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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조던 May 09. 2018

피자 한 판 먹으러 나폴리에 왔습니다만

언제 이렇게 겁이 많아졌나 싶은 날

나폴리라는 단어는 왠지 익숙하다. 팔 할은 나폴리 피자 때문이겠지. 우리 동네 피자가게 전단지에서도 본 것 같은 나폴리 피자. 손으로 만들어 내는 반죽, 도우 위 빨간 토마토, 하얀 모짜렐라 치즈, 초록색 바질 잎이 동시에 떠오른다. 화덕에서 노릇노릇 구워져 나온 피자를 기다려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검게 그을린 끝부분은 바삭하고 한 입 더 베어 물면 짭조름한 피자 맛은 또 어떻고. 그동안 수많은 토핑이 올라간 변화무쌍한 피자를 만났지만 그럼에도 '피자'하면 기본 중의 기본 마르게리타가 떠오르는 것이 나폴리 피자의 힘일 것이다.


사람들은 알까? 알록달록 예쁘고 맛있는 나폴리 피자와 도시 나폴리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긴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일주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이탈리아는 가고 싶은 도시들로 넘쳐났다. 한 달 내내 이 나라만 본다 해도 다 보지 못할 듯했다. 로마,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같은 유명한 도시부터 시칠리아, 아시시, 시에나, 카프리, 포지타노까지... 매일 지도를 보며 일정 속에 도시를 넣고 빼기 바빴다. 나폴리는 직장인표 이탈리아 여행에서 빼기 딱 좋을 도시였다. 나폴리에 대한 평은 3개로 요약할 수 있었다. 위험하다. 지저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낙원 남부로 가기 위해 항구는 필요하다.


생각해보니 나폴리와 초면이 아니었다. 우리의 만남은 무려 십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생인 내가 처음으로 떠난 유럽여행. 엄마와의 이탈리아 패키지여행이었다. 북쪽 밀라노를 시작으로 피렌체, 로마를 거쳐 아래쪽 나폴리에 내려왔다. 버스에서 가이드 아저씨가 말했다. 


"나폴리는 따로 구경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나폴리 항구에서 배를 타고 소렌토와 카프리섬으로 갈 겁니다. 나폴리가 3대 미항인 것은 아시죠? 하지만 막상 나폴리 항구에 도착하면 이게 무슨 3대 미항이냐고 하실 거예요. 멀리서 보셔야 합니다. 배가 뜨면 바다에서 나폴리를 한번 보세요. 미항은 항구에서 보는 것이 아닌, 바다에서 보는 항구의 풍경이 아름다워야 해요"


"나폴리는 안 봐요?" 

일행 아주머니가 되물으셨다. 가이드 아저씨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북부에서부터 내려왔잖아요. 이탈리아는 북쪽으로 갈수록 잘살고 남쪽으로 갈수록 못살아요. 제일 북쪽 밀라노, 그다음 피렌체를 생각해보세요. 어때요? 굉장히 세련되었잖아요. 안전하고요. 로마만 해도 좀 다르죠? 로마가 위치상 딱 중간 정도예요. 나폴리는 남쪽이거든요. 도시로 나가시면 생각하셨던 거랑 다를 거예요. 빨래들 막 널려있고, 거리도 지저분하고 그래요" 아저씨에게 들었던 가난하고 어두컴컴한 나폴리는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나 보다. 위험하고, 지저분하고, 하지만 이동을 위해서 나폴리항에 가야 하는 정도라니 나폴리 너의 평판은 참 여전하구나.

나폴리 항구

이탈리아 여행 일정이 완성될 때 즈음 자꾸 나폴리가 걸렸다. 피자가 아니었다면 정말 두 번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피자를 빼놓고 어찌 이탈리아를 논할 수 있단 말인가. 파스타는 이탈리아 어디서든 먹어도 될 것 같았지만 피자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나폴리여야 했다.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피자 말고, 국내에서 8가지 나폴리 피자의 조건을 모두 지키며 만들어 냈다는 그런 피자 말고, 진짜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먹는 피자 말이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먹던 그 피자도 나폴리 피자 아니던가! 고민 끝에 금쪽같은 이틀의 시간을 빼서 나폴리를 넣었다. 


그래 피자를 먹으러 가는 거야.
그냥 이탈리아 피자 말고 진짜 나폴리 피자 말이야.


여행을 앞두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폴리에선 특히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말했다. 도시에 빈민들이 많다고도 했다. 우리나라 여행사들도 사고가 많아서 남부 투어에서 제외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마피아의 고향, 대부의 배경이 된 시칠리아에서도 무사했던 우리였는데... 나폴리가 대수겠냐 싶었다. 하지만 편견 때문인지 쓰레기로 지저분한 거리와 건물들 때문인지 저녁의 나폴리는 무서웠다. 가장 위험하다는 나폴리 중앙역에서 트렁크를 꽉 쥐고 중요한 물건을 담은 가방을 몸 앞에 밀착시키고 호텔을 찾고 있었다. 순간 누군가가 내 남방 주머니를 가리키며 조심하라는 손짓을 보내온다. 나를 도와주는 것인지 내 물건을 훔치기 위한 연막인지 알 수 없었다. 여기선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 온 몸에 긴장이 바짝 들어갔다. '조심하자, 나폴리에서는 특히 조심해야 해' 속으로 주문을 걸며 숙소를 향해 가열하게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나폴리의 첫 끼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피자였다. 이탈리아 국기의 빨간(토마토), 흰색(치즈), 초록색(바질)을 담은 마르게리타가 탄생했다는 '브란디'를 찾아 나섰다. 나는 신용카드와 핸드폰을 호텔 금고에 넣었다. "핸드폰 가져가면 위험할 것 같아. 나 그냥 사진 안 찍을래" 최소의 물품만 몸에 지닌 채 밤의 거리를 파고들었다. 시내 구경 따윈 안중에 없었다. 어두운 골목 구석구석 모여있는 사람들이 유독 거칠고 위험하게 느껴졌다. 이탈리아 남부 바닷가에서 보던 여유 넘치던 사람들과 인상부터 다른 것 같았다. 오직 식당만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식당에 도착해 자리를 잡으니 긴장이 촤르르 풀리며 하루의 가장 힘든 미션을 수행한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피자를 주문하고 더 정신없이 피자를 해치웠다. 긴장한 탓인지 피자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폴리 3대 피자집 중에 가장 가격이 비쌌다는 것과, 기본 마르게리타에 추가했던 버팔로 모짜렐라 치즈만큼은 남다른 맛이었다는 기억이 전부다. 쭉쭉 늘어나는 치즈가 아닌 물컹한 치즈였지만 깨무는 순간 우유 맛이 감돌았다. 피자 맛의 잔상들만이 남은 밤이었다. 후다닥 호텔로 돌아와 잠들면서도 속삭였다. 

"내일도 피자 먹으러 가자. 나폴리 3대 피자 말이야..."



그렇게 다음날 아침 다시 나폴리 3대 피자를 찾아 나섰다. 

목적지는 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는 '디마테오'였다. 그래도 하룻밤을 보낸 덕인지, 밤과 다른 아침이 찾아왔기 때문인지 두렵기만 했던 나폴리가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졌다. 오줌 냄새도 나고 쓰레기도 쌓여있던 회색빛 골목을 걸어 디마테오 앞에 섰다.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가게 앞에 북적거리고 있었다. 안전한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무리 속에 섞여 피자를 주문했다. 물론 핸드폰과 물건을 조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르게리타 피자를 사니 동그란 피자 한 판을 반으로 딱 접어 잡고 먹을 수 있게 건네주었다. 커다란 피자 호떡을 받아먹는 기분이었다. 가격은 단돈 1.5유로였다. 나폴리 3대 피자라고 해서 근사한 식당 테이블에 앉아 비싼 돈 주고 먹는 게 아니라는 게 일단 마음에 들었다. 피자가 일상인 사람들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실로 나폴리 피자는 이곳 빈민의 음식이었다고 한다.) 어제의 고급 식당과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였다. 이름 모를 할아버지와, 덩치 큰 아저씨와 아주머니도 길에 멈추고 한 손에 피자를 받아 들었다. 마치 우리나라 포장마차 앞에서 호호 불어가며 호떡이나 붕어빵을 먹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거리에 서서 토마토와 치즈가 흘러내리는 피자를 우걱거리며 먹었다. 짭조름한 토마토소스가 입안에 퍼졌다. 피자는 쫄깃쫄깃했다. 특별한 레스토랑 피자가 아닌 이렇게 길에 서서 먹는 3대 피자맛을 보려고 나폴리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며 나의 여행 짝꿍이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그 순간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며 수군수군 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뭔지 모를 웅성임에 다시금 긴장하며 몸의 세포들을 바짝 세웠다.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졌다. 묘한 불안감이 밀려와 맞은편을 향해 외쳤다. "오빠 오빠"


그 순간이었다. 꺄악!! 하는 비명소리가 터졌다.

왼쪽에 서 있던 소녀들이 손뼉을 치며 내 말을 따라 외쳤다. "오빠!!!"

호기심 가득한 그녀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나도 그들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 순간 소녀들은 들고 있던 피자를 내리고 나를 향해 입을 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들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여기는 위험하고 무섭다는 나폴리였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누군가가 내 물건을 훔쳐간다는 도시였다. 인사를 호의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도시 아니던가. 그런 나폴리 사람들이 내게 건넨 말이 우리나라 인사라니... 온몸의 긴장이 와르르 풀려나가며 나도 그들을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안녕하세요" 꺅!! 다시금 비명이 들려왔다. 한국인이 맞았다는 한류에 취한 나폴리 소녀들의 웃음이었다. 순간 나도 웃음이 터져 피자 속 토마토와 치즈가 내 옷에 줄줄 흐르는 것도 몰랐다. 

생각해보면 뭐가 그렇게 무서웠나 싶다. 돌아보면 이탈리아 여행에서 단 한 번도 소매치기를 만나지 않았다. 딱 한번 지하철표를 살 때 '내가 도와줄게'라며 돈을 구걸하는 집시를 만났다. 가이드 아저씨가 가장 부유하고 안전하다는 도시 밀라노에서였다. 나폴리에 대한 기억은 무엇이 남았냐고? 동네 사람들과 호떡 먹듯 길에 서서 먹던 1.5유로짜리 3대 피자의 맛, 그리고 나를 향해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던 나폴리 소녀들이 남았다. 피자를 먹은 뒤 들어갔던 말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던 커피집도 생각난다. 풍만한 아주머니가 미소와 손짓으로 알려준 덕에 에스프레소를 홀짝 마셨을 때의 쓰디쓴 달콤함이. 나폴리 사람들이 아침으로 먹는다는 크림이 든 크로와상을 맛봤을 때의 감동이 떠오른다. 3대 피자 디마테오가 문을 닫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내게 다가와 1시간 뒤에 와보라고 말해주던 상인 아저씨의 얼굴도 떠오른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겁이 많아졌나 싶다. 

뭐 그렇게 지킬게 많아서 두려워하나 싶기도 하다. 조금 잃어버리는 것도 여행, 바가지도 쓰고 손해도 보는 것도 여행인데 말이지. 지난날 스마트폰도 없어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배낭여행은 어찌했나 싶다. 그땐 어쩜 그렇게 용감했을까. 어떤 사람에게도 편견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었고 호의는 그저 따뜻한 호의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던 때였다. 멋모르는 젊음이 여행의 밑천이었나. 아니면 그저 무용담으로 남는 시절인가 싶다. 살면서 또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떠나기도 전에, 만나기도 전에 겁을 먹게 될까.


언제부터 이렇게 겁이 많았나 싶은 날 나폴리를 떠올려본다. 경계심 가득한 눈빛과 힘이 꽉 들어간 내 어깨너머로 들리던 소녀들의 '안녕하세요'를 되뇌어 본다. 내가 그런 소녀들이 살고 있는 도시, 주민들이 옹기종기 서서 피자와 커피를 먹던 골목을 그토록 두려워했다는 생각을 하면 부끄럽고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멀리서 봐야 아름답다는 나폴리가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할 것 같다. "참 무서울 것도 많다. 어깨 좀 펴고 겁먹지 말아. 다 사람 사는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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