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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조던 Mar 21. 2017

엄마, 우리의 방콕이 기억나요

돈은 버는데 부모님 여행 한 번 못 보내드리나 싶은 날 

'엄마'라는 말을 머금으면,

기분이 몽글몽글 이상야릇해진다. 한 단어가 천 가지의 감정을 가져다주는 기분이랄까? 보통날은 그냥 익숙한 엄마였다가 어떤 날은 그 단어를 베어 무는 순간 갑자기 견딜 수 없이 미안하고 슬퍼진다. 때론 엄마라는 이유로 보이는 살뜰한 관심이 부담스러워져 그 품을 벗어나고 싶은 적도 있었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불현듯 보고 싶어 져 엄마 집으로 달려가고 싶어 진다. 나의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엄마라는 단어는 색색의 그림자를 만들며 마음을 물들인다.


막내며느리였지만 복합적인 이유로 홀로 집안 제사를 도맡아 지내던 엄마가 제사에서 벗어난 첫 명절이었다. 나는 돌아오는 명절마다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었다. 엄마에게 뭔가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여행만 한 것이 없어 보였다. 나 역시 직장 생활도 제법 한 터. 안그래도 돈은 버는데 혼자 놀러다니기 바쁘고, 부모님 여행한번 못보내 드린게 종종 마음에 걸리곤했었다. 이런저런 나라들을 후보에 올리고 고민에 빠졌다. 주변 친구들은 엄마와의 해외여행은 따뜻하고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 만한 곳이 없다 했다. 조목조목 맞는 말 같았다. 동남아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태국을 두고 왜 고민을 했을까 싶었다. 바로 방콕으로 떠나기로 정했고 결정을 하고 보니 이보다 더 완벽한 여행지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 아무렴 방콕이지.

맑은 날씨 아래 자태를 뽐내는 사랑스런 '방콕'


여행을 앞둔 엄마는 신나고 들떠보였다. 한겨울에 따뜻한 여름나라로 간다니 모녀의 트렁크는 두근두근 컬러풀한 여름옷과 모자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한데 출국이 가까워 올수록 태국 반정부 시위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결국 시위 중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방콕엔 60일간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줄줄이 여행 취소를 하고 인터넷 실시간 검색 1위에 태국 비상사태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뉴스를 본 주변 사람들은 엄마와 가는 여행인 만큼 이번 여행은 취소하고 다음에 안전하게 가라고 권했다. 나도 혼자가 아닌 엄마와 가는 여행이라 더 마음이 쓰였다. 걱정도 변수도 많을 것 같아 여행을 취소하자고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때 돌아온 엄마의 답변엔 난 그냥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우리 이왕 가기로 한 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면 안될까, 호텔에만 있어도 좋아" 엄마가 얼마나 이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는 답변이었다. 아니 어쩌면 엄마가 얼마나 이 명절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가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우리는 떠났고 덕분에 난 '방콕'에서 조금은 새로운 엄마를 만났다.

한겨울에 여름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면서


'엄마는 상상 이상의 사람이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엄마는 나와 일상을 부대끼며 함께 살던 엄마와 좀 달랐다. 당시 적은 나의 일기장을 보면 한 문장으로 '엄마는 나의 상상 이상의 사람이었다'라고 쓰여있었다. 한국을 벗어난 엄마가 과연 현지에 잘 적응은 할까? 태국 음식이 입에 맞을까? 더운 나라에서 잘 걸어 다닐 수 있을까?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을까? 불편해하면 어쩌나 기대보다 걱정이 큰 여행이었다. 놀러 간다라는 마음보다 엄마에게 보여주러 간다는 마음이었는데, 방콕에서의 엄마는 그런 나의 걱정을 보란 듯 날려버렸다.

소녀같고 곱디고운 여행중의 나의 마미


우선 태국인들에게 씩씩하게 한국말 인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예로 직원들이 영어로 인사하면, 엄마는 응!! 나도 반가워요~라는 한국말과 인사로 응답했다. 대화를 할 때 마치 이곳이 한국인 양 우리나라 말로 말해도 은근 다 통하는 놀라움을 나에게 선사했다. 매일 아침 나보다 일찍 일어나 그날 가기로 한 곳을 가이드북에서 찾아서 줄 치며 읽고 계셨다. 엄마가 이렇게 여행을 잘 하는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지치지 않고 잘 걸으셨고 쉬어가자는 나에게 이제 그만 출발하자며 적극적으로 앞장서셨다. 온갖 교통수단을 타다가 마지막 날 마사지 가게를 가는길 현지인들이 가득 탄 송태우를 세웠고 난 기사님 옆에, 엄마는 현지인들과 뒤에 탔는데 그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서 바람을 가르던 모습이 생생하다.


음식 앞에서도 거침없었다. 우선 뭐든 먼저 먹어보자 하셨고, 맛있다고 즐기기 시작하시더니 며칠이 지나자 내가 방콕에 몇 번 오면서도 먹어보지 못한 과일이나 음식도 역으로 권해서 맛보는 일도 생겨났다. 예를 들어 망고밥이 그러했다. 난 시장에서 파는 망고는 먹어도 함께 파는 망고밥은 먹지 않았는데(뭔가 더위에 쉰 밥의 느낌일 것 같아서), 엄마의 권유로 망고밥을 샀고 난 처음으로 쫀득한 찰밥과 망고를 먹었다. 수키(샤브샤브), 팟타이, 파파야샐러드, 모닝글로리, 풋팟퐁커리는 물론 똠양꿍까지 완벽하게 드시더니 언젠가부터 점심 식사에 나와 맥주 한 병을 시켜 반주를 즐기는 놀라운 엄마였다.



'엄마는 여행지에서도 엄마였다'


이 여행을 이끄는 사람은 분명 나였다. 일정도 내가 짜야했고 길을 찾는 것도 내 몫이었고, 수상버스, BTS노선이나 맛집과 마사지 가게를 알아보는 것 역시 그랬다. 의사소통부터 엄마의 행동을 하나하나를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내 몫이 분명한데 참 이상한 게 엄마는 태국에서도 엄마인 것이 아닌가, 뭘 먹다가 입에 뭍은 음식물을 쓱 닦아 줄 때나, 녹은 아이스크림이 뚝 떨어지면 손수건을 꺼내 줄 때나, 잔돈이 없어 찾는 나에게 툭 현금을 꺼내 줄 때나, 외출하기 전 꼼꼼하게 선크림을 챙겨 바르게 한다거나, 시장에서 사 온 과일을 호텔에서 먹을 때 쓱쓱 과일을 까고 자르는 모습은 여행지에서도 영락없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다. 영어나 방콕 지리가 좀 더 익숙한 사람은 나일지 몰라도 엄마에겐 여기가 방콕이든 북극이든 어디든 그저 난 칠칠맞고 부족한 딸인 것처럼, 엄마는 여행지에서도 나 이상의 엄마였다.


1월 1일 새해를 맞이해 찾아간 태국 성당
기도하는 엄마의 뒷모습, 또 우리를위해 기도했겠지


'엄마만의 취향이 있었고 슬기로운 여행법을 알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와 갔기 때문에 갈 수 있던 장소도 있었고, 둘이 함께 가서 더 의미 있었던 장소도 있었다. 가톨릭 신자인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마 새해에 태국에서 성당에 갈 일은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미술 선생님이었던 엄마가 아니었다면 난 여행 중 한 번 여권을 맡기고 입장 가능하다는 TCDC(Thailand Creative & Design Center)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여유롭게 디자인 서적들을 보진 못했을 것 같다.


또 수상버스를 타고 또 다른 성당까지 애써 찾아갔는데 공사 중이라 아쉽게 돌아서다 옆에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을 지나게 되었는데, 내가 이 호텔의 에프터눈 티가 유명하다고 하니 엄마는 우리도 티타임을 즐겨보자며 내게 권했다. 예약도 안 했는데 가능하겠냐는 나에게 뭘 미리 걱정하냐며 다 가보면 알 수 있다며 호텔로 날 데리고 들어간 덕에 난 그동안의 방콕 여행에서 가져보지 못했던 가장 스윗한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엄마와 나는 분위기와 달콤함에 취해서 서로 돈을 낸다며 친구인 아줌마들처럼 실랑이를 하다가, 남은 케이크과 사탕 초콜릿을 포장해 품에 안고 정말 스~윗하게 돌아왔다. 목적지를 잃어버리면 잠시 옆으로 한 눈을 팔고 그냥 즐기면 된다는 걸 엄마는 언제 알았을까.


모녀가 반했던 TCDC (태국 디자인 센터)
여유롭게 보고싶은 책도 실컷 보고
엄마가 본다며 골라온 디자인 책들
우연히 들어갔는데 이토록 멋진 분위기라니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커튼 뒤 식물들이 더 없이 아름다운 무늬가 된다
저희 에프터눈 티 마실 수 있나요
엄마의 생에 첫, 우리 둘만의 스윗한 에프터눈 티


'친구와 다른 것을 나눌 수 있었다'


둘이 종일 여행을 함께하니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예상외로 할 이야기가 많았다는 것도 의외의 발견이었다. 친한 친구와 하는 여행과 또 달랐다. 내 주변 일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심지어 남자 친구에 대한 고민까지 나누고, 남들에게 보이지 못하는 나의 못난 모습들도 부끄럼 없이 드러내며 그렇게 담담하게 미래에 대해서 엄마와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곤 여행 전에 상상조차 못 하였다. 한국에선 그저 잔소리처럼 들렸을 엄마의 이야기도 여행의 묘약 때문인가 진정한 충고로 다가오기도 하고 말이지, 엄마는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당시 하루하루 여행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둘 다 피곤해서 금세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웠다고 말했다.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대화했던 '아시안티크'


'우리가 가족으로 사는 게 얼마나 길까'


엄마는 아직도 우리가 여행을 떠났던 1월이 돌아오면 '아 태국 가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 말을 할 때 엄마의 눈을 보면 정말 그때의 방콕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행 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책상에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열어보니 엄마가 여행을 가줘서 고맙고 경비를 보태지 못해 미안하다며 상품권과 편지를 써서 넣어두셨다. 편지에는 여행을 추억하고 행복해하는 엄마의 마음과 더불어 주변 친구분들에게 신나서 방콕 여행 자랑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에게 봄 옷이라도 사 입으라며 백화점 상품권을 함께 넣는다고 했다. 또 엄마의 편지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우리가 함께 이렇게 가족과 사는 게 얼마나 길까? 그렇게 보면 소중한 시간인데 우리 서로 아끼며 살자, 나도 엄마 마음 모르고 투덜대며 똑같이 그랬는데 내가 부모 되니 그 마음을 알겠더라, 마찬가지로 나도 겪은 너의 지금 시절을 잘 이해하고 배려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네, 사람이 참 그렇다. 지나서 알고 아쉽고 그렇게 미련하다'


엄마와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 여행을 가면 좋은 이유, 또는 다녀와서 좋은 점들을 나열하면 아마도 무척 많을 거다. 하지만 그 모든 이유를 거두절미하고 여행의 단 하나의 이유만을 말해야 한다면 그건 엄마가 써준 편지처럼 '이 소중한 시간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이렇게 가족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추억만은 영원하겠지, 내가 직장인이 되고 월급을 모으기 전에, 엄마에게 제사가 없는 명절이 찾아오기 전이라도 떠났어야했다. 더 늦기 전에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또 그곳에 가자는 약속을 과연 난 더 늦기 전에 지킬 수 있을까? 방콕에 간다면 망고 말고 망고밥이 먹고 싶은 깜깜한 밤이다. 자고 있을 엄마가 보고싶어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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