은 어색한 가까움이 느껴졌다. 식사를 하던 두 분의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행 왔니? 어느 나라에서 여기까지 왔어?"
"한국에서 왔어요. 스페인을 여행하고 리스본으로 왔는데 내일 다시 한국에 돌아가요"
"어? 스페인에서 왔다고? 우리도 스페인에서 출장 왔어. 이분이 나의 상사, 난 그 밑에 직원"
"아, 스페인에서요? 저 스페인 정말 정말 정말 좋았어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세비아..."
"너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어디 팬이야?"
(난 재빠르게 아저씨들을 살폈다. 얼굴, 옷차림, 그리고 내가 지나온 도시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레알 마드리드요"
"아 역시!!! 그렇지!!!"
정답을 맞힌 걸 알 수 있는 웃음이 양쪽에서 터졌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아저씨들은 내가 시킨 와인이 요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자신들의 와인을 내 잔에 따라주었다. 대화가 시작 된 분위기 때문인지 와인 맛 덕분인지 어색하고 시끄럽던 식당이 활기차게 느껴졌다. 대학생이니?라고 묻는 대답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왔다고 하니. 큰 일을 겪었다며 퇴사를 한다는 것은 이곳에서도 쉽지 않다고 말해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가 나오자 상사 아저씨가 내 밥 값을 내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아니라며 손사래 쳤다. 그러자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아까 네가 식당에 들어올 때, 우리 딸 생각이 났어. 우리 딸도 지금 일본에 유학을 가 있거든. 네가 들어오니깐 여기 사람들이 널 쳐다봤지? 네가 서서 두리번거리는데, 우리 딸도 일본에서 식당에 들어가면 꼭 그럴 것 같더라고. 그래서 사주고 싶어. 그리고 너 정말 용감하다. 여기까지 혼자 여행을 오고. 회사도 그만두고 말이야"
"제가 용감해요?"
"어, 정말 용감해. 보면 한국 사람들은 정말 용감한 것 같아. 우리는 여행을 다닐 때 가족이나 그룹을 지어 많이 다니거든. 그런데 너는 혼자 이 나라 이 식당까지 찾아왔잖아. 우리 딸만큼 용감한 것 같아.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출장 온 우리보다 용감해"
여행의 마지막 날에 '용감하다'라는 말을 선물받을 줄이야... 여행을 시작하던 마드리드에서 잔뜩 겁먹은 쫄보였던 내가 떠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마드리드 사람들이 나에게 용감하다고 말해주고 있다. 일을 그만둔 것도, 여행을 온 것도, 식당을 찾은 것도 용감하다니! 어깨가 으쓱하더니 묘하게 씩씩해지는 기분이었다. 진짜 내 실상이 어떻든 그 순간만큼은 몇 % 는 더 용감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힘이 나는 말이었다. 기억해두었다가 한국까지 가지고 가고 싶은 말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냥 아저씨가 아닌 호세 루이스와 에두와르도 두 분을 향해 더듬더듬 말했다. Me alegro de verle. mucho gracias (만나서 반가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알딸딸한 와인 기운이 남은 밤이었다. 이제 해가 뜨면 정말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배낭에 중요 물품을 챙겨 넣었다. 빌려온 노트북을 열고 한 달간 열지 않은 메일함을 열었다. 메일함은 정리하지 않은 옷가지를 쑤셔 넣어둔 장롱 같았다. 현실의 조각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그중 한 통의 메일을 떨리는 마음으로 열었다. 수신인은 바르셀로나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했던 팀장님이었다. "한 달 동안 면접을 봤지만 아직 사람을 구하지 못했어요. 이제 거의 여행이 끝나 가지요? 아직 면접 볼 생각이 있다면 돌아와서 연락 주세요" 세상의 끝. 여행의 마지막 날. 모든 걸 끝내고 온 나에게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 글자들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것처럼 나도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다고. 적어도 그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용감하게 다시 시작해보자고. 그렇게 끝의 리스본에서 모든 것은 새롭게 시작되고 있었다.
+ 덧붙이는 글
그렇게 돌아와 면접을 본 회사가 지금 저의 직장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일한 지 벌써 8년이 되어가죠. 여행도 운명과 타이밍이 있다면 직장과 일도 그런 것 같아요. 인생에서 여행도 소중하지만, 일도 그만큼 소중하죠. 처음 전화를 받았던 바르셀로나에서 돌아가서 면접을 봤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집니다. 그럼 여행을 못했을 거니깐요. 거절한 덕분에 생에 처음으로 긴 여행을 했고, 운명의 도시도 만났죠. 하지만 리스본에서 면접 메일을 받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그 역시 절레절레 고개가 저어집니다. 어찌 보면 그냥 행운이었을지도 몰라요. 또 다르게 생각하면 직장도 여행만큼 큰 인연이고 운명일지 모르겠습니다.
바르셀로나 이야기: https://brunch.co.kr/@julyjoje/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