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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조던 May 23. 2017

창문이 액자가 되는 마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전망 좋은 방  

이전에 라디오에서 '5월은 세상 어디를 가도 좋은 계절'이라고 했었다. 그 이후 5월만 되면 마음이 붕 뜨면서 정말 세상 어디라도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5월의 이탈리아는 붕 뜬 마음 때문인지10년 전에 방문했던 한여름의 이탈리아보다 5배는 더 좋았다. 무엇보다 20대였고 오직 가이드북 한 권 뿐이었던 10년 전 여행과 달리 많은 것을 발견하게 해주었는데, 그중 가장 큰 감흥을 준 발견은 '창문'이다. 볼 것 넘치는 이탈리아에서 고작 '창문'이라니 싱겁고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토록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만들다니 정말 멋진 나라가 아니었나란 생각도 든다. 토스카나 지방은 평범한 창문의 매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창문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이토록 오래 창문을 바라본 적이 언제였던가?
과연 있기나 했을까?'


창문과 사랑에 빠진 순간


10년 전 여행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 피렌체에서 렌트를 했다는 것이었다. 자동차를 빌려서 우리나라 고속도로와 비슷하게 생긴 이탈리아 고속도로를 달려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했고 예약한 숙소에 들어섰다. 딱 봐도 키가 180은 넘을 것 같은데 얼굴은 약간 니콜 키드먼을 닮으신 여자분이 나오셨다. 키가 너무 커 혹시 이탈리안이냐 묻자, 역시나 독일인이라고 답하셨다. 커피와 케이크를 내어주시며 아들을 인사시켜 주셨는데, 키가 170인 나만한 아들이 14살이라며 인사를 해왔다. 내가 독일에서 왔다고 들었다 하니, 아빠는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말했다. 와 역시!라고 생각했다. 이 숙소의 첫인상은 '키가 크다'였다. 입구의 나무도 가족들도 참 크다.


숙소로 들어가던 사이프러스 길


주인분이 커피를 다 마신 우리를 데리고 올라가 방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창문'이었다. 그녀가 방문을 열고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양쪽 창문을 환하게 여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극성을 부린 미세먼지로 창문을 열 수 없어서였을까, 방에 들어가 창문부터 여는 것이 이곳에선 당연한 일인데 보고 있는 나에겐 새롭게 느껴졌다. 매료된 듯 창가로 다가섰고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럽기도 했다. 마음껏 창문을 열 수 있는 깨끗한 공기가, 저 먼 마을까지 보이는 가시거리가, 높은 건물 없는 풍경이, 녹색이 말이다. 주인이 나간 뒤에도 얼마나 이 창 밖을 바라봤던가, 똑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이렇게 질리지 않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창문이 액자고 풍경이 그림이구나'

집마다 창문을 가지고 있다면 계절마다 변하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를 소장한 것 같겠구나. 벽에 그 얼마나 비싸고 멋진 풍경화를 걸어둔다한들 자연이 주는 그림과 색채만 할 수 있을까? 이전에 자연은 우리가 그리고 싶어 하는 모든 색을 담고 있다는 말도 떠올랐다. 저녁이 찾아오고 짙은 푸르름이 깔렸다. 흰 액자 뒤로 파란 공기가 가득 찬 저녁이었다. 파란 물감을 푼 것처럼 아름다워서 온통 깜깜한 어둠이 찰 때까지 창문을 닫을 수 없었다. 아침이 찾아왔고 우리 방 말고도 이곳의 모든 창문은 다 저마다의 풍경을 담은 액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문을 찾는 재미에 빠졌다. 한층 두층 올라가고 내려갈 때마다 가장 먼저 창문부터 찾았다.


이런 창이 보이는 테이블이 있다면
이런 창가에서 체스놀이를 한다면

창문 찾기 놀이는 절대 지루하지 않다. 우선 어떤 풍경이 담겨있는지 알 수 없고, 설령 안다고 해도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바뀐다. 아래 입구 사진만 해도 보는 시각에 따라 조각상이 들어왔다 사라지곤 했다. 비록 나는 5월의 액자만 보지만, 창밖은 여름엔 권태로운 진녹색으로 가을에는 붉은빛으로 겨울에 눈이 내리면 흰 그림이 되겠지.


이런 입구를 통해 드나들 수 있다면
샤워하다 욕실에서 바라 본 풍경


내가 이 숙소에서 하루라는 시간 동안 찾았던 창문들이다. 이전에 북유럽게 갔을 땐 나만의 '의자'를 가지고 싶었다. 자신의 의자를 가지고 있으며 나이가 들어서도 그 의자에 앉아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여가 시간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토스카나 여행 후에는 나만의 '창문'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바라보고 싶은 창문을 가져 본 적 없었다. 아파트 창으론 또 다른 아파트가 보이곤 했었고 그런 풍경에 뭔가 평균 속에 들어있는 묘한 안도감이 느꼈었다.


요 며칠 우리나라도 정말 5월의 날씨를 뽐냈지만,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5월 초반 우리나라는 바로 미세먼지로 내게 응답했다. 집에 있는 창문들을 열 수 없었고, 여행 후 잔뜩 불어난 빨래들과 주인이 자리를 비운 동안 바람 한 번 쐬지 못한 공기정화 식물들은 나와 함께 집에 갇혔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니 더 했다. 중국 상해를 연상시키는 고층 건물들과 뿌연 공기, 수많은 창문들은 열기도 힘든 구조였고, 서로가 서로의 네모난 창에 번쩍번쩍 도시의 빛을 드리우는 모습에 바로 창문을 보지 않는 현실 속으로 나를 돌려놓았다. 조금은 슬픈 컴백이었다.


지금도 그 마을은 이런 풍경이 액자에 담기고 있으리라, 또 다른 관람객을 기다리며.. 고맙다. 내가 본 창문이 다가 아니라 세상 어딘가엔 이런 창문도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어서-


사소한 창문이 나에게 준 깨우침 '작다, 좁다, 네 창에 연연하지 마라, 더 큰 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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