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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조던 Feb 17. 2017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대해주는 천사들이 있어요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하루키 책 제목이기도 한 저 문장은 라오스에 대한 나의 첫 마음에 99.9% 가깝다.

단 한 번도 라오스가 궁금한 적 없었고, 언젠가 한번 가봐야지 라는 생각은 당연히 해본 적 없었다. 꽃청춘 라오스 편이 방송되었을 때 무척 흥미롭게 매 편 챙겨 보면서도 꽃청춘 때문이라도 라오스 여행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아이러니, 라오스와 가까운 태국을 온 맘 다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비행기로 딱 한 나라만 경유할 수 있다면 난 일편단심 태국이라고 말하면서도 시선을 조금도 옆으로 돌릴 수 없었던 그런 라오스였다. 관심이 없다는데 어떤 이유가 있으랴? 난 그냥 라오스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혼자 덜컥 라오스행 표를 사버렸는데, 막상 혼자 덜컥 떠나진 못하겠다는 친구의 SOS가 있었고, 난 그녀에 대한 애정과 의리로 같은 비행기 옆 좌석에 나란히 앉아 함께 라오스로 떠났다. 그래 대체 뭐가 있는지 한 번 가보지 뭐 라는 심정으로 무심하게 그리고 아주 만만하게!

여행을 결심하고 친구가 선물해준 책, 무려 제주에서 왔다


1. 부담 없이 저렴하고 만만한 국수가 있었다

도착해서 아침을 맞이하고 길거리로 나가보니 라오스에는 국수가 있었다. 그것도 많았다.

풍기는 모습과 맛이 베트남 같기도 하고, 태국 같기도 했다. 가격은 역시나 저렴해서 작은 사이즈를 시키면 1,500원 정도로 아침 한 끼는 후루룩 때울 수 있었다. 푸짐하게 먹어도 2~3천 원 정도였고. 지내면서 같은 맛, 같은 스타일의 국수는 한 번도 먹은 적 없었다. 완탕면, 도가니 국수, 고기국수에 누룽지까지 저마다 조금씩 달랐고, 부담없이 편하게 들락거릴 수 있다는 점에선 같았다. 라오스 사람들도 후루룩, 우리도 후루룩, 모두가 이 국숫집에 가볍게 와서 든든하게 먹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한국인들도 좋아한다는 도가니 국수집의 아침


2. 커피와 바게트 그리고 조마베이커리가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의 영향으로 빵과 바게트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고, TV에서 워낙 맛있게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는 모습도 봤던지라 기대를 했었다. 길게 쓸 것도 없이 더 못 먹고 온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르바네통과 조마베이커리가 라오스의 대표 빵집인데 1일 1 조마베이커리를 목표로 다녔고, 르왕프라방에서 만난 조마베이커리 2호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강을 바라보며 세수도 안 한 얼굴로 커피 한잔 마시던 그 시간을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런 분위기와 시간은 정말 라오스에서만 느꼈던 게 분명했다.


'르 바네통'의 크로와상과 라떼, 테이블 메트까지 라오라오스럽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빵집, 르왕프라방 조마베이커리 2호점
2층 테라스에 앉아 칸강을 바라보며 모닝 커피 한 잔, 라오스 국기가 펄럭이네


3. 천사들이 산다는 르왕프라방이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르왕프라방의 길이 쭉 펼쳐질 것 같다. 빠르지 않고, 시끄럽지 않고, 높고 복잡하지 않은 거리,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이 모두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시, 20~30분 내에 모두 닿을 수 있어 늘 같은 길을 왕복하지만 한 번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거리, 길을 걷다 고개를 들면 늘 예상하지 못한 하늘, 나무, 꽃을 보여주는 거리. 르왕프라방에서 1주일만 지낼 수 있다면 내 마음도 이 도시를 닮으며 얼마나 넓고 푸르게 확장될 수 있을까? 그 착한 공기로 채우고 싶다.


르왕프라방에서 가장 좋아했던 길, 몇 번을 걸었던가
천사들의 도시 르왕프라방, 부디 변함없이 행복하세요
무수히 오가도 지겹지 않던 길, 손 내밀면 닿을 것 같다


4. 느리게 가는 시간 속 여행자들이 있었다

라오스의 시간은 무척 천천히 흐른다. 지루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게 여유롭게 흐른다는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 심지어 빛도 곱게 천천히 분사되어 비치는 느낌이고. 구름도 더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이다. 살아있는 모든 게 천천히 흐른다. 그래서일까 제법 많은 곳을 여행하며, 많은 여행자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이곳만큼 편하고 여유로운 여행자의 뒷모습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여행자들의 봉지 하나에 걸린 풍족함과 여유로움


5. 착한 흥정이 오가는 시장이 있었다

물론 라오스에도 장사꾼이 있고, 라오스 시장에도 흥정은 오간다. 라오스 툭툭(교통수단)을 탈 때도 태국과 마찬가지로 가격 부르기가 몇 번은 오가야 하고, 이는 근처 폭포로 투어를 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독 라오스에서 하는 흥정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들의 착한 미소에 빠져서일까? 나를 크게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뿐더러 그냥 조금 손해 봐도 괜찮을 것 같은 나라였다. 그 와중에 이리저리 속으로 셈을 따져보다 이건 얼마에 어때?라고 묻는 내 질문에 그냥 쓱- 웃고는 그러자고 하는 라오스 사람들, 흥정을 하면서도 미안 해지는 건 내 쪽이었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못해 헤어나올 수 없는 르왕프라방 야시장


6. 자연이 만들어 준 천연 수영장과 여름이 있었다

추운 날 따뜻한 나라의 로망은 언제나 계속되지만 라오스의 11월은 생각보다 시원하고 기분 나쁘게 덥지 않아서 놀랬다. 또 그 와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분명히 다시 느끼게 해 줘서 좋았다. 태국은 막상 가면 방콕도 그렇고 푸껫도 그렇고 그렇게 수영을 잘 하게 되지 않는데 오히려 라오스는 참 수영하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자연이 만들어 준 천연 수영장 꽝시 폭포에서 하루 종일 놀고 싶었고, 저렴한 숙소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관리 잘 된 수영장 또한 여름을 선물했다. 수영 후 마시던 라오 비어 한 캔, 두 캔 그래 겨울 속 여름은 이런 거지!

다시 여름을 느끼게 해 준 숙소의 수영장, 투명에 가까운 블루
자연이 선물 한 에메랄드 빛 수영장 '꽝시 폭포'
아담과 하와는 이런 곳에서 수영하고 놀았을까?


7. 사람을 가장 사랍답게 만들어주는 천사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끼고 아껴서 쓰고 싶은 라오스는, 바로 사람이다.

라오스에서 가장 많이 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국수 먹기도 아니오, 길 걷기도 아니고, 수영도 아니다. 바로 미소 짓기였던 것 같다. 라오스에서 미소를 자주 지어야 하는 이유는 딱 하다나. 바로 라오스 사람들이 미소를 짓기 때문이다. 잘 몰랐는데 미소라는 건 정말 닮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확실히 연결되는 보답의 의미도 있다. 그들이 나를 보고 웃는데 내가 웃지 않고 배길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하루 이틀 지날수록 익숙해졌다. 그리고 자꾸 웃음을 짓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환하게 열리고 그 이후로는 조금 늦어도, 조금 손해 봐도, 조금 어긋나도 다 괜찮은 라오스가 돼버렸다.


식사 주문을 받을 때도 미소를 지어주고, 물을 따라 줄 때 도 착한 손을 떨 만큼 순수했다. 메콩강을 건너는 배에선 손을 먼저 내밀어 주고, 계산을 하는 내 손을 보면서 희고 예쁘다고 말해준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뛰어나와 도와준다. 그들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면 본인들이 영어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라오스에서도 똑같은 나인데, 이상하게 라오스 사람들은 날 더 소중한 사람처럼 대해준다. 자꾸 그들 속에서 물들다 보니 라오스 사람들도 내게 소중해지고 점점 떠나기가 싫어졌다.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대해주는 착한 마음들 속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싶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들이 우리나라에 온다면 제발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들의 무섭고 딱딱한 표정에 말이다.  

라오스에서 나를 가장 찡하게 했던 풍경, 졸업을 하는 학생들이 손을 잡고 숫자를 만들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소년 소녀들의 웃음소리, 맑은 눈동자, 단정하게 다려 입은 교복, 정말 나도 모르게 이 풍경을 보고 눈물이 날뻔했다. 예상치 못한 유년시절과 만난 기분이라 그랬다.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예쁘다는 유년시절이란 이런 것일까? 나의 우리의 유년시절도 이랬을까란 생각 때문에.


스님들에게 탁밧을 하며 오늘 하루를 부탁하던 라오스의 새벽


이 밖에도 차마 글에 다 담지 못한 소소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라오스에는 그냥 무심하게 만만하게 널려있다. 천천히 흐르는 라오스의 시간 속에 물들며 그 모든 것들을 즐기면 된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누군가 한 명이라도 라오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좋겠다. 청춘이 아니라도 좋다. 라오스는 그런 당신 역시 충분히 품고 담아 줄 나라다. 라오스에 갈 때는 달라를 가져가서 라오스 돈 낍으로 환전해서 써야 하는데, 보통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남은 돈을 다시 달라로 바꿔온다. 나 역시 남은 돈을 바꾸러 은행으로 가던 길, 발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라오스 돈을 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대해주던 라오스 사람들 속으로 꼭 다시 가야지하는 '그 마음 하나로'


'낯설고 외롭고 서툰 길에서 사람으로 대우받는 것 그래서 더 사람다워지는 것 그게 여행이다'

-이병률, 내 옆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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